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갑질, 불법 착취 속 희생양”…간호법 무산 위기에 간호사들 ‘분통’
21대 국회 내 간호법 제정 무산 시 ‘보이콧’ 가능성
정부, 간호법 제정 약속했지만 21대 국회서 통과 ‘불투명’
(시사저널=강윤서 기자)
"간호사의 헌신은 쓰고 버리는 휴지가 아니다."
3개월 넘게 묵묵히 의료공백을 메우고 있는 간호사들의 분노가 커졌다. 병원을 떠난 전공의를 대신해 위법의 경계에서 의료행위를 해왔지만 간호법 제정은 요원하기 때문이다. 21대 국회의 마지막 본회의가 코앞인 가운데 간호사들은 이번 임기 내에 간호법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 '보이콧'을 예고하며 맞섰다. 간호사들마저 진료 지원에서 손을 떼면 의료현장에는 대혼란이 닥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진다.
28일 오후 21대 국회가 마지막 본회의를 연다. 대한간호협회(간협)은 본회의 전날(27일) 국회로 나와 '간호법안 제정 촉구 집회'를 열고 "21대 국회는 국민 앞에 약속한 간호법안을 즉각 통과시킬 것"을 요구했다. 집회에는 간협 임원진과 전국 17개 시도간호사회, 10개 산하단체 대표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간호사들은 간호법 제정을 촉구해왔으나 국회가 이날 본회의 이후 29일 종료되면서 이번 회기 내 통과가 불투명해졌다. 전날까지도 보건복지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가 열리지 않으면서 이번 회기 안에 처리되긴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간호법은 진료지원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해 법적 보호망을 형성하고 간호사의 위상을 강화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받아왔다.
간협은 21대 국회가 완전히 문 닫기 직전까지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간협 관계자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김진표 국회의장이 오는 29일에도 '원포인트 본회의'를 열 가능성을 내비친 만큼 저희도 끝까지 기다려보고 다음 행보를 결정할 예정"이라며 "최종적으로 보이콧이 현실화된다면 (의료 현장에는) 정말 큰 혼란이 발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간호사들은 전공의 이탈 100여 일 동안 의료공백을 메우고 있는 현실을 호소했다. 탁영란 간협 회장은 집회에서 "간호사들은 법적으로 보호 받지 못한 채 불법 업무에 내몰렸다"면서 "병원 운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퇴직과 무급휴가 사용까지 강요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왜 국가 보건의료재난 위기 때마다 의사가 장인 병원의 갑질과 불법적 착취 속에 간호사만 희생돼야 하느냐"고 지적했다.
탁 회장은 "각 대학병원의 전공의들이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하며 병원을 떠난 지 100여 일이 지났고 간호사들은 오늘도 몸을 갈아 넣으면서 환자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간호사들을 보호할 간호법안은 여야와 정부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21대 국회에서 다시 폐기될 위기에 처했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간호법 통과에 기대감을 안겼던 정부에 대한 '배신감'을 호소했다.
한수영 병원간호사회 회장은 "간호법안은 이번에 안 되면 다음에 해도 되는 그런 법안이 결코 아니다"며 "국민의 생사가 오가는 전쟁과 같은 의료현장에서 의지할 법하나 없이 홀로 올곧이 버텨야 하는 간호사에게 주어진 마지막 희망의 생명줄"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간호법은 여야 모두 제정에 공감대를 형성한 상태였다. 보건복지부도 이달 초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여야 간사단에 유의동·최연숙 국민의힘 의원과 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발의한 간호 관련 3개 법안에 대한 수정안을 제출하면서 회기 내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채상병 특검법을 둘러싸고 여야 갈등이 커지면서 상임위조차 열리지 않고 답보 상태에 빠졌다. 아울러 간호법은 작년 4월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바 있다.
'진료지원 간호사 시범사업' 보이콧…강경대응 예고
간호사들은 '보이콧'을 예고하며 강경대응에 나섰다. 이번 국회에서 간호법이 통과되지 않는 이상 법적 보호조치 없는 의료행위를 중단하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정부의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현장을 지켜왔음에도 외면당했다고 비판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2월 말부터 진료지원 간호사를 진료에 활용하는 시범사업을 시행했다. 정부는 간호사를 숙련도와 자격에 따라 '전문간호사·전담간호사·일반간호사'로 구분해 감별·검사·치료·처치 등 진료지원 업무 범위를 명확히 제시했다. 간호사들이 의사가 담당해온 의료행위의 일부를 할 수 있도록 한시적으로 허용한 것이다. 대표적인 의료행위에는 심폐소생술이나 응급환자에 대한 약물 투여 등이 있다. 이를 두고 '전담간호사'로도 불리는 진료지원 간호사의 업무범위 기준이 명확해졌다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간호법이 제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결국 '불법 의료행위'로 내몰릴 수 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간호계 관계자는 "(간호법 제정을) 다 해줄 것처럼 하더니 지금 국회 상임위조차 열리지 못해 통과가 어려운 게 아니냐"며 "이미 시범사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를 뒷받침할 간호법이 제정되지 않으면 '불법 의료행위'로 치부될까 우려하는 간호사들이 많다"고 전했다.
이날 집회에 참석자들은 '간호사의 헌신은 쓰다 버리는 소모품이 아니다'라며 비판했다. 이들은 국민의힘 당사와 더불어민주당 당사까지 'NO! TISSUE!(간호사의 헌신은 휴지가 아니다), 간호법 약속을 지켜라'와 간호법안 제정을 통한 의료개혁 성공을 담은 '국민 곁을 지키기 위해 간호법 투쟁'이 적힌 피켓을 들고 행진을 이어갔다.
한편 복지부도 난감한 모습이다. 전병왕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정부가 간호법 제정을 반대해 논의가 안 되는 게 아니"라면서 "지금 국회에서 상임위 등의 일정이 진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에 되지 않으면 다음 국회에 원이 구상되면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간호사들이 시범사업 보이콧을 예고한 데 대해서는 "간협과 소통하고 정부 입장도 전달해서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며 "정부는 (간호법 제정을)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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