"그 가격엔 안팔려요"…내 집 가격을 중개업소가 정하다니 [더 머니이스트-심형석의 부동산정석]

2024. 5. 28.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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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머니이스트
"가격결정권, 집주인이 가져야"
사진=연합뉴스


아파트의 가격은 누가 결정할까요. 집주인이 결정할까요? 집주인은 아무런 결정권이 없습니다. 얼핏 집주인이 결정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부동산 중개업자들이 결정합니다. "그 가격에는 안 팔립니다", "요즘 손님 없어요" 하는 순간 시간적 여유가 없는 집주인들은 바로 가격을 내려서 내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 가격에 못 팔고 손님이 없다는 것은 중개업소 한군데의 얘기입니다. 다른 부동산 중개업자와의 가격 경쟁에서 밀린다는 뜻입니다. 경쟁 부동산의 매물가격보다 낮아야 한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그들에게 집주인의 사정은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다음의 얘기들은 모든 중개업소가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집주인의 사정을 잘 봐주고 집주인 못지 않게 발 벗고 나서주는 중개업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수년에 한번씩 내놓는 집을 두고  이런 경우를 당하게 되면 중개업소에 신뢰는 떨어지게 됩니다.

집주인들이 가격 결정권을 가져가기 위해서는 정확한 시장 정보를 받아야 하는데, 실제 집주인들이 받는 정보는 시장 정보가 아니라 부동산 중개업소의 운영 정보인 경우들이 많습니다. 어쩌다 맞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정확하지 않고 그들 부동산의 운영 목표(계약해서 돈 벌어야지)에 따른 정보일 수 있습니다. 집주인들은 본인의 가장 크고 중요한 재산 가격을 중개업소가 정해준 가격에 따라 결정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게 됩니다. 중개업자는 있지도 않은 매수 손님을 가정해서 다른 부동산보다 낮은 가격으로 광고할 수 있는 매물로 만들어 놓기도 합니다. 그래야 중개업자 본인이 계약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집주인들은 중개업소에만 전화합니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시장에 나와있는 매물, 내가 내놓은 가격과 경쟁이 될만한 매물, 즉각적인 실거래가 등의 정보를 확인하지는 않습니다. 나의 가장 큰 재산을 거래하는데 이 정도 노력을 안 하는 집주인들이 태반입니다. 일상이 바쁘다지만, 그래도 일일이 확인하는 집주인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집주인들이 정보를 확인하고 각자가 중개업자 말에 휘둘리지 않는 시장상황이 된다면, 집마다 가치에 어울리는 가격으로 거래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시세를 만들어야 급매 또한 돋보입니다. 그래야 빨리 팔고 싶은 사람이 진짜 빨리 팔 수 있고 사려는 사람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깁니다.

다 같이 경쟁적으로 가격을 내리거나, 우르르 올리는 시장에서는 결국 거래가 성사되지 않습니다. 사고 싶은 사람도 사자마자 가격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머뭇거리게 됩니다. 사야 되는 타이밍에 못 사게 되고 상승장이 오면 당시 사지 못한 것을 후회하게 됩니다.

서울의 경우에도 어떤 아파트는 10% 정도 조정을 받고 빠르게 회복한 반면 어떤 아파트는 20% 이상 떨어지고 여전히 회복을 못하고 있습니다. 불과 2~3년 사이에 두 아파트의 가치가 확 달라졌을까요? 아파트는 지리적 위치, 교통, 학군 등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데 단기간에 이러한 요인들이 갑자기 달라질 수는 없습니다. 두 아파트의 가격이 이렇게 달라진 데에는 부동산 중개업소들 간의 가격 경쟁도 한 요인이라고 봅니다.

분명히 내가 집주인인데, 중개수수료 몇 백만원도 내가 줍니다. 그런데 중개업자의 허락이 있어야만 매물을 올릴 수 있고 가격을 내리거나 올리거나 할 때도 그들의 허락이 필요합니다. 어찌보면 정말 이상한 시장입니다. 예비 매수인들도 꿈은 집주인입니다. 그들도 이렇게 말도 안되는 왜곡된 시장의 미래 피해자들입니다. 매수자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매도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올리고 싶을 때 눈치 보지 않고 가격을 올릴 수 있고 가격을 내릴 때도 눈치 보지 않고 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가격이 중간 유통업자의 손을 거치지 않고 바로 집을 구하는 매수자, 임차인에게 노출되어야 건강한 부동산 시장 가격이 형성됩니다. 부동산 중개업자가 정부도 아닌데 시장 가격을 조정해서는 안됩니다.

주식시장에서 거래소가 가격에 개입하면 어떻게 될까요? 집을 파는 사람, 사는 사람 모두 중간에 가격으로 장난치는 사람이 없어야 하고 중개사는 안전하게 재산 이전을 도와주고 사후에 거래 책임까지 지면 됩니다. '가격 결정권'은 집주인에게 있어야 하지 '거래'만이 목적인 중개업소에게 있으면 안된다는 겁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심형석 우대빵연구소 소장·美IAU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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