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interview] ‘레전드→작가 변신’ 이동국, “마지막에 있어야할 곳은 축구”
[포포투=정지훈(정동)]
“은퇴 후 3년간 다양한 활동을 했지만, 마지막에 있어야할 곳은 축구다.” 한국 축구의 ‘전설’ 이동국이 은퇴 후 3년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언젠가는 축구계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전했다.
845경기 344골. 이동국은 경이로운 기록을 가진 대한민국 축구의 레전드다. 1998년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해 해성같이 등장했고, 같은 해에 차범근 감독의 눈에 들어 프랑스 월드컵 최종 명단에 발탁되기도 했다. 이후 네덜란드와 조별리그 2차전에서 과감한 중거리 슈팅으로 눈도장을 찍은 후 한국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그러나 축구 인생은 롤러코스터 같았다. 국내에서 열렸던 2002 한일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했고, 이후 군 입대를 통해 다시 한 번 전성기의 기량을 되찾으며 한국 대표팀의 주전 공격수로 자리 잡았지만, 2006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십자 인대 파열 부상으로 좌절됐다. 이후 2007년에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소속의 미들즈브러로 이적했지만 경기에 나서지 못하며 성남 일화의 유니폼을 입으며 국내로 돌아왔다.
또 한 번의 좌절이었다. 성남에 신태용 감독이 부임하면서 이동국, 김상식 등 베테랑 선수들과 결별을 선언했고, 결국 팀을 떠나야 했다. 그러나 이동국은 포기하지 않았다. 2009년 전북 현대에 입단하면서 제3의 전성기를 맞이했고, 2020년까지 12년을 뛰면서 K리그 우승 8회,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 등 무려 10개의 트로피를 수집했다. 국가대표로도 A매치 105경기에 출전해 33골을 기록했고, 2010 월드컵에 출전하기도 했다.
현역 생활을 하면서 845경기 344골을 기록했다. K리그에서는 228골로 통산 득점 1위, 77도움으로 통산 도움 2위, 305개의 공격 포인트를 만들면서 통산 1위를 차지했다. 전북 현대의 위대한 왕조를 만든 주인공 이동국이지만, 그의 축구 인생이 늘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이에 이동국은 자신의 은퇴 이후 삶까지 포함해 두 번째 자서전을 쓰게 됐다.
레전드에서 작가로 변신한 이동국은 27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결과를 아는 선택은 없다' 출간기념 기자간담회를 열어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했다.
[이동국 자서전 출간 기념 기자회견]
-은퇴 후에 다시 자서전을 쓰게 된 이유는?
선수 시절에 자서전을 썼었는데, 그 이후로 7년을 더 뛰었다.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새로운 책을 쓰게 됐다. 이번에는 누구나 부담 없이 책을 들고 다닐 수 있도록 표지 디자인을 하고 싶었다. 보통 자서전에는 인물의 사진이 들어가는데, 조금 더 좋은 표지를 만들고 싶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를 시작했다. 막내 시안이도 축구를 하고 있다. 어떤 마음인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4학년 때 실력을 보면 시안이가 더 잘하는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축구공을 가지고 논 것이 도움이 된 것 같다. 솔직하게 저는 시안이가 축구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이다. 또한, 아빠가 이동국이기 때문에 DNA가 좋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본인의 노력이 저 때문에 가려질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차두리가 은퇴를 할 때 차범근의 아들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공감이 된다. 그래도 시안이의 꿈을 응원해줄 생각이다.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최연소 출전 기록을 세웠다
지금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프로를 가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당시에는 아니었다. 흔히 가는 길은 아니었다. 당시 저도 연고전을 보면서 대학을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축구 선수로 성장하기 위해 프로 입단을 선택했다. 20살에 선배들과 경쟁하면서 나도 모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프로에 적응한 후 대표팀에 갔다. 운도 좋았다. 황선홍 선배가 일본으로 가면서 기회가 주어졌고, 차범근 감독님께서 최종 명단에 발탁하셨다. 당시에는 신문을 통해 봤는데, 저도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축구 선수로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네덜란드전 출전
캐스터 분이 김동국이라고 말할 정도로 저는 일반 사람들이 잘 모르는 선수였다. 공항에서 저한테 반겨줬던 분들이 딱 3명 있었다. 포항의 골수팬이었다. 황선홍, 홍명보 선배를 배웅하면서 저도 배웅해주셨다. 프랑스로 가기 전과 갔다 와서의 삶은 180도 달라져 있었다. 대회 도중 차범근 감독님이 경질이 됐기 때문에 국내 분위기가 당연히 좋지 않을 줄 알았는데,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셨다. 저의 축구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다.
