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은 왜 그랬을까 [5월28일 뉴스뷰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분야를 두루 취재하고 워싱턴 특파원을 지낸 권태호 논설실장이 6개 종합일간지의 주요 기사를 비교하며, 오늘의 뉴스와 뷰스(관점·views)를 전합니다. 월~금요일 평일 아침 8시30분, 한겨레 홈페이지(www.hani.co.k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5.28) 아침신문에서 가장 큰 뉴스는 어제 막을 내린 △한·중·일 정상회의 결과(정례화 & 비핵화 입장차)(6곳)입니다. 이어 △채 상병 특검법 앞둔 국회(4곳)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4곳) △훈련병 ‘얼차려’로 사망(2곳) 등이 1면에 실린 주요 기사들입니다.
① 차이의 발견 : 나경원
② 시선, 클릭!
-물가 오르니 소비 준다
- 실손보험 지급액 연간 증가 1.2조
- 의대 증원 여파, n수생 역대 최다
- 퇴사 처리 대행사 등장
③ Now and Then : 물론(허각, 2023)
① 차이의 발견
이 뉴스뷰리핑에서는 주로 메인뉴스 가운데 하나를 골라 정리하면서 각 신문의 보도 차이 등을 비교하는 형태를 취합니다. 아침신문을 보고 결정할 때가 많아, 아침마다 ‘선택’에 어려움을 겪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오늘 아침신문에서 가장 큰 뉴스는 ‘한중일 정상회의’(26~27일) 결과입니다. 그런데 ‘정상회의 정례화 긍정적, ‘비핵화’ 입장차는 더 벌어졌다'는 언론 평가가 대동소이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다른 주제를 골라봤습니다.
# 나경원 달라지나?
- 어제(월) 나경원 국민의힘 국회의원 당선자가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토론회에 나왔습니다. 나 당선자는 오랜 대변인 생활을 해 언론에 친숙하고, 기자회견 등에서의 답변도 기술적 부드러움을 갖고 있는 편입니다. 다만, 어려운 질문에는 완곡한 어법으로 에두르는 식의 답변이 많고,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밝히기보단 주변 설명을 다소 장황하게 설명할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인터뷰나 회견을 해도 그의 발언에서 뉴스가 크게 되는 경우는 잘 없었습니다. 사고를 치기보단 실수를 안 하는 쪽에 더 익숙해져 있고, 늘 준비성이 철저해 돌출발언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저도 어제 패널로 참석했는데, 애초에 패널들은 이 토론회에서 대단한 뉴스가 나오리라는 큰 기대를 갖지 않았습니다. 답변이 예상 범위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적당히 이재명 대표 등 더불어민주당을 공격하고,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서는 비판인 듯 옹호인 듯 다소 애매모호한 답변,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대해선 소프트한 수준의 경계 정도, 그리고 모든 답변이 국민의힘의 지배적 당론 범위 이내에 머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나 당선자는 이명박-박근혜-윤석열로 이어지는 국민의힘 내부 역학관계에서 단 한 번도 핵심 ‘친이’, ‘친박’, ‘친윤’이었던 적은 없지만, 또 반대로 ‘반’의 위치에 머물렀던 적은 없습니다. 늘 ‘Majority’(다수파)에 속했고, 늘 무대 위에 서 있었지만, ‘다수파 중의 소수파’ 위치에 머문 적이 많았습니다. 좋게 보면, 계파에 종속되는 경우가 잘 없었습니다. 그가 보수정부에서 늘 장관 후보 물망에 오르곤 했지만, 단 한 번도 장관을 한 적이 없습니다. `내 사람'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러니 소수파 자리에서 보면 늘 ‘양지’에 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본인 입장에서 보면 늘 ‘아쉬울 때면 찾고 일 끝나면 뒷전으로 내쳐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2011년 서울시장 선거였습니다.
1. 나경원의 예상 외 답변
나경원 당선자의 답변 내용이 언론보도에서 그렇게 크게 다뤄지진 않았지만, 어제 나 당선자는 중요한 답변을 많이 했습니다.
