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어떤 ‘계’에 속한 존재인가

한겨레 2024. 5. 28.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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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현의 커넥션 (21) 생명의 무대
문명은 생태계의 일부로, 생태계는 다시 지구의 일부로, 지구는 다시 태양계의 일부로, 그리고 태양계는 우주의 일부로 존재한다. 픽사베이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현명한 사람이다.”
소크라테스(470~399 BC)

현대 학문은 소크라테스의 철학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모든 선각자가 그러하듯 그 역시 자기 시대에서는 아웃사이더였다. 당시 그리스에는 현인이라 자칭하는 소피스트와 신을 모시는 신관들이 주류 지식인들이었다. 이들은 세상에서 모르는 것이 없었고 서로가 진실을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금은 궤변론의 대명사가 된 소피스트는 말싸움의 기술자였고, 신관들은 신의 뜻이라는 도그마로 모든 질문을 원천 차단했다. 수많은 진실의 주장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소크라테스는 모르는 것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앎의 시작이라는 철학의 통찰을 시작한 것이다. 그보다 백년 전 지구 반대편에 살았던 또 한명의 아웃사이더 공자도 “아는 것은 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 하는 것이 아는 것이다”고 말하였다. 이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정확히 구분하는 것이 지식 탐구의 시작이었다.

우리는 가족에서 국가에 이르는 다양한 사회 집단의 일부로 문명 안에서 살아간다. 문명은 생태계의 일부로, 생태계는 다시 지구의 일부로, 지구는 다시 태양계의 일부로, 그리고 태양계는 우주의 일부로 존재한다. 이처럼 우리는 다양한 층위가 겹쳐 있는 무대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우리가 접하는 문제들은 각각 다른 원칙이 지배하는 무대에서 발생한다.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배경 무대를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각 층위의 무대는 다른 원칙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이 지배 원리에 따라 크게 물리계, 생태계, 문명으로 구분이 가능하다. 물리계는 물리 법칙, 생태계는 생명의 도그마, 그리고 문명은 인위적 원칙이 지배한다. 물리계와 생태계는 과학의 영역이다. 학문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하고, 과학은 알 수 있는 것과 알 수 없는 것을 구분한다. 알 수 없는 것은 형이상학의 영역이며, 알 수 있는 것은 형이하학의 영역이다. 이런 번지수를 잘 구분해야 해답을 찾는 올바른 질문을 할 수 있다.

실존의 무대를 과학에서는 계(system)라고 정의한다. 연구 대상을 측정해야 하는 과학에서 계는 필수 개념이다. 과학에서는 계를 통해 연구 대상이 실존하는 시공간의 범위를 설정하고 상호작용을 연구하기 때문이다. 무한한 시공간에서 대상들의 상호 작용을 지배하는 법칙을 찾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대상을 측정하고 데이터를 분석할 때 고려 조건이 무한대에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계라는 시공간에 관심 대상을 가두고 정보를 추출하는 것이다. 경계를 설정한다는 것은 알 수 있는 것과 알 수 없는 것을 미리 구분하는 것이며, 구체적으로 연구 범위와 대상을 확정하는 것이 과학적 접근의 시작이 된다.

예를 들어 열역학의 법칙을 연구하기 위해 주전자를 경계로 설정 해보자. 주전자 내부가 계가 되고 여기에 존재하는 물 분자가 관심 대상이다. 주전자 외부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는 외계가 된다. 이렇게 정의하면 측정해야 할 데이터가 명확해진다. 주전자에 가하는 열에너지, 물의 온도 변화, 물과 수증기의 비율, 주전자의 압력, 주둥이로 나오는 수증기 온도와 부피 등 연구에 필요한 구체적인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이처럼 실체가 있는 계를 설정할 수도 있지만 추상적 개념의 계를 설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라도 범위를 규정하는 경계는 명확해야 한다. 경계가 다른 상태에서 측정된 데이터는 서로 호환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다음 살펴볼 것은 경계의 특성이다. 경계에서 일어나는 물질과 에너지의 통과 여부에 따라 열린(open), 닫힌(closed), 그리고 고립(isolated) 계로 분류된다. 경계에서 물질과 에너지가 자유롭게 교환되면 열린계, 물질 교환은 불가능하고 에너지만 교환 가능하면 닫힌계, 물질과 에너지 모두 교환이 불가능하면 고립계로 분류된다. 주전자’계’의 경우 열이 내부의 물에 전해지고 수증기가 주둥이로 나가기 때문에 열린계이다. 만약 주둥이와 뚜껑을 모두 땜질해서 막았다면 열에너지만 들어오고 물질은 나가지 못하는 닫힌계가 된다. 주전자가 고립계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리적으로 에너지 흐름을 완전히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 실험에서 뭐라도 측정하는 순간 에너지 손실이 일어난다. 따라서 에너지 교환까지 차단된 완벽한 고립계는 과학자들의 상상 실험에서 이용되는 개념이라 생각하면 된다. 우리는 물질 교환 여부만 따져 열린계와 닫힌계만 기억하면 된다.