-성인 대표팀과 청소년 대표팀을 오가면서 혹사 논란도 있었다. 이 시기를 돌아보면?
프랑스 월드컵 이후 청소년, 올림픽, 성인 대표팀, 소속팀을 오가면서 경기를 뛰었다. 무릎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선수로서 뛰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다. 축구 선수로서 뛰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부상을 참고 뛰었을 것 같다. 지금은 대표팀과 소속팀 일정이 구분돼있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소속팀 포항에 기여를 하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함이 크다. 주변에 조언을 해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든다.
-상무 입대가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말했는데?
당연히 2002 월드컵에 나갈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2002 월드컵 기점으로 경기력이 바닥이었다. 1998 월드컵 이후 제가 가진 능력보다는 과분한 사랑을 받았던 것 같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군대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타 스포츠 선수들이 4년에 한 번 있는 올림픽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 것을 보면서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다. 운동을 열심히 하는 선수들과 어울리면서 자신을 혹사시켰던 것 같다. 그러면서 2006 월드컵을 준비했다. 처음 군대를 갈 때는 패잔병처럼 들어갔다면, 2005년 군에서 제대를 할 때는 대한민국 No1 공격수로 성장했다. 후반 막판까지 체력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 같다. 90분까지 전혀 힘들지 않을 정도로 준비를 정말 열심히 했다.
-2006 독일 월드컵을 2개월을 앞두고 십자 인대 파열 부상이 왔다. 어떻게 이겨냈는가?
월드컵 두 달을 앞둔 경기였다.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볼이 좀 길었다. 그 볼을 잡기 위해 전력 질주를 했다. 그 부상을 당하자마자 여러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병원을 갔는데, 월드컵을 갈 수 있는지, 수술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당시 대표팀의 주전 공격수였기 때문에 신중하게 결정해야 했고, 독일로 가서 진단을 받았다. 의사 분이 30분간 말을 돌리면서 ‘월드컵에서 당신의 자리는 없을 것이다.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을 해줬다. 2002년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워낙 열심히 준비했기 때문에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결과를 어떻게 받아 들이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는 생각을 했다. 과정이 정말 중요하다. 독일에서 수술을 하면서 재활을 했고, 응원을 했다.
-프리미어리그 미들즈브러 진출
한국에서 영국으로 진출한 첫 번째 케이스였다. 재활 후에 국내에서 두 경기를 뛰고 나서 영국에 진출했다. 그 두 경기도 교체로 뛰었다. 경기 감각이 떨어져 있었지만, 프리미어리그 진출은 아무한테나 기회가 오지 않는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선택을 하게 됐다. 축구 선수로 프리미어리그에서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인간적으로는 성장할 수 있었다. 가족들과 음식을 만들어 먹고, 작은 행복을 느끼면서 살았던 것 같다. 프리미어리그 경험을 하면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30살에 성남을 떠나 전북으로 이적했다. 어떤 마음이었는가?
김학범 감독님이 경질되고, 신태용 감독님이 오시고 나서 베테랑 선수들과는 정리를 해야겠다는 이야기를 전화로 들었다. 계약 기간이 1년 남아 있었는데, 스스로 초라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축구 선수로 전성기를 맞이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고, 최강희 감독의 전북에서 제안이 왔다. 다른 팀 한 곳도 있었다. 조건은 더 좋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결정을 한 상황이었다. 그 때 최강희 감독님과 호텔에서 만나며 이야기를 했다. 조건은 전북이 더 좋지 않지만, 꼭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쏟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겠다고 이야기를 해주셨다. 신뢰와 믿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성공하기 위해 감독님을 믿고 전북에 입단했다. 이후 전지훈련에서 11경기 동안 득점이 없었는데도, 믿음을 주셨다. 진정한 리더는 구성원을 믿어주고, 따라올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감독님을 위해서라도 증명하고 싶었고, 20골 이상을 넣으면서 전북의 첫 우승에 기여했다.
-전북 현대의 왕조, 이유는 무엇인가?
선수들끼리 잘 어울렸던 것 같다. 지방에 있는 클럽이기 때문에 시간적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저도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저는 새로운 선수들이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줬던 것 같다. 경기를 뛰는 선수들은 아무런 불만이 없겠지만, 경기를 뛰지 못하는 선수들은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저는 그 선수들과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감독님이 데리고 왔다는 것은 분명히 쓰임새가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를 해줬던 것 같다. 벤치에 앉아 있는 선수들의 불만이 사라지면서 ‘원팀’이 됐던 것 같다.