1) “임기단축 포함한 개헌 논의 열어놓아야”
- 토론에 앞선 기조발언에서 나 당선자는 “선거제 개편뿐 아니라 개헌 논의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애초 패널들은 ‘개헌’ 관련 질문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만큼 나 당선자의 ‘개헌’ 언급은 다소 돌출적이었습니다. 당연히 ‘개헌 논의에는 야권이 주장하는 윤석열 대통령 임기 단축도 포함하는 것이냐’는 질문이 나왔고, 이에 나 당선자는 “대통령 결단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것까지도 개헌 논의 때 모든 것을 열어놓고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많이 놀랐습니다. ‘4년 중임제 개헌 + 윤석열 대통령 임기 1년 단축’은 야권에서도 일부에서만 거론되는 사안이고, 국민의힘 정치인 중에서 이 논의에 대해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해당 논의를 야권의 정치적 공세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논의를 나경원이 제안한다는 것이 더 의외였습니다. ‘개헌론’은 패널들 질문에 답변하면서 나온 얘기가 아니었고, 나 당선자가 미리 준비해 온 발언이었습니다. ‘개헌’ 언급을 하면, ‘윤 대통령 임기단축’ 관련 질문이 나온다는 걸 나 당선자가 모를 리 없었다고 봅니다.
-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어제 저녁, 나 당선자의 이 ‘임기단축 포함한 개헌 논의’ 관련 기사를 페이스북에 공유했습니다. 조국 대표는 ‘대통령 4년 중임제 및 임기 단축 개헌’을 꾸준히 주장해 왔습니다. 조국 대표와 나경원 당선자는 서울법대 82학번 동기입니다. 정치적 입장이 달라 둘 사이는 공개적으로 대립되기도 하는 등 사이가 좋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현재 ‘개헌 논의’에서 둘의 입장이 같아진 셈입니다.
2) “국민연금, 모수개혁이라도 먼저 하자”
- 나경원 당선자는 지난 23일, 이재명 대표가 처음 연금개혁 합의를 제안하자 SNS에 “이재명 대표가 또 국민들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 연금개혁에는 ‘조금 더 내고 많이 받는 마법은 없다’고 말씀드렸다. 그건 매직(magic)이 아닌 트릭(trick), 속임수”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 그런데 이날 답변에선 “저는 처음에 굉장히 부정적이었는데, 첫 단추라도 끼워야 되는 거 아닌가. 모수개혁이라도 진행하는 게 맞지 않나”라고 답변했습니다. ‘22대에서 구조개혁까지 함께 추진해야 한다’는 국민의힘 입장과는 다릅니다. 나 당선자는 “이것(모수개혁)만으로는 연금 개혁이 끝나긴 어렵다. 첫 단추라는 의미라면 이재명 대표 안도 받을 수 있지 않나”고 거듭 밝혔습니다. 지금 국민의힘 안에서 이재명 대표안을 받자는 주장을 하는 인사는 22대 의원 중에는 지금까지 윤상현 의원 밖에 없었습니다. 원외 인사로는 윤희숙 전 의원, 신지호 전 의원, 김근식 전 당 비전전략실장 등이 있습니다. 어쨌든 나경원이 당내에서 소수파 의견을 주창한 것은 매우 이례적입니다.
3) “채 상병 자유 투표하자”
- 오늘 국민의힘은 ‘채 상병 특검법’ 재표결에 비상이 걸려 있습니다. 재의결이 가능한 17표 이상의 ‘찬성표’가 나올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않지만, 현재까지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공개적으로 표명한 5표를 넘어 몇 표까지 나오느냐가 관심입니다. 국민의힘은 오늘 본회의 전에 당론으로 ‘반대’를 정해, ‘당론 투표’를 결의할 예정입니다.
- 오늘 부결되더라도, 민주당이 22대 국회에서 ‘1호 법안’으로 채 상병 특검법을 다시 내놓습니다. 그때도 ‘당론 투표’로 해야 되느냐는 질문에 나 당선자는 민주당을 비판하면서도 “가급적 당론투표는 줄여야 된다. 당론투표 강제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다음에도 당론 투표 해야된다”고 답하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이 사안에 있어서도 국민의힘 지도부와는 차이를 보였습니다. 또 나경원 당선자가 만일 국민의힘 대표가 된다면,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당론 투표’하자는 이야기를 꺼내긴 어려워졌습니다.
4) “특별감찰관, 제2부속실 필요하다”
- 나경원 당선자는 이미 지난 1~2월에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논란이 일었을 때, “특별감찰관, 제2부속실 설치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나 당선자는 이날도 “내 입장은 초지일관”이라며 이를 거듭 확인했습니다.
