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 ‘생명줄’ 라파흐 검문소 17년 만에 ‘직접 관리’ 합의

이집트에서 가자지구 라파흐 국경 검문소를 통과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구호 물품 수송 트럭들. 아리시/EPA 연합뉴스

유럽연합(EU)이 17년 만에 이집트와 가자지구 남부를 잇는 핵심 통로인 라파흐 국경 검문소를 직접 관리·감시하는 임무를 재개하기로 합의했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27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번 결정은 국제사법재판소가 이스라엘에 라파흐 지역 공격 중단을 명령하는 등 가자지구 주민 보호 방안을 마련하도록 요구하는 국제 사회의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나왔다.

주제프 보렐 유럽연합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 외교장관 회의에서 ‘유럽연합 국경 지원 임무단’(EUBAM)을 부활하기로 원칙적으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다만 임무단 부활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관련 모든 당사자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국경 지원 임무단은 유럽연합이 역외 분쟁지역 등에 파견해 국경 통행을 돕기 위해 2005년 민간인들로 구성한 조직이다. 임무단은 유럽의 몰도바와 우크라이나, 리비아 등에서 활동한 바 있다. 가자지구 라파흐 검문소에서도 임무를 수행했으나, 2007년 6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장악하면서 활동을 중단했다.

라파흐 검문소는 국제기구와 외국 정부의 구호품이 이집트를 거쳐 가자지구로 들어가는 데 필요한 핵심 통로다. 이 검문소는 3주 전 이스라엘군이 주변 지역을 통제하면서 폐쇄된 상태다.

유럽연합이 국경 지원 임무단을 부활하기로 한 것은 가자지구의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주민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이 시급한 탓이다. 보렐 대표는 임무단 부활은 “가자지구로 사람들이 드나들도록 지원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할 것”이라며 “이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이집트, 그리고 이스라엘과 합의 아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최근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도 라파흐 검문소 재개방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유럽연합 국경 지원 임무단이 국경 감시 역할을 맡는 방안을 유럽연합과 물밑에서 논의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유럽연합 외교관들은 라파흐에서 군사적 적대 행위가 중단되기 전에는 국경 지원 임무단이 활동을 시작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이날 유럽연합 외교장관 회의는 이스라엘군이 라파흐의 난민촌을 공습해 수십명의 민간인이 숨진 뒤 열렸다. 이날 회의에는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요르단 등 아랍 5개국 외교장관도 참석했다. 보렐 고위대표는 국제사법재판소가 지난 24일 이스라엘에 라파흐 공격 중단을 명령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모든 유엔 회원국은 유엔 최고법원인 국제사법재판소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