-38살에 다시 국가대표가 됐다. 2018 월드컵 예선이었는데, 어떤 마음이었는가?
공교롭게도 신태용 감독님이 다시 등장한다. 또 전화가 왔고, 베테랑이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하셨다. 본선에 가더라도 월드컵에 함께 간다는 보장은 없다고 이야기를 해주셨다. ‘성남에 있을 때는 베테랑이라고 내치시더니, 이제는 베테랑이 필요하다고 말을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기쁜 마음으로 들어갔다. 제가 필요했다는 것 자체가 열심히 했다는 증거다. 2분을 남겨두고 경기에 투입됐다. 보통 선수라면 기분이 좋지 않았겠지만, 저를 기다리는 팬들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의 감정을 잊을 수 없다. 많은 팬들이 응원해주셨다. 100경기를 넘게 뛰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2분이다. 제 역할을 다한 후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할 수 있었다. 박수를 보내주신 팬들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845경기 344골, 만 41세에 은퇴
은퇴식 때 많은 이야기를 했다. 김상식 감독이 다음 시즌 전북의 지휘봉을 잡는 것이 확정됐는데, 한 시즌 더 해달라고 이야기를 했다. 선수와 감독으로 만나면 조금 어색할 것 같았다. 2020년에 20번을 단 이동국이 은퇴를 하는 것도 좋은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더 할 수도 있었지만 그 때가 가장 좋은 시기였다.
-은퇴 후에 여러 활동을 하고 있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은퇴를 하게 되면 경쟁이 없고, 은퇴가 없는 것을 해보고 싶었다. 처음에는 해설위원을 했는데, 그것도 경쟁이었다. 시청률 등 경쟁이 치열했다. 이후에는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었고, 즐길 수 있는 스포츠도 해봤다. 방송 활동도 하면서 경험을 했다. 사회에 나와 보니 신생아 같은 마음도 있었고, 솔직하게 사기도 두 번 당했다. 축구 선수한테 사기 치기가 가장 쉽다고 이야기를 한다. 축구는 동료와 함께 하는 스포츠인데, 사회는 또 달랐다.
-차범근의 추천사
추천사를 단 한 명만 하고 싶었다. 많은 분들은 최강희 감독님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축구 선수를 하면서 가장 많이 생각났던 한 분은 차범근 감독님이었다. 1998 월드컵에 선발했을 때 모두가 반대했지만, 차범근 감독님이 책임을 지고 발탁하셨다. 어린 시절에는 차범근 축구상을 받은 인연도 있었다. 정말 감사한 분이다.
-최강희 감독을 이야기하면서 ‘리더십’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전북의 후배 선수들이 이동국을 믿고 따는 모습이 있었다. 본인은 리더로서의 역할은 어땠는가?
뭔가를 시켜서 하는 것보다 후배들에게 믿음을 주고, 솔선수범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경기를 뛰지 못할 때 불만을 표현하지 않고, 경기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줬던 것 같다. 후배들이 나중에는 제가 타고 다니는 차를 사기도 했다. 억압하고 누르는 것보다는 후배들에게 믿음을 주고,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은퇴 후 3년간 해답을 얻었는가?
3년 정도 많이 쉬었고, 재미있는 삶을 살았다. 마지막에 있어야할 곳은 축구다. 여러 교육을 받고 있다. 제가 준비가 된 후 결정을 해야 한다. 축구를 통해 많은 것을 얻었기 때문에 결국에는 축구로 많은 것을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두현 감독이 전북의 지휘봉을 잡았다. 위기의 전북을 위해 한 마디 해준다면?
너무 안타까울 정도로 성적이 나오지 않고 있다. 김두현 감독이 들어가서 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수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전 감독들의 지도력에 아쉬움이 들었다. 김두현 감독이 들어가서 예전의 전북으로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믿고 기다려주셨으면 좋겠다. 최근 염기훈 감독의 사퇴를 보면서 팬들의 영향력이 너무 커졌다는 생각도 들었다. 축구 팬들의 수준이 올라간 것은 사실이지만, 지도자가 발전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 대표팀도 김도훈 감독님이 임시로 지휘봉을 잡았는데, 지도력을 믿고 있기 때문에 응원하려고 한다.
-독자들에게
책이 재미있다. 축구를 하면서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이 있었다. 모든 선택이 맞지는 않았지만, 어떤 선택을 하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과정이 좋다면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정지훈 기자 rain7@fourfourtwo.co.kr
ⓒ 포포투(https://www.fourfourtwo.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Copyright © 포포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