5) ‘총선 패배 책임은 윤석열 대통령’
- ‘총선 책임 누구에게 있느냐’에 대해 명확하게 밝히진 않았습니다만, 답변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 “결국 윤 책임이 크냐, 한 책임이 크냐 갖고 논쟁하는거 아니냐. 누구 책임이 크냐에 대해선 거의 모든 사람들이 벌써 공유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
- “가장 중요한 건 구조적으로 왜 우리가 패배하게 됐느냐는 근본적 성찰해야 된다”
- “정부·여당이 보수덕목에 해당하는 것을 하나도 보여주지 못했다. 유능하지도 못했고 책임지지도 않았던 부분이지 않았나”
- “여당 되고 비대위 몇번 했나 모르겠다. 민주적 선출제도에 의한 지도부가 들어서야 되지 않나”
6) 한동훈 비대위원장에 대한 생각은?
- 역시 관련 답변을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 “한동훈 비대위원장 와서 고생 많이 했다. 한동훈 위원장은 애초 (비대위원장이 아닌) 선대위원장으로 오는 게 맞았다.”
- “정당 경험 없는 사람이 비대위원장으로 선거 총괄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부분 감안한다 생각하면 한동훈 위원장한테 (총선 패배) 책임없는 것이고, 그런 부분 감안 안 하면 책임 있는 것이다.”
- “제가 한동훈 위원장이면 (이번에 당 대표) 출마하지 않을 것 같다. 본인에게 별로 이득되지 않는다. 본인에게 굉장히 아주 위험성 높은 자리 아닌가 생각한다. 리스크가 너무 높은 반면 특별히 얻을 수 없는 자리 아닌가 생각한다”
2. 나경원은 왜 이랬을까?
1) 윤석열과의 거리두기 시작?
- 윤석열 대통령과 나경원 당선자는 대학때 사법시험을 함께 공부하던 사이였습니다. 서울대가 아닌, 윤 대통령 부친이 교수로 있는 연세대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했습니다. 청춘에서 가장 힘든 시절인 수험생활을 함께 한 사람들끼리 공유하는 동지애가 남달랐을 것입니다. 윤 대통령은 남편인 김재호 판사와도 잘 압니다. 그런데 나 당선자는 지난 전당대회에서 ‘친윤계 의원들의 연판장 사건’ 등으로 스스로 하차할 수밖에 없었던 일을 겪었습니다. 엄청난 충격과 상처였을 겁니다. 나 당선자 입장에선 국민의힘에 들어온 이후, 이런저런 상처와 뒤통수를 많이 경험했지만, 그중에서도 아마 가장 큰 사건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 그러나 나경원 당선자의 어제 토론회 답변 모습은 윤석열에 대한 배신감 차원에서가 아니라, 정치적 미래를 생각하는 정치인으로서 윤석열 정부의 잇따른 실정과 20%대 지지율 등을 감안하면, ‘윤석열 색채’로는 당도 본인도 미래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임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2) 전당대회 안 나가도 그만?
- “한달전 60이었다면 지금은 55 정도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다”
- 당대표 출마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나경원은 지금까지 자의든 타의든 어떤 자리에 거론이 되면 거의 매번 나갔습니다. 본인은 ‘당을 위한 희생’이라 생각하겠지만, 남들 눈에는 ‘자리 욕심’으로 비춰지곤 했습니다. 당선 가능성이 낮을 때 나선 적도 있었고, 당선 가능성이 높았는데 기류 변화로 고배를 마신 적도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당선보다 떨어졌을 때가 더 많고, 예상외로 떨어진 적은 있어도, 예상을 깨고 당선된 적은 없었습니다.
- 이번 전당대회를 앞두고 초기에는 ‘나경원 대표설’이 매우 유력했습니다. 총선 참패 이후, 나경원의 대중적 인기와 ‘친윤 색채’가 덜하면서도 ‘반윤’이라고는 할 수 없는 균형적 위치, 국민의힘에서 흔치 않은 서울 지역구 출신 등으로 인해 최적임이라는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는 한동훈 위원장의 출마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곧바로 흔들렸습니다. 한 위원장과 나 당선자가 동시에 출마하고, 진공상태에서 투표가 진행된다면, 룰을 어떻게 하든 한 위원장이 당선될 것입니다.
