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보도 11면 게재 판결'인데...12면에 실은 조선일보, 법원 판단은
2011년 성폭력 관련 허위보도… 2018년 4월 대법원 11면 정정보도문 게재 판결
지면 광고 이유로 12면에 정정보도문 게재…'11면에 게재하라' 재차 소송
고법, 조선일보 손 들어줘…"언론사가 정정보도 판결 자의적으로 해석·이행 우려"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허위사실을 보도해 법원에서 정정보도를 결정하면서 정정보도문의 위치를 지정했다. 그런데 해당 신문사가 광고를 싣는다는 이유로 다른 곳에 정정보도문을 게재하면 어떻게 될까.
조선일보는 지난 2011년 7월13일 11면 톱기사 <국회 性추문 어느 정도기에 국회의장까지 나섰나>에서 “최근 수도권 여당 C의원실에서 유부남 보좌관이 미혼 여비서를 성폭행했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여비서는 그만뒀고 보좌관은 '상호 합의하에 관계를 가졌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2015년 6월 고등법원 판결문을 보면 A씨는 성폭행을 하지 않았다. 조선일보 보도에 A씨가 “상호 합의하에 관계를 가졌다”고 해명한 것처럼 돼 있지만 이 역시 사실이 아니었다. 또 국회의장이 2011년 6월경 국회 성추문에 대해 사실확인을 지시하지도 않았다. 이에 대법원은 2018년 4월12일 조선일보 보도를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으로 확정하면서 판결 확정일로부터 7일 내 '11면 우측 하단'에 정정보도문을 게재하라는 고등법원 판결을 확정했다.
조선일보는 지난 2018년 4월19일자 12면 우측 하단에 정정보도문을 게재했다. 정정보도문에서 2011년 7월13일자 사회 11면에 보도한 내용을 거론하면서 “그러나 위 보좌관이 미혼 여비서를 성폭행한 사실 및 위 보좌관이 '상호 합의 하에 관계를 가졌다'고 해명한 사실은 모두 확인되지 아니하였으므로 이를 바로잡습니다”라고 했다.
A씨는 법원 판결에서 11면에 게재하라고 한 것과 달리 12면에 게재한 것을 이유로 조선일보가 확정판결 주문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며 강제집행에 나섰다. A씨는 판결문대로 이행완료일까지 1일 100만 원의 간접강제금을 명한 확정판결에 따라 법원의 채권추심·압류명령 결정을 받아 강제집행을 실행했고 이에 대해 조선일보는 청구 이의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9월 서울중앙지법 제20민사부(부장판사 이세라)에 이어 지난 3월28일 서울고등법원 제8-1민사부(판사 김태호·김봉원·최승원)는 모두 조선일보의 손을 들어줬다.
판결문을 보면 A씨는 조선일보가 확정판결 주문대로 11면에 정정보도문을 게재할 수 있었지만 11면에 전면광고를 게재해 광고수입을 얻으려 자의적으로 12면에 정정보도문을 게재한 것이므로 정당화될 수 없고, 확정판결 주문대로 정정보도 의무가 이행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고법 재판부는 “선행판결은 2018년 4월12일 확정됐으므로 정정보도 게재의무 이행기간은 4월13일부터 4월19일까지인데 11면이 사회면인 날은 4월14일이 유일했다”며 “그런데 4월14일은 휴일인 토요일이라 정정보도문이 게재된 평일에 비해 통상적으로 실질 구독률이 높지 않은 날”이라는 1심 판결 이유를 그대로 인용하며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해당 기간 중 4월14일을 제외한 나머지는 11면이 전면 광고 지면이고 12면이 사회면이었다.
재판부는 “조선일보는 판결 확정일로부터 불과 7일이라는 단기간 내 정정보도문을 게재할 의무를 부담하게 됐는데 11면에 게재되는 전면광고일 경우 게재일로부터 상당 기간 이전에 광고계약을 체결해 게재가 예정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며 “7일의 기간 동안 11면에 광고 게재를 예정한 광고주의 경우 그 특정 시점에 반드시 광고를 게재해야 할 필요성이나 이익이 있을 수 있으므로 정정보도문 게재를 위해 예정된 광고를 취소할 경우 광고주에게 불측의 손해가 발생할 수 있고 조선일보도 상당한 재산상 손해를 입을 수 있으므로 예정된 광고를 임의로 취소할 수 없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판결 확정 7일 내 정정보도문을 게재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조선일보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조선일보가 12면에 정정보도문을 게재한 것은 불가피했다고 보이며 그 게재를 통해 A씨의 명예회복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는데 있어 11면 기재의 경우와 비교해 별다른 차이도 없었으므로 조선일보는 정정보도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이번 판결을 두고 법원의 확정판결을 언론사들이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방요한 변호사(법률사무소 유익)는 지난 24일 미디어오늘에 “일반적으로 법원이 재판에서 정정보도를 명할 때 지면의 게재 위치를 구체적으로 지정하여 명하고 있다”며 “더욱이 법원의 판결 확정으로 다툼이 종결된 사안이고 언론사가 의도적으로 그 판결 주문대로 게재 지면에 정정보도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음이 명백함에도 판결문대로 이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법원이 다시 판결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법원과 확정판결의 권위가 훼손되고 언론사들이 정정보도를 명한 법원판결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이행하는 근거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A씨는 이번 고법 판결에 불복해 지난 20일 대법원에 상고이유서를 제출했다. A씨는 미디어오늘에 “선행 확정판결은 민법 제764조의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으로서 피해자의 청구를 받아들여 원보도와 같은 지면인 '조선일보 사회 11면에 정정보도문을 게재하라'고 의무 이행을 명한 확정판결”이라며 “그럼에도 '기판력 있는 확정판결의 주문'에 포함된 정정보도 의무 이행 조건의 일부를 의무자인 조선일보가 자의적으로 변경해 확정판결 주문에 어긋나는 행위를 했는데 이를 해당 법원이 이치에 맞지 않게 정당화했다”고 했다. 이어 “이는 매우 균형을 잃은 받아들이기 힘든 판결로 사법정의의 최후 보루인 대법원에서 바로잡아주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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