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주민, 中 수산물 공장서 노예노동... “월급 41만원, 하루 18시간 일해”

워싱턴/이민석 특파원 2024. 5. 2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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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 수산물 대량 수입 “제재 위반”
중국은 ‘北 노동자 고용’ 부인하지만
현지선 “고용 당연, 中청년들 저임금 노동 거부”
중국서 팔리고 있는 北 수산물 - 한국 식탁에 오른 바지락, 오징어 등 일부 중국산 수산물은 중국 가공 회사들이 북한 노동자 최소 수백 명을 고용해 수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지난해 4월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 둥강의 한 수산물 도매시장에서 북한산 추정 제품을 비롯해 수산물을 판매하는 모습. /조선DB

“대다수 중국 공장들이 당연하다는 듯 북한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어요. 비밀도 헛소문도 아닙니다.”

북·중 최대 교역 거점인 랴오닝성 단둥시의 둥강(東港·현급 시)에서 직원 400명 규모의 수산물 가공 공장을 운영하는 A씨는 이같이 밝혔다. 본지는 최근 북한 주민들의 강제 노동으로 생산된 중국산 수산물이 한국으로 대량 수입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위반이다. 안보리는 북한 노동자가 번 외화가 김정은 정권의 핵(核)무기와 탄도미사일 개발에 전용되지 못하도록 다른 나라의 북한 노동자 고용을 금지하고 있다. 북한 노동으로 만들어진 중국 수산물이 한국에 유통되고 있다는 건 우리 국민들이 알지도 못하고 김정은 정권의 자금을 지원해주고 있다는 뜻이다.

중국 정부와 이 곳 공장주들은 북한 직원들의 고용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본지가 접촉한 단둥 지역의 공장 관계자들은 “대다수 공장들은 여전히 ‘저렴한 노동력’을 이유로 북한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는 본지 보도 이후 미 연방 의회에서 “한국은 북 노동자들의 강제 노동으로 만들어진 중국 수산물 수입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는 경고가 잇따라 나왔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도 최근 북한 주민들의 강제 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재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줄리 터너 북한인권특사는 지난 17일 “북한이 광산업, 벌목, 해산물 가공, 정보기술 등 산업에서 일할 노동자들을 해외에 파견하는 과정에서 이뤄지는 강제 노동 관행을 조명하겠다”며 정부 차원의 제재·수입 제한 조치 등을 시행할 수 있다고 했다. 터너 특사는 “유사한 입장을 가진 파트너들과 협력할 예정”이라고도 했다. 향후 한국, 일본 등과 북한의 강제 노동을 겨냥한 합동 제재를 논의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지난해 5월 더우인(중국판 틱톡)에 올라온 다롄의 수산물 가공 공장 기숙사 사진. 3층짜리 건물을 약 2m 높이의 철조망으로 둘렀다.(왼쪽) 중국 단둥의 한 식품회사가 작년 2월 개최한 사내 공연. 북한 말로 연극을 하고 있다. 이 회사는 한국에도 수산물을 대규모 수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더우인 캡처

◇“北 노동자 월급 41만원이면…中청년들 저임금 노동 거부”

북한 주민들을 고용한 이들 공장들 중 한국으로도 수산물을 수출해왔다는 것이 확인된 회사들은 ‘다롄 하이칭 푸드’ ‘단둥 타이 푸드스터프’ ‘둥강 루위안 푸드’ ‘단둥 타이화’ ‘단둥 오메카’ 등이다. 현지 관계자들을 접촉한 결과 이 회사들은 그간 수년간 북한 노동자들을 고용해왔다고 한다.

단둥 둥강에서 수산물 가공 공장을 운영하는 A씨는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단둥시의 수산물 공장 가운데 상당수가 당연하게 북한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단둥 공장들이 북한 인력을 고용할 시 지급하는 월급은 1인당 2200위안(약 41만원) 정도다. 많더라도 2500위안은 넘기지 않는다고 했다. 값싸게 북한 노동자들을 부릴 수 있는만큼 북한인 고용은 필수라고 했다.

최근 들어 단둥엔 아예 중국으로 파견온 북한 관리들이 직접 북한 노동자들을 공급하는 ‘브로커’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 장기 주재 무역회사 대표(북한에서 파견 나온 무역회사 일꾼들)들이 이들 공장들에 북한 인력을 직접 공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엔 중국 화교들이 브로커 역할을 해왔지만 코로나 팬데믹 기간 북중 경제 교류가 끊기면서 이들이 사라졌고, 그 빈자리를 북한 관리들이 채웠다. 사실상 북중 당국이 협력하에 ‘저(低)임금 북한 강제 노동 시스템’을 구축한 셈이다.

한 둥강 수산물 공장 관계자는 “브로커일을 담당하는 북한 관리들은 올해 들어 여러 수산물 공장을 비롯해 의류 공장, 부품 공장 등에 인력 수요를 파악했다”고 했다. 중국 당국의 부인에도 수시로 북한 관리들이 북한 인력을 중국 공장에 공급하고 있다는 뜻이다.