- 그런데 이번 당 대표는 매우 힘든 일을 앞두고 있으면서도, 정치적 이득은 크게 보이지 않는 자리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총선 참패 이후 당을 추스려야 하고, 대통령 지지율은 바닥인데, 또 임기는 한참 남아있습니다. 채 상병 특검법, 김건희 특검법 등 각종 특검법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고, 이에 대해 ‘방어’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국민 여론은 좋지 않습니다. ‘악역’도 아닌, ‘욕받이’ 역할을 해야합니다. 윤 대통령이 달라질 기미도 보이지 않습니다.
- 총선 패배 이후 물러난 한동훈 위원장 입장에선 무대에서 사라지면 그대로 잊혀질 수도 있고, 출마하면 된다고 생각하니, 나가려는 마음이 나경원 당선자보다 더 클 수 있습니다. 윤 대통령과의 관계성을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일 뿐입니다. 이에 반해, 나경원 당선자는 전당대회에 나가지 않아도 현역 의원입니다. 나름의 정치적 공간이 확보돼 있고, 완급 조절이 가능합니다. 나가야 되는 요인이 한동훈 위원장보다 덜 할 수 있습니다.
- 그래서 ‘한달 전’에 전당대회 나갈 확률이 100이 아닌 60이었고, 한동훈 위원장이 나선다고 하니 그보다 더 떨어진 55입니다. 이 -5에는 한동훈 위원장 외에 윤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한 고려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50은 넘습니다. 나갈 확률을 더 높게 잡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는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특히 엘리트 출신들은 그 경향이 더 합니다. 나 당선자는 어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용산과의 관계를 어떻게 조율해 가느냐가 여당 당대표 역할의 절반 이상이다. 그런 부분에 대한 확신이 서면, 제가 하는 것이 잘 할수 있단 생각이 서면 출마하겠습니다만, 쩜쩜쩜입니다.”
3) 여당 대표보다는 서울시장?
- 다소 추정이 섞인 것입니다. 어제 “서울시장이나 대권 도전 의향”에 대한 물음에, 나 당선자는 “지금이야 대권에 대한 생각은 그다지 없지만, 언제나 생각은 변할 수 있기 때문에”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시장 도전’에 대해선 답하지 않았습니다. 답변하다보니 빠진 것인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뺀 것인지는 명확치 않습니다. 당 대표로 나서 위기의 국민의힘을 재건할 수 있다면, 곧바로 대권 주자로 급부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 아울러 2026년 있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려면, 그 직전 당 대표 자리에 있는 것은 오히려 불리한 요소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나 당선자 입장에선 형극의 길인 당 대표보다는 서울시장 쪽에 더 관심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정당 지지세가 유지되는 한, 서울시장에서 국민의힘이 이길 가능성이 그리 높진 않습니다. 나경원의 고민이 깊은 이유입니다.
4) 나경원의 한계와 향후 궤도
- 어제 대통령실과의 관계에 대한 답변입니다. “밖으로 시원하게 이야기하고 갈등을 그대로 노정시키는 것이 당 대표 인기엔 도움될지 모르지만 그게 과연 정답인가. 결국 대통령실을 어떻게 변화시키느냐가 중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어쨌든 어떤 분들은 ‘대통령실이 다시 인기 얻기는 이미 안 된다’ 단정적으로 말하는 분도 계시지만, 보수재집권 큰틀에선 결국 정부의 인기가 어느 정도 유지돼야 재집권이 훨씬 유리하다 생각한다. 그래서 정말 협력적 긴장관계를 잘 가져가야 될 것 같다. 고차방정식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 나경원은 평생을 Majority를 지향하며, Majority로 살아왔습니다. 저항이나 마이너리티는 쉽지 않습니다. 나경원은 이명박 정부의 박근혜와 같은 위치를 지향하지도 않고, 그럴만한 자질이나 기질을 갖추지도 않았습니다. ‘협력적 긴장관계’가 윤석열 대통령과의 사이에서 가능할지는 의문입니다.
