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없는 최상 조건 제시하겠다'…공격적으로 태양광 사들이는 외국 자본 [취재파일]

유수환 기자 2024. 5. 28.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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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힌 산골마을…"왜 산골까지?"

도사마을 주민
"태양광은 햇볕 잘 드는 유럽이나 미국 같은 평지에서 진행하기 적합한 사업 아닌가요. 산림 우거진 강원도가 신재생에너지에 적합한지 의문입니다."
 
태양광 사업자
"삼팔선 이남은 이제 (태양광 발전소가) 다 들어섰다고 보면 됩니다. 땅이 제일 싸니까 남쪽부터 사라졌고, 이제 강원도가 남은 거죠."

최근 강원도 산골 마을에 잇따르는 갈등 양상입니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여생을 보내려는 마을 주민의 이해와 '값싼 토지'를 매입하고자 하는 태양광 사업자의 이해가 정면으로 부딪힌 겁니다. 강원도는 전체 면적의 8할이 산지입니다. 산이 많고, 평지가 적으니 인구밀도가 낮고, 개발이 제한되니 땅 값도 쌉니다. 하지만 발전소 사업자 입장에서는 인구가 적어, 태양광 부지와 민가 사이에 둬야 하는 '이격거리 제한'을 맞추기 쉽고, 비교적 싼 비용에 사업을 개시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최근 심화한 '전력 계통 문제'도 한 몫 합니다. 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하면 '전력 고속도로'인 '송전선로'를 통해 옮겨야 합니다. 고속도로가 꽉 차면 교통 체증이 발생하듯이 '송전선로'도 수용할 수 있는 전력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전국의 이 '송전선로'가 포화 상태에 임박한 겁니다. 그래서 태양광 사업자들이 상대적으로 용량에 여력이 남아있던 강원 지역으로 많이 몰렸는데, 이젠 강원 지역도 한계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마을 토박이인데…사업자는 오리무중"

주민들은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입장입니다. 길게는 60년 반 평생을, 짧게는 10년 안팎을 살아온 고향 같은 마을인데, 동네에서 발전 사업을 한다는 사람을 본 적도 없다는 겁니다. 민가에서 멀리 떨어진 산골짜기나 산등성이면 모르겠는데, 마을 한 복판에, 6만 평 부지에 대규모로 들어오는데 말입니다. "사업자가 누군지 통 모르겠어요", "우리 집 바로 앞 감자밭인데, 찾아온 적도 없고, 공사를 하는지 마는지 설명도 없어요." 심지어 지자체에 허가 신청이 들어갔는지조차 모르는 이도 많았습니다.
 
도사마을 주민
"우리 마을 1, 2, 3차 태양광 사업은 한 사람 아니면 두 사람이 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들어오는 4차는 대체 몇 사람이 추진하는지 모르겠지만, 부지가 엄청 커요. 6만 평이래요. 인근 주민들은 어떻게 살라는 겁니까."
 
도사마을 주민
"우리 집 바로 앞에 들어온다는데, 누가 와서 물어본 적도 없고, 의논한 적도 없고, 연락도 없어요. 제가 너무 할머니고, 그러다 보니 얕보는 게 아닌가 생각도 들고…. 내가 싫어서 나가는데 누가 이 집에 들어오려고 하겠어요. 팔 수도 없죠."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도사리 도사마을, 태양광 사업자가 신규 매입한 필지 전경

국내 사무실, 한국인 대표이사…그런데 '외국 자본'?

주민들이 알기 어려웠던 이유는 비단 정보 부족 때문 만은 아닙니다. 마을 사람들이 지목한 필지의 토지 대장을 떼면 소유주로 지난해 설립한 한 신생 법인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등기된 법인 주소를 찾아가면 서울의 한 공유 사무실이 나옵니다. 상주 직원도 없는 '특수목적법인' 즉 SPC입니다. 이 SPC를 소유한 모(母) 기업이 어딘지 공개된 자료 만으로는 알기 어렵습니다. 특수목적법인은 한 사업장에서 일어난 자금이 다른 곳과 섞이지 않아 투명한 자금 운용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지분 구조나 사업 구조를 복잡하게 만드는 단점이 있습니다.
서울 양천구에 소재한 공유사무실


토지 대장에 소유주로 등장한 특수목적법인(SPC)


취재 끝에 확인한 SPC의 모(母) 회사는 인천에 소재한 태양광 회사로, 이미 국내 발전소 30여 곳을 보유한 곳이었습니다. 한국 사무실에, 한국인 대표, 회사 명도 우리말인 기업. 그런데, 이 법인의 최대주주는 한국인이 아니었습니다.