A씨는 “올 초부터 새로운 북한 노동자들이 중국 동북3성(지린성·랴오닝성·헤이룽장성)으로도 파견되고 있다고 들었다”고 했다.

단둥 등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대거 고용되는 이유는 이 지역 중국 청년들이 저임금 노동을 거부하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단둥의 온라인 구직 커뮤니티인 ‘단둥취업’에서는 “단둥의 수산물 공장에서는 한 달 월급이 4000위안에 불과하고, 5대보험을 제외하면 손에 쥐는 금액은 2500위안”이라며 “이런 대우를 받고 누가 일하려 하겠느냐”는 글이 올라왔다. 물론 북한 노동자들은 이 금액보다도 적은 금액에 일하고 있다. 현지 공장들은 북한 노동자들을 쓸 수 있어 낮은 임금 체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여러 대북 소식통들에 따르면 단둥에만 최소 5만명의 북한 노동자들이 강제 노동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공장에서 이른바 노예노동에 시달리는 북한 노동자들이 생산한 수산물이 미국, 한국, 일본 등으로 수출되고 있다는 사실이 보도되자 북중 당국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북한 전문 매체 데일리NK는 “북한 당국은 이번 사안이 주요 외화 수입원의 축소라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만한 중대 사안이라고 보고 중국 측과 협력해 경제적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라면서도 “중국 수산물 가공공장의 제품 수출이 어려워지고 외화벌이가 여의찮게 되더라도 중국에 파견된 노동자들의 철수는 절대 불가하다는 입장이라는 게 북한 내부 소식통의 이야기”라고 했다.

북한 노동자 고용 의혹이 제기된 중국 다롄의 한 수산물 가공 공장이 만든 홍보 영상.(왼쪽) 중국 단둥의 한 수산물 가공 공장 앞에 한국 국기가 걸려 있다. 이곳도 북한 노동자를 대거 고용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더우인 캡쳐

중국 공장들의 북한 노동자 고용 정황은 중국의 소셜미디어 상에서도 일부 확인된다. 작년 5월 중국 더우인(중국판 틱톡)에 올라온 중국 수산물 공장 다롄 루위안푸드의 내부 기숙사는 약 2m 높이의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북한 노동자들의 이탈과 외부 접근을 막기 위해 ‘철통 보안’ 숙소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뤼위안푸드의 대지 면적은 1400제곱미터, 냉장 시설 규모만 6000제곱미터에 달한다.

2021년 말 더우인에 ‘단둥 오메카’ 회사의 연말 사내 행사 영상에서도 한복을 입은 노동자들이 다수 나타난다. 중국 회사들은 북한 강제 노동을 지적하는 보도가 이어지자 관련 영상을 다급하게 삭제하고 있다고 현지 소식통 들은 전했다. 마찬가지로 한국에 북한 노동자들을 동원해 만든 수산물을 수출해온 ‘다롄 하이칭푸드’는 최근 들어 6000~1만 위안에 달하는 비교적인 높은 월급을 내걸고 공장 직원들을 뽑고 있다고 한다. 현지 관계자는 “대북 제재 위반에 논란이 불거지자 북한 고용에 대한 눈속임을 하기 위한 차원으로 보인다”고 했다.

◇“북 노동자들 하루에 18시간 노동, 걸핏하면 관리들에게 폭행당해”

본지 취재 결과 중국 회사들은 북한 노동자들이 손질한 바지락·오징어·명태·우렁이 등을 한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앞서 미국의 비영리 단체 ‘아웃로 오션 프로젝트’는 중국 공장들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 20여 명을 지난해 인터뷰한 결과, 중국 회사 최소 15곳이 1000명 넘는 북한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고 파악했다.

본지는 아웃로 오션 프로젝트로부터 확보한 데이터를 통해 북한 강제 노동을 통해 생산된 수산물이 업계 상위권의 대형 마트 및 온라인 쇼핑몰들에서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본지 보도 이후 일부 대형 업체들이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여전히 다른 공장에서 만들어진 수산물들이 한국으로 유통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웃로 오션 프로젝트가 만난 북한 노동자들은 하루에 18시간 동안 일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 당국이 감시를 위해 파견한 관리자들에게 폭행 당하기 일쑤라고 한다. 욕설과 함께 성폭행을 당하는 경우도 많다고 북한 노동자들은 익명으로 이 단체에 밝혔다.

한국 정부가 이런 북한 강제 노동 문제를 면밀하게 파악하고 이를 막을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통일부는 지난달 정례 브리핑에서 관련 사안에 대해 “제3국에서 북한 노동자를 고용하는 건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안에 위반되는 것인 만큼 모든 회원국에 의무 준수를 촉구한다”고만 했다. 북한 강제 노동이 투입된 수산물의 한국 유통에 대한 질문에 “확인해 드릴 내용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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