우주에 존재하는 지구는 적어도 고립계는 아니다. 픽사베이

지구는 열린계인가 닫힌계인가

인간의 지성이 다룰 수 있는 가장 큰 형이하학적 무대는 우주다. 우주라 하면 시작도 끝도 없는 무한대가 생각난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우주의 죽음을 이야기하고 품고 있는 별의 개수를 추정한다. 과학이 다루는 것은 형이상학적 관념의 우주가 아니라 우주라는 ‘계(system)’이기 때문이다. 계라는 것은 경계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우주의 경계는 관찰 가능한 범위까지다. 인류의 과학 지식은 이 관찰 데이터를 기반으로 쌓아 올린 것이다. 그 바깥인 우주의 외계는 과학의 대상이 아니다. 세상 만물이 11차원에서 탄생되었다는 초끈(super-string) 이론이 유명하지만, 이는 과학이 아닌 수학의 영역이다. 과학의 어머니로 불리는 수학은 추상 논리를 다루는 형이상학의 영역이다. 과학으로는 다른 시공간을 가진 우주가 옆에 존재하는지, 같은 시간의 차원에 다른 공간으로 존재하는 평행 우주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관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자가 우주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의 대부분은 “관찰 가능한”이라는 수식어가 생략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관찰 가능한 우주라고 해도 우리 인지 능력으로는 무한으로 느껴질 만큼 광활하다. 지구는 태양계에 속해 있고, 태양계는 우리 은하계에 속해 있다. 우리 은하계는 다른 은하들과 국부은하군에 속해 있고, 국부 은하군은 처녀자리 초은하단에 속해 있다. 그리고 이는 다시 우주에서 가장 큰 중력에 의한 구조물인 라니아케아 초은하단에 속한다. 관측 가능한 우주는 이런 초은하단이 2조개 정도가 모여 구성된다. 인류가 멸종하지 않고 과학을 까마득히 계속 발전시킨다면, 직접 도달할 수 있는 최대 범위가 국부 은하군 정도로 추정된다. 과학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 우주는 열린계인지 닫힌계인지도 알 수 없을 만큼 광활하다.

우주에 존재하는 지구는 일단 고립계는 아니다. 태양에서 지구로 전자파(빛) 에너지가 계속 공급이 되며, 지구에서 우주로 복사 에너지를 방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구와 우주의 물질 교환도 일어난다. 가끔 운석이 지구에 떨어지고, 지구의 대기도 조금씩 우주로 흩어진다. 따라서 엄밀히 따지자면 지구는 열린계다. 계는 역동적으로 변화하며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구와 우주의 물질 교환은 지구 질량에 비해 너무 미미한 속도로 일어나기 때문에, 최소한 인류가 멸망하기 전까지 지구는 닫힌계로 여겨도 무방하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실제 접하는 가장 큰 범위의 계는 지구가 아닌 생태계(ecosystem)다. 픽사베이

생태계의 역동성은 어디서 나오나

우리가 살아가면서 실제 접하는 가장 큰 범위의 계는 지구가 아닌 생태계(ecosystem)다. 우주 비행사가 아니라면 지구 생태계를 떠나 존재할 수 없다. 바다든 육지든 하늘이든 생명이 존재하는 곳이 생태계다. 생태계는 지구와 동일한 계가 아니며, 차지하는 부피는 지구의 0.03%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지구가 생명이 넘치는 푸른 행성으로 보이는 이유는 생태계가 얇은 습자지처럼 표면에 퍼져 있기 때문이다. 생태계는 지구에 속하는 하위계(subsystem)이며, 지구와 물질과 에너지를 교환하는 열린계다. 생태계를 과학적으로 정의하면, 생물과 환경이 역동적으로 상호 작용하는 지구에 대해 열린계이다. 형용사가 너무 많이 붙어 있어 개념이 잘 잡히지 않지만 하나씩 살펴보면 어렵지 않은 이야기다.