지난해, 이 회사의 지분 97.19%가 866억 원에 팔렸습니다. 매입한 주체는 '써밋에너지얼라이언스'라는 또 다른 SPC였습니다. 이 SPC의 지분을 100% 소유한 곳은 어딜까. 지난달 공시된 감사 자료에 등장한 최대주주는 'MAIF3 INVESTMENTS KOREA PTE. LTD'(맥쿼리 아시아 인프라 펀드 3호) 호주의 금융그룹 맥쿼리가 운용하는 펀드였습니다. 5조 3천억 원에 육박하는 펀드로, 이 가운데 약 2,400억 원을 국내 태양광 발전소를 매입하는데 투자한 겁니다.

이 투자 회사(SPC)는 또 다른 국내 태양광 회사 두 곳도 1,368억 원에 사들이는 등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업계에선 "이들 펀드가 이른바 '브라운 필드(이미 지어진 발전소)' '그린 필드(발전소를 지을 수 있는 부지)' 가리지 않고 사들이고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주식회사 해○ 대표
"지분을 거의 넘겼죠. 자산운용 펀드예요. 수익 사업이에요. 자금을 투입해서 신재생 에너지를 개발하고, 기업한테 전기세 받는 게 목표고.

지난달 공시된 써밋에너지얼라이언스의 감사자료

지난달 공시된 써밋에너지얼라이언스의 감사자료

지난달 공시된 써밋에너지얼라이언스의 감사자료

이게 다가 아닙니다.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인 미국 블랙록도 대규모 펀드를 조성해 국내 태양광 업체의 지분을 사들였습니다. 블랙록이 지분을 확보한 국내 업체의 홈페이지엔 '지금까지 본 적 없던 최상의 거래 조건을 제시하겠다'며 공격적으로 발전소를 매입하는 모양입니다.
지난달 공시된 블랙록 투자한 국내 태양광 회사의 감사자료

블랙록이 투자한 국내 태양광 회사의 홈페이지 화면

산업부, 업계 상황 파악하고 있나

전문가들은 외국 자본이 국내 태양광 시장의 주도권을 잡는 데 우려를 표합니다. 장기적으로 전기 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겁니다. 게다가 고금리, 고물가 상황에 더해 현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보조금까지 대폭 줄어 국내 업계는 사양길로 내닫는 상황. '전력계통' 문제도 최소 2~3년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외국 자본은 자금력이 돼 싼값에 미리 토지부터 발전소까지 사들이기 용이합니다.
 
주식회사 해OO 대표
"송전선로가 완전히 고갈돼서, 이제 변압기라는 시설을 증설해야 되거든요. 저희는 물리적으로 3~4년, 4~5년 기다려야 되는데 일단 들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사실 허가가 나도 이제 선로가 없는 지역이라 2~3년은 그냥 내버려둬야 해요.
 
홍종호/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
"굉장히 심각한 상황입니다. 이미 국내 사업자들은 '파산 직전이다', '문 닫기 목전이다'며 고군분투 중입니다. 그런데 신재생 에너지는 무조건 해야 되는 거거든요. RE100 때문에라도…. 해외 투자자는 자본 여력이 있으니까, 지금 사두면 앞으로 비싸게 공급하겠다, 돈을 벌겠다, 이런 전략을 가지고 국내에 들어올 수 있는 거죠."

이런 업계 현황을 우리 정부는 파악하고 있을까. 태양광 발전사업 허가 담당 주무부처인 산업부에 물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
"외국인 100%라고 해서 저희가 사업을 제한하고 그런 건 없습니다. 특별하게 외국인이다, 한국이다 이런 거를 보지는 않고요. 지분을 가지고 사업을 계속 영위해 발전 사업을 개시할 수 있는지 이런 사항을 보는 거고요. (외국인 자본 비중을) 특별히 따로 관리하거나 그러지 않습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의지를 갖고 모니터링하지 않는 이상, 지분 구조 파악도 쉽진 않을 거라고 전망합니다. 대다수 신생 특수목적법인(SPC)을 만들어 사업을 신청하고, 지분 역시 여러 단계 올라가야 해외 자본이 소유하고 있는 걸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재생 에너지 발전 비중을 2030년까지 20%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게 우리 정부의 계획인데, 양적 확대뿐만 아니라 전환되는 에너지의 소유 구조를 파악하고 혹여 있을 수 있는 부작용에도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유수환 기자 ysh@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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