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를 마다하는 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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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까지 촬영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배우는 체력도 중요할 텐데, 그런 점에서 챙기는 부분이 있나요?
제가 생각보다 체력이 좋은 편이라 특별히 챙기는 건 없어요. 비타민 꾸준히 챙겨 먹는 정도? 사실 운동을 부지런히 해야 되는데 촬영하고 나면 운동하러 가기 너무 힘들더라고요. 영양제에 의존하고 있어요.
촬영이 있는 날에는 식사도 든든히 챙기는 편이세요?
저는 오히려 안 먹어요. 간헐적 단식을 하면 되려 기운이 난다는 기사를 봤거든요. 실제로 몸이 가벼우니까 정신도 또렷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아직 한 끼도 안 먹었어요. 체력은 멀쩡한 것 같아요.
학창 시절에는 대회에 출전할 만큼 육상을 열심히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다진 체력이 도움이 되는 모양이네요.
되려 정반대예요. 그때는 운동을 너무 열심히 해서 관절이 많이 상해버린 느낌이거든요. 체력은 뭐랄까, 정신 싸움인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정신력으로 버티는 체력은 좋은 편이에요.
요즘에도 운동 즐겨 하세요?
집 밖에 한 번 나가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막상 나가면 즐기는 편이에요. 헬스장 가거나, 한강 가서 러닝하고 자전거 타는 것 좋아해요. 요즘 멋있는 운동하는 분들이 많던데, 저는 아직 그런 멋있는 운동은 못 하겠더라고요.
멋있는 운동이라 하면?
클라이밍 멋있더라고요. 그런데 너무 무서워 보여서 시도할 생각도 못 했어요.
평소에 쉴 때는 어떻게 시간 보내는 편이세요?
아무것도 안 해요. 저는 일할 때 에너지를 완전히 다 쏟는 편이에요.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면 밖에도 잘 안 나가고, 정말 푹 쉬어요. 그러다 정신이 들면 영화도 보고, 게임도 하고, 고양이도 만지고. 정말 오롯이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해요.
그럼 반대로 촬영 기간 꼭 지키는 것도 있나요?
제가 떡볶이를 엄청 좋아하는데요. 웬만하면 촬영 기간에는 떡볶이 끊으려고 노력해요. 얼굴이 너무 붓더라고요. 그 외에는 연기 말고 다른 것에 신경을 안 쓰려고 하죠. 제가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지 못하는 편이더라고요. 평소에 애니메이션 보고 게임하는 것도 좋아하는데요. 사실 대기 시간에 제 취미 생활을 할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장면 앞두고 있을 때는 그것도 안 하려고 해요.
최근에 보신 애니메이션 중에 하나만 추천 부탁드려요.
추천드리기에는 마니아적인 애니메이션인데요. 최근에 <미기와 다리> 재미있게 봤어요. 조금 색다른 개그 코드가 많이 들어간 작품이었어요. <주술회전>도 한동안 빠져서 열심히 봤네요.
<주술회전>에서 누구 제일 좋아하세요?
고죠 사토루죠.(웃음) 너무 멋있잖아요.
이번 인터뷰가 공개될 때쯤 <우리, 집>이 방영되죠. 극 중 맡은 ‘이세나’는 이렇게 소개되어 있더라고요. ‘베일에 싸인 여자. 세나는 비밀이 많고 속을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가졌다.’ 직접 연기한 입장에서 바라본 세나는 어떤 인물인가요?
세나는 남들이 보기에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본인조차 자신을 어려워한다고 느꼈고요.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한 채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캐릭터를 어느 정도 이해해야 대사도 자연스럽게 나올 텐데, 대본을 열심히 읽어도 분석이 잘 안 됐거든요. 그런 점에서 연기하기 어려운 캐릭터였어요.
난이도를 떠나서 작품이 끝날 때마다 배우는 게 한두 가지는 있을 것 같아요. 이번 작품은 어땠나요?
이번 작품 촬영하는 동안 유난히 많이 했던 생각이 하나 있어요. ‘부럽다.’ 그런데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감정이 부끄럽지 않다는 걸 배웠어요.
누구의 어떤 점이 그렇게 부러웠나요?
선배님들이죠. 촬영장에서 본 김희선 선배님의 눈빛, 이혜영 선생님이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 너무 부러운 거예요. ‘왜 나는 저렇게 못할까?’ 생각하면서 조금 작아지기도 했고요. 한편으로는 선배님들도 지금의 저 같은 마음이 있었을 테고, 그 시간을 지나왔기에 지금처럼 멋지게 연기하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부러워하는 마음이 부끄러운 게 아니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부러워할 줄 아는 것도 결국은 잘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니까요.
현장에서 선배님들께 질문해본 적 있으세요?