- 아울러 나경원이 지금까지 자신의 정체성으로 자주 언급하는 것이 `보수', `당', `의회주의자'였습니다. 이명박-박근혜-윤석열 등 보수정당이 정권을 계속 잡았습니다만, 국민적 평가는 늘 바닥이었습니다. 품격있는 `정통 보수'에 대한 꿈이 왜 없겠습니까? 또한 원내대표 시절(2018~19년), 황교안 대표와 짝을 이뤘기 때문인지, 한때 강성 보수 이미지가 씌워지기도 했습니다. 2020년 총선에서 패한 것은 당시 코로나 이후 `민주당 바람'이 워낙 강했던 탓도 있지만, 이도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나경원의 지역구인 서울 동작을은 강남 바로 옆으로 강남적 지향점을 갖고 있으면서도, 호남 출신이 많아 민주당 지지세가 강해, 동작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한, 보수정당 내에서 개혁적 또는 중도적 이미지를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가 국회의원을 언제까지 할런지 알 수 없으나, 그가 염두에 두고 있는 서울시장과 대통령 선거도 마찬가지입니다.
- 우리나라에서 정치인의 정치적 지향점을 규정하는 것은 때론 개인의 신념보다 지역구가 더 큰 영향을 끼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서울 동대문을 지역구로 두고 있을 때에는 반값 아파트 등 포퓰리즘적 성격이 다분히 있긴 했지만, 서민 정책과 중도적 목소리를 낸 적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경남지사로 가자, 보수색채를 강하게 띄기 시작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일했던 고민정 민주당 의원이 `종부세 폐지' 주장을 하는 것도 그가 속한 광진구을이 집값이 많이 올라, 종부세 대상자가 무척 많은 것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잠깐 얘기가 옆으로 샜습니다.
- 나경원은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입니다. 나경원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일종의 거리두기를 하면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은 어쩌면, `용산'과 국민의힘의 관계가 22대 국회에서는 이전과 달라질 수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긴장'이 시작됐습니다.
3. 기타
- 이날 국회 표결 등을 앞두고 보수언론인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사설 제목이 눈에 띄었습니다.
조선 = 여야가 뒤바뀐 듯한 풍경
중앙 = 정책 주도권 잃고 허둥지둥…국민의힘 여당 맞는가
- 보수언론의 윤석열 정부 비판 빈도가 점점 늘고 있습니다. 조급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국민의힘 내부 여권 정치인들의 심정도 비슷할 것입니다. 앞으로 여권 정치인들도 조금씩 의견을 피력할 것입니다. 둑은 조금씩 금이 가다, 갑자기 무너집니다. 둑을 막는데 힘쓰는 건 부질없는 짓입니다. 물의 수위를 낮춰야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주변 참모들이 그렇게 할 의사가 있을지, 그렇게 할 능력이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② 시선,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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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대 증원 여파, n수생 역대 최다
#### 퇴사 처리 대행사 등장
③ Now and Then
지난 22일 세상을 떠난 신경림 시인의 대표시는 ‘농무’이지만, 시인이 떠나는 길에 더 많은 사람들은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라는 시구가 포함된 ‘가난한 사랑 노래’를 더 많이 기억했습니다. 1988년 노동운동으로 지명수배중이던 어느 청년의 조촐한 결혼식에 주례를 서 준 시인이 그 신랑신부를 위해 축하의 의미로 지어준 시라고 합니다.
지난해 한국노동연구원이 통계청 자료를 바탕으로 펴낸 보고서를 보면, 20대 중후반(26∼30살) 남성의 경우 소득 하위 10%(1분위)의 혼인 비율은 8%지만, 소득 상위 10%(10분위)는 29%였고, 30대 초중반(31∼35살) 남성은 소득 1분위 혼인 비율이 31%, 소득 10분위는 76%로 나타났습니다. 여성의 경우, 소득 상위와 하위 양쪽에서 혼인율이 높고, 가운데가 낮은 유(U)자형이었다면, 남성들은 거의 소득과 혼인율이 정비례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36년 전인 1988년에는 ‘가난해도’ 사랑하고 결혼했지만, 지금은 ‘가난하면’ 결혼하기 힘든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가난은 이제 추억이 되지도 않는 세상인 듯합니다.
아파야 아름답다고 합니다만, 요즘엔 아름답지 않아도 아프지 않기를 바라겠지요. 오늘 영상은 가난한 신랑신부를 노래하는 허각의 ‘물론’(2023)입니다.
(*일부 포털에서는 유튜브 영상이 열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유튜브 영상을 보시려면, 한겨레 홈페이지로 오시기를 권합니다. 기사 제목 아래 ‘기사 원문’을 클릭하시면 됩니다.) (끝)
권태호 기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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