먼저 환경은 계에서 관심 대상 이외의 모든 것을 말한다. 대상을 둘러싸고 있는 물질만이 아니라 물리적 조건까지 모두 포함된다. 예를 들어보면 온도와 압력 같은 물리적 조건, 물이나 공기 같은 물질, 그리고 태양 에너지와 지구 복사열 등의 에너지 등이 모두 환경이다. 즉 관심 대상인 생물을 제외한 모든 것이 환경이다. 지구 온난화 문제가 대두된 현재는 생태계 개념과 환경의 중요성이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불과 백여년 전만 해도 환경은 생물이 이용하는 수동적 배경 정도로 인식되었다. 생태계의 개념은 1930년대부터 환경 파괴의 부작용이 본격적으로 관찰되면서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이는 현대 문명의 발전 단계에서는 환경의 중요성을 체감하기 어렵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환경 파괴로 인한 생물의 변화가 인지가 되면서, 환경도 생물과 상호작용하는 역동적인 대상이라는 개념이 시작된 것이다. 환경은 역동적이며 그 변화는 다시 생물에 되먹임 되는 상호작용을 통해 생태계를 변화시켜 나간다.

생태계의 역동성은 엔트로피 법칙을 거스르는 생명 현상을 의미한다. 하지만 직관적인 생물의 삶과 죽음과 달리, 수없는 생물이 죽고 태어나는 생태계의 생사의 총합은 직관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역동의 반대인 정적은 흥미로운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앞 시간 죽음에 대해 설명한 대로, 계의 연결 에너지가 소진되면 엔트로피가 점차 증가하다가 최대에 달하면 정적인 계가 된다. 죽은 계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시간 개념을 고려한 지속성이 생태계 전체의 삶과 죽음을 구분하는 특성이다. 특정 시점에 역동적인 계라도 지속성이 없으면 죽어 가는 계라 할 수 있다. 열린계는 외부 에너지가 투입이 되어야 역동성의 지속이 가능하다. 생태계 역시 태양이 보내 주는 에너지를 통해 역동성을 지속시킨다.

생물 사이의 상호작용은 공생, 기생, 항생 등으로 나타난다. 공생은 사람과 대장균처럼 서로 의존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기생은 기생충과 숙주처럼 다른 생물에 일방적 의존이다. 항생은 먹이 사슬에서 나타나는 일방적 포식이다. 이런 생물이 상호작용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연결(접촉)이 필요하다. 따라서 생물의 상호작용은 활동 범위가 겹치는 국소 영역에서 일어난다. 하지만 생물과 환경의 상호 작용은 계에 포함되어 있는 모든 생물에 영향을 미치는 전역 상호작용이다. 즉 생태계의 관점에서는 모든 생물이 공생 관계에 있는 것이다. 생물과 생물, 생물과 환경의 상호 작용의 총합은 전체 생태계의 역동성을 만들어 낸다. 이 역동성의 방향은 지속적 혹은 소모적일 수 있다. 지속적 역동성은 전체 계의 에너지 투입과 손실이 균형을 이루는 상태를 의미하며, 소모적 역동성은 투입 에너지보다 소모되는 에너지가 더 많은 상태를 의미한다. 소모되는 에너지가 더 많은 경우는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의미다. 이는 생태계가 죽어 간다는 의미이며, 연결 에너지와 엔트로피의 균형을 잡지 못하면 서서히 정적인 상태에 다다르게 된다.