못 했어요. 저한테는 정말 큰 산처럼 느껴지는 분들이라서 질문을 못 드렸던 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선배님들이 먼저 격려해주시고 조언해주셨어요. 돌이켜보면 그 시간들이 이번 작품을 하면서 남은 큰 보람 중 하나예요.
만일 질문 시간이 있었다면 어떤 질문을 했을 것 같으세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연기할 수 있어요? 어떻게 하면 그런 눈을 할 수 있고, 어떻게 하면 그렇게 사람들을 집중시킬 수 있나요? 제가 속으로 했던 감탄을 그대로 질문드렸을 것 같아요.
만일 누군가 똑같은 질문을 연우 님에게 한다면 어떻게 답하시겠어요?
잘 모르겠어요.(웃음) 저도 나름의 노력을 해요. 대본을 많이 보는 편인데요. 대본 많이 보는 게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 하는데, 저는 대본 열심히 보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연기에 정답은 없지만, 막막할 때면 결국 대본 속에서 해답을 찾으려고 해요.
시청자 입장에서 <우리, 집>은 어떤 점을 기대하면 좋을까요?
오늘 마침 티저 영상이 공개됐는데요. 처음 보면 분위기가 무겁거든요. 뭔가 어둡고 깊은 느낌이 들고요. 동시에 블랙코미디 요소도 많이 녹아 있는 작품이에요. 무엇보다 선배님 연기 보는 맛이 있는 작품이죠.
서울공연예술고등학교 연기예술과 졸업하셨죠. 그때는 어떤 직업을 갖고 싶으셨어요?
그땐 배우도 되고 싶었고, 대학도 가고 싶었고. 어릴 때 꿈이 너무 많았어요. 그래서 팔랑귀처럼 누가 ‘이게 좋대’ 하면 ‘나도 그거 나중에 해볼까?’ 했거든요. 그러다 연습생이 되고 나니까 가수가 하고 싶어졌고요.
남들은 하나도 해보기 힘든 걸 연우 님은 다 해보셨네요.
맞아요. 제가 하고 싶었던 많은 것들 중에서도 간절하게 해보고 싶은 것들은 이뤄봤어요. 정말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만일 10대 때의 연우 님처럼 이것저것 다 하고 싶은 후배를 만난다면, 어떤 말을 해줄 것 같으세요?
시험 공부부터 열심히 하라고 할 것 같아요. 당장 눈앞에 있는 걸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해요. 저도 마음속으로는 많은 게 하고 싶었지만, 여기저기 나눠서 노력하지는 않았어요. 학생일 때는 열심히 학교 다녔고, 연습생 때는 열심히 연습했어요. 그래야 기회가 찾아왔을 때 놓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배우분들 뵐 때 평소 영화나 드라마 취향을 여쭙곤 합니다. 연우 님은 어떤 편이세요?
제가 이 질문 미리 받고 곰곰이 생각해봤거든요. 특정 장르를 좋아하지는 않아요. 그보다 계절감이 두드러진 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보고 있으면 촉감이나 날씨가 느껴지는 듯한 영화들을 좋아해요. 그리고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 로맨스를 보더라도 ‘쟤들은 정말 너무 사랑하는구나!’ 하는 것보다, ‘저런 게 사랑인가?’ 싶은 영화가 있잖아요. 그런 영화가 좋더라고요.
“화날 때 화도 내고, 슬플 때 울어봐야,기쁘고 행복할 때 웃을 수 있겠죠.”
일을 하다 보면 종종 칭찬받을 때가 있죠. 연우 님은 어떤 칭찬을 받을 때가 가장 기쁘세요?
사실 저는 누군가 칭찬해주시기 전에 제가 먼저 확인을 해요. ‘방금 괜찮았어요? 저 이거 잘하고 있는 거예요?’ 하고요. 칭찬을 기대해서라기보다, 제가 하고 있는 것에 확신을 갖고 싶어서요. 그러다 진심으로 ‘너무 좋았어’ 이야기해주시면 마음이 확 편안해져요.
저는 겉으로 티 내지는 않더라도 스스로의 장점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배우 연우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나요?
음, 잘 우는 것?(웃음) 배역을 맡고 대본을 받으면, 기본적으로 그 인물에 공감해야 되잖아요. 나부터 이해가 안 되면, 그 연기를 보는 사람들도 설득하기 어려울 테니까요. 제가 연기를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맡은 역할을 잘 이해하고 있지 않나 싶어요.
연기할 때도 우는 연기가 편하세요?
확실히 우는 연기가 편해요. 어려운 연기는 귀여워 보여야 할 때. 정말 너무 힘들어요. ‘타고난 사람들이 하는 연기다’ 싶을 정도예요.(웃음)
2년 전 <아레나> 인터뷰를 보니 “제게 필요한 것들을 찾고 있어요”라는 말을 하셨더라고요. 찾으셨습니까?
