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와 ‘타인의 명예·권리 보호’의 충돌, 균형점 찾는 법률 개정 시급

강희수 2024. 5. 28.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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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강희수 기자] ‘표현의 자유’는 민주사회의 기본 덕목이다. 그런데 민주사회엔 등가의 가치로 ‘타인의 명예·권리의 보호 의무’도 존재한다. 두 가치는 종종 현실에서 충돌한다. 답은 의외로 간단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자유와 그에 따르는 책임이 민주사회를 이끄는 두 가지 축이라는 인식에서 말이다. 

‘표현의 자유’와 ‘타인의 명예·권리 보호 의마’가 충돌하는 현실에서 두 가치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법률 개정이 시급하다는 여론이 제기되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앞세운 과도한 말과 행동이 현실과 가상 공간을 가리지 않고 국민과 기업에 막대한 피해를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는 마땅히 존중되어야 하지만, 사실 왜곡과 혐오 표현 등으로 개인 및 기업의 인격과 명예를 훼손시키는 행위가 현실·가상 공간에서 사회적 용인 수준을 넘어서고 있어 갈등 해결을 위한 사회적 합의 도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우리 헌법은 ‘표현의 자유’뿐만 아니라, 타인의 명예와 권리도 동시에 보호하고 있다”면서 “과도한 ‘표현의 자유’로 인해 침해 받고 있는 국민과 기업의 명예·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법·제도적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고 말했다.

▲악성 댓글, 유망 스타트업 폐업 신고 및 업계 1위 기업 이미지에 피해 입혀

익명성이 보장되는 온라인 공간에서 ‘표현의 자유’의 폐해는 심각하다. 스타 연예인과 스포츠 선수를 포함한 비극적 사태만 있는 게 아니다. 근거 없는 악플로 기업 이미지와 경영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는 사례도 줄을 잇고 있다.

패션·뷰티 기업인 A사는 사업 초창기 애완견 사료 사업으로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을 때 일부 소비자가 온라인상에 제품 유해 성분 이슈를 제기했고, 이로 인해 해당 제품과 회사를 비방하는 댓글이 무수히 달렸다.

당시 스타트업으로서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 경험이 부족했던 A사는 사실관계와 상관없이 사과문을 홈페이지에 게재했고, 사업을 잠정 중단했다. 사건 발생 이후 공신력 있는 6개 검사기관으로부터 ‘유해성분 불검출’ 판정을 받았으나 이미 A사의 애완견 사료는 유해하다고 낙인 찍혔고, 결국 사업 시작 8개월 만에 해당 브랜드를 폐업했다.

고객 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정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후 사명을 변경하고 화장품과 비누 등 사료와는 상관없는 사업을 진행했지만 ‘유해한 애완견 사료를 만드는 기업’ 이라는 악플이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니며 기업의 발목을 잡았다. 

업계 1위 기업도 댓글 피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2017년 여름, 제주지역의 일부 양돈  농가에서 축산분뇨를 야산에 불법 투기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를 빌미로 제주 소재 생수기업 B사에 대해 근거 없는 비방과 잘못된 루머가 퍼졌다. ‘돼지 똥물’ 등 자극적인 표현을 써가며 마치 실제 분뇨와 직접 연관돼 먹지 못한다는 근거 없는 악플이 달리기 시작했다.

결국 분뇨가 불법 투기된 지역과 B사 취수원과의 거리가 상당하고 수질 관리 과정들이 공개되며 사태는 무마됐으나, 이미 기업은 브랜드 이미지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기업 앞 불법 시위, 국민 안전·생활권 위협 및 기업 이미지 악영향 초래

권위주의 정부 청산 과정에서 탄생한 현행 헌법의 영향으로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가 때때로 과도하게 해석되면서 실생활에서 시민 다수의 일상과 기업 활동을 침해하는 역설적인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주요 대기업 사옥 인근에서는 연중 내내 시위대들이 확성기를 이용하여 극심한 소음 피해를 유발하고 있고, 허위 사실과 혐오 표현들로 가득 찬 불법 현수막과 천막들은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으며, 특히 기업 신뢰도에 악영향을 초래하고 있다.

실제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사옥 인근 불법 시위로 글로벌 브랜드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지만,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헌 판결 이후 지속된 입법 공백 상태는 기업 앞 시위 현장을 불법이 판치는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이를 단속해야 할 지자체와 경찰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시위대의 민원과 시위 진압 과정의 불법 판결 가능성을 우려하여 미온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작년 서초구청의 행정대집행으로 현대차그룹 사옥 인근에 설치된 불법 천막이 10년 만에 철거된 사례가 있지만, 여전히 많은 기업들은 불법 시위에 노출돼 있다.

▲‘표현의 자유’ Vs ‘타인의 명예·권리 보호 의무’간 균형점 찾는 법률 개정 서둘러야

현수막이나 댓글 내용이 명예훼손 및 모욕에 해당할 경우 현행법으로 해당 현수막 및 댓글 작성자를 처벌할 수는 있다. 일반적 명예훼손은 형법상 명예훼손죄가 적용되며, 온라인상 명예훼손은 정보통신망법상 사이버 명예 훼손죄로 처벌이 더 무겁다. 모욕행위는 형법상 모욕죄로 처벌하고 있다. 

악성 댓글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심화되면서 규제를 강화하자는 내용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21대 국회에서 다수 발의되었다. 하지만, 정보통신망법도 집시법처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법안 논의가 지지부진했다.

좀 더 책임감을 가지고 댓글을 쓰자는 취지로 댓글 작성자의 ID를 공개하는 내용의 ‘인터넷 준 실명제’ 법안은 ‘표현의 자유’ 침해 논쟁에 휘말려 고전하다 소관 상임위 법안소위를 어렵게 통과했지만, 그 후 3년 넘게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5월 29일이 지나면 21대 국회 회기 만료로 동 법안은 폐기될 예정이다.

우리 헌법 21조 1항과 22조 1항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다. 동시에, 21조 4항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은 권리와 그에 따른 책무를 동시에 부과하고 있다.

헌법 37조 2항은 또한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가 타인의 생활 환경을 위협하거나 정당한 이유없이 기업을 폐업으로 몰아가는 자유까지 보장하지는 않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내세운 불법·탈법 행위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는 ‘표현의 자유’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고, 그에 따른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며, “사회적 해악을 초래하는 과도한 양상의 ‘표현의 자유’에 제동이 필요한 시점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다가오는 22대 국회에서는 현실과 가상 공간에서 과도한 ‘표현의 자유’로 인해 침해 받고 있는 국민과 기업의 명예·권리 보호에 주목하고, 구체적인 해결 방안 모색을 위한 법령 개정을 신속히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100c@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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