생태계가 계속 지속되는 이유는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하며 진행되는 유전 정보의 복제와 진화 덕분이다. 하나의 개체는 소멸하지만 다른 개체에 의해 대체가 되면서 먹이사슬의 순환이 계속된다. 픽사베이

지구 생태계를 지속시키는 힘

이렇게 정의를 하나씩 살펴보면 생태계에는 생각보다 많은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물리계와 생태계를 구분하기는 어렵다. 물리계도 에너지가 계속 투입되면 구성 물질이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역동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물리계의 관심 대상이 물질이라면, 생태계의 관심 대상은 생물이라는 유기체다. 따라서 물리계와 생태계를 구분하는 것은 개체(entity)의 특성이다. 생태계의 개체는 자신의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해 경쟁한다. 먹고 먹히는 적대적인 생물들의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데도 불구하고 생태계가 계속 지속되는 이유는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하며 진행되는 유전 정보의 복제와 진화 덕분이다. 하나의 개체가 소멸할 수 있지만 새롭게 복제된 다른 개체에 의해 대체가 되면서 먹이 사슬의 순환이 계속 연결된다. 이를 통해 전체 생태계의 역동성이 지속되는 것이다. 따라서 생태계에서는 상호작용의 총합이 전체 계에서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전체적인 에너지 소모가 더 많거나 지배 종의 자원 독식으로 먹이 사슬을 통한 에너지 순환이 끊어지면 생태계는 죽음을 향해 붕괴하게 된다.

생태계를 구성하는 개체는 하나의 세포로 구성된 단세포 생물에서 동물이나 식물처럼 여러 세포가 뭉쳐서 구성되는 다세포 생물이 모두 포함된다. 다세포 생물의 경우는 다양한 세포들을 개체로 가지는 독립적인 생태계로 다시 정의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사람도 특화된 기능을 수행하는 수많은 세포와 체내 환경으로 구성된 피부를 경계로 하는 열린 생태계이다. 지배 종이 자원을 독식하면 생태계는 죽어 가게 된다고 했는데, 사람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일어난다. 암세포는 주변 세포와 소통을 모두 끊어 버리고, 오직 자기 복제 기능만을 위해 자원을 독식한다. 이 암세포가 커지면 인체 세포들의 에너지와 엔트로피의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사람이 죽으면 암세포도 같이 죽음을 맞이한다. 암세포, 정상 세포, 그리고 단세포 생물인 세균 등도 세포막을 경계로 하는 열린계로 다시 정의할 수 있다. 이 경우 DNA, 단백질 등의 생체 고분자가 구성 개체가 된다. 이 세포가 생태계를 구성하는 생명의 최소 단위가 된다. 이처럼 생물도 세포막 혹은 피부 등의 물리적 경계를 가진 열린 생태계라 할 수 있다. 물론 생물의 경우는 구성 요소의 상호작용이 더 직접적이고 국소적이라는 차이가 있다.

지구 생태계는 환경을 공유하는 범위로 경계가 설정되는 하위 계의 총합이다. 생물의 상호작용 범위는 물리적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심해, 산호, 늪지 생태계 등의 독립적 생태계를 구성한다. 이런 국지 생태계가 모여서 해양, 육상, 우림 생태계 같은 더 큰 범위의 생태계를 구성한다. 그리고 이들이 모여 전체 지구 생태계를 구성한다. 현재까지 외계 생명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구 생태계는 현재까지 우주에서 유일하면서 가장 큰 생태계다. 물론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나 마을도 생태계의 하위 생태계의 하나다. 하지만 우리에게 너무 각별해 이를 문명이라 특별하게 부른다. 그리고 문명의 하위에도 프로그램 생태계, 경제 생태계, 학문 생태계, 문화 생태계 등 다양한 사회 집단이 존재한다. 하지만 자연 생태계와 사회 생태계에는 공통점도 있지만 상호 작용의 절대성에 큰 차이가 있다. 자연에서는 생명의 도그마가, 사회에서는 인위적 규칙이 구성 개체의 상호작용 질서를 유지한다. 그런데 자연 법칙과 달리 사람들의 합의에 의해 형성되는 규칙에는 절대성이 없다. 어긴다고 반드시 죽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하지만 문명에서 산다고 물리 법칙과 생명의 도그마 같은 상위계의 지배 법칙을 거스를 수는 없다. 사람은 날 수 없고 굶으면 죽는다. 이 지점에서 인문학과 과학의 구분이 시작된다. 다음 시간에는 사람이라는 특별한 생물이 구성하는 문명이라는 생태계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주철현 | 울산의대 미생물학·의학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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