돌이켜보면 저한테 필요했던 건 스스로에게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이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스스로를 많이 몰아세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예전에는 그게 제가 일을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야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고 여겼는데, 그 시간이 쌓이고 보니 건강하지 못한 방법이더라고요. 요즘은 자기 자신한테 만족하고 보듬어주는 시간을 예전보다 많이 가지려고 해요.
다른 인터뷰도 찾아보니 ‘솔직함’이라는 단어가 많더라고요.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배우는 남들 앞에 서는 게 일인데, ‘이런 모습으로 보였으면 좋겠다’ 하는 점이 있진 않을까 싶어요.
그런 생각이 너무 없는 것 같아요. ‘이런 모습으로 봐주면 좋겠다’가 너무 없다 보니까,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나를 좋아해줬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은 늘 있어요.
배우를 하면서 ‘이 일 하길 잘했다’ 하는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촬영장에 가면 정말 많은 카메라와 스태프분들이 절 보시잖아요. 그게 신경이 안 쓰일 정도로 집중할 때가 있거든요. 그렇게 집중해서 연기를 쏟아내고 “오케이!” 사인 받았을 때. 그때 되게 연기하길 잘했다 싶었어요.
단순히 재미있고 뿌듯한 것과는 다른 감정이네요.
맞아요. ‘내가 이렇게까지 몰입해서 무언가를 할 수 있구나’ 싶은 경험이었어요. 다른 일을 했어도 이렇게 집중해서 에너지를 쏟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이 일 하길 잘했구나 싶죠.
스트레스 관리도 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따금 ‘힘들다’ 싶을 때는 어떻게 넘기는 편이세요?
원래는 혼자 삭였어요. 그러다 보니까 관리가 안 되더라고요. 내가 스트레스 받는 일에 대해서 모르는 척 입 꾹 닫고 있으면 너무 힘들어지더라고요. 요즘에는 화날 때면 나 자신한테 화도 내보고 울기도 해요. 가까운 동료들과 고민을 나누기도 하고요. 그렇게 하다 보니 마음이 고쳐지더라고요. 스트레스도 결국 감정이잖아요. 감정을 풀고 나니까 시원해지고, 시원해지니까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걸 느끼고. 화날 때 화도 내고, 슬플 때 울어봐야, 기쁘고 행복할 때 웃을 수 있겠죠.
지금 연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아까 말씀드린 것과 비슷한데요.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안정감을 갖는 게 가장 중요해요. 내 감정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평소에도 마음을 안정적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지금이 그 과정인 것 같아요. 배우는 매번 자기 자신을 마주하잖아요. 현장에 나가면 매 순간 모니터링을 하는데, 나의 부족한 모습은 잘 보이거든요. 그럴 때 좀 더 단단하고 건강하게 넘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래야 일도 더 잘할 수 있으니까요.
20년 뒤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하나요?
지금이랑 비슷했으면 좋겠어요. 물론 심적으로 더 안정적인 사람이 되면 좋겠지만, 크게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적당히 철들었는데 적당히 철없고, 적당히 진지한데 적당히 장난치는 거 좋아하는 사람. 슴슴하지만 밍밍하지 않은, 이 모습 그대로이고 싶어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오늘 인터뷰 끝나고 저녁 뭐 드시나요?
촬영 때문에 단식한 지 조금 돼서 맛있는 거 먹고 싶긴 한데요. 막상 떡볶이 먹으면 체할 것 같아서 샐러드 먹으려고요.
연우의 인생 영화 4
계절감이 느껴지는 영화를 좋아해요. <이터널 선샤인>은 ‘겨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잖아요. 사실 처음 보면 내용이 어렵게 느껴지지만, 누구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을 다뤘다고 생각해요.
<냉정과 열정 사이>, 나카에 이사무 2001
이 영화를 보고 처음 이탈리아에 가고 싶다 생각했던 게 기억나네요. 영화를 보는 동안 쨍하면서도 건조한 날씨가 느껴지는 게 너무 좋았어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다니엘 콴·다니엘 샤이너트 2022
이 영화는 보고 있으면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한 기분이잖아요. 그걸 영화로 구현한 게 무척 신기했어요. 배우들도 신나서 연기하는 것처럼 느껴졌고요. 어떻게 이런 영화를 생각하고 만들 수 있을까 생각했던 작품입니다.
<클로이>, 아톰 에고이안 2009
<우리, 집> 준비하면서 본 영화.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지닌 아름다움을 정말 잘 담아낸 작품이에요. 줄거리 는 사실 말도 안 되는 흐름으로 흘러가는데 이상하게 납득 가는 연기가 좋았죠. 이 영화가 지닌 우울하고 축축한 분위기도 너무 인상 깊었고요.
Editor : 주현욱 | Photography : 김영준 | Stylist : 안수빈 | Hair : 강도희 | Make-up : 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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