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몸에는 털이 많습니까 [한주를 여는 시]
이승하의 ‘내가 읽은 이 시를’
김이듬 시인의
‘지금은 自慰 중이라 통화할 수 없습니다’
질서와 관습 거부하는 시의 모범답안
김이듬의 '지금은 自慰 중이라 통화할 수 없습니다'
1. 팔
너를 만지기보다
나를 만지기에 좋다
팔을 뻗쳐봐 손을 끌어당기는 곳이 있지
미끄럽게 일그러뜨려지는, 경련하며 물이 나는
장식하지 않겠다
자세를 바꿔서 나는
깊이 확장된 나를 후비기 쉽게 손가락엔 어떤 반지도
끼우지 않을 거다
고립을 즐기라고 스스로의 안부를 물어보라고
팔은 두께와 결과 길이까지 적당하다
2. 털
이상하기도 하지 털이 나무에, 나무에 털이 피었다 밑동부터 시커멓게 촘촘한 터럭,
멧돼지가 벌써 건드렸구나
밑에서 돌다가 한참 버텨보다가 몸을 날렸을 것이다 굶주린 짐승, 높디높은 굴참나무를 들이박기 시작했다 뭉텅뭉텅 털이 뽑혀나가는 줄도 몰랐을 한밤의 사투, 살갗이 뜯겨나간 산은 좀 울었을까
나는 도토리 한 알을 발견했다 가련한 짐승이 겨우 떨어뜨리고 채 찾아가지 못했나 멧돼지가 쫓겨가고 나서야 나무는 던져주었을까
도대체 길 잘못 든 나는, 손톱을 세워 나무를 휘감는다 한 움큼의 털을 강박적으로 비벼댄다 메시지 온다
「별 모양의 얼룩」, 천년의시작, 2005.
20년 전에 처음 이 시를 읽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국어사전에서 '자위'를 살펴보니 괴로운 마음을 스스로 위로하는 것이라는 설명과 수음手淫으로 가보라고 돼 있다. 수음은 손이나 물건으로 자기의 성기를 자극하여 성적 쾌감을 얻는 것이라 설명돼 있다. 마스터베이션, 오나니즘, 용두질, 자위와 같은 뜻이라고 한다.
제목부터 자극적이다. 이 시는 「21세기 우리 시의 미래」라는 책자에 자선 대표작으로 재수록돼 있기도 하다. 시인 스스로 초기 대표작으로 이 시를 꼽기도 한 것이다. 첫 문장이 "너를 만지기보다/나를 만지기에 좋다"이다.
너를 애무하는 것보다 내 몸을 만지는 것이 더 좋다는 도전적인 발언에서 시작하는 이 시는 "미끄럽게 일그려뜨려지는, 경련하며 물이 나는", "자세를 바꿔서 나는/깊이 확장된다", "나를 후비기 쉽게" 등 자위행위에 대한 묘사가 이어진다. 시는 둘로 나뉘어 있는데 앞부분은 자위가 팔을 뻗어서 하는 행위라는 뜻에서 '팔'을 소제목으로 붙인 것이 아닌가 한다.
후반부는 소제목이 '털'인데 시인이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한 부분이다. 사람에게 털이 나는 부위는 두피를 비롯해 겨드랑이, 사타구니 등 여러 곳이다. 가슴이나 배에 털이 난 사람도 있다. 시인은 사람 몸의 어느 부분을 적시해서 묘사하지 않고 멧돼지를 등장시킨다. 짐승에게 털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하고 있을 따름이다.
짐승에게 털은 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할 정도가 아니라 신체의 일부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사람 몸의 털은 성적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손톱을 세워 나무를 휘감는다 한 움큼의 털을 강박적으로 비벼댄다 메시지 온다"고 썼다. 짐승의 털과 사람의 털은 쓰임이 꽤 다름을 말해주고 있다.
이 시를 평가하는 입장에서는 호불호가 엇갈릴 수 있을 것이다. 충격적이라고 말하는 독자도 있겠지만 1934년, 이상의 시 「오감도」가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될 때 독자에게 준 충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시인은 대체로 기존의 질서, 기성의 관습을 거부하는 자이므로 이 시는 파격이 아니라 모범답안일 수 있다. 남과 여가 평등해야 한다는 것이 명백한 사실로 간주되는 오늘날, 여자라고 해서 음전해야 한다, 얌전해야 한다는 말은 설득력이 없다.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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