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연 교육감 “학생인권조례 폐지는 권위주의에 대한 향수”
서울시 학생인권조례가 폐지 기로에 섰다. 4월26일 서울시의회는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통과시켰다. 갑자기 일어난 일은 아니다. 2023년 3월13일 서울시의회 의장이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발의했다.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해달라는 주민청구(4만4856명 서명)가 근거가 됐다.
이후 한동안은 ‘일단 멈춤’ 상태를 유지했다. 시민단체 260개가 구성한 ‘서울학생인권지키기 공동대책위원회’가 학생인권조례 폐지안 처리를 막아달라는 무효확인 소송과 가처분 신청을 냈다. 2023년 12월18일 서울행정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무효확인 소송은 1심이 진행 중이다).
서울시의회는 다른 방법을 썼다. 인권·권익향상특별위원회를 거쳐 의원 발의 형태로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다시 추진했다. 4월26일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 60명만 출석한 본회의에서 전원 찬성으로 폐지안이 통과됐다.
조희연 교육감은 최근 분주해졌다. “학생인권조례 폐지가 확정되지 않도록 여야 모두를 가리지 않고 설득 작업에 나서려고 한다. 하루하루가 간절하고 절박하다.” 폐지안 통과 직후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72시간 천막 농성을 시작했다. 농성을 마친 뒤에는 이동버스 집무실을 차리고 학생과 학부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을 만나러 다녔다. 5월16일에는 “현 폐지 조례안은 집행정지 효력이 기속(羈束)되는 동안 의결됐기 때문에 무효”라며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에 대한 재의를 요구했다.
현재 서울시의원은 총 111명이다. 폐지안 재의안이 가결되려면 74명(전체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당초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주도한 국민의힘 소속 의원(75명)이 전체 3분의 2를 넘는다. 다시 투표에 부쳐진다 하더라도 같은 결과가 나올 확률이 높다. 재의 요구를 일주일 앞둔 5월9일, 서울시교육청 교육감실에서 조희연 교육감을 만나 현재 상황과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이 통과됐다.
예전에는 차별적 논리에 동조하던 일부 의원들만 학생인권조례의 무조건적 폐지를 주장했다. 그런데 지난해 ‘서이초 사건’ 이후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교사들의 분노 방향을 틀기 위해 ‘교권 추락은 학생 인권 때문’이라는 왜곡된 담론을 만들었다. 윤석열 대통령도 비슷하게 언급했다. 교권 추락의 원인을 왜곡해 진단하면서 교사와 학생 간 갈등을 부추겼다. 서이초 사건 이후 대다수 교사들은 ‘과도한 악성 민원에 시달리는 교사들을 보호해달라’ ‘교육활동에 집중하기 어려운 여건을 개선해달라’고 요구했다. 선생님들도 교권 보호를 위해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학생인권조례로 생활지도가 힘들어졌다고 주장한다.
교권 추락은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해 발생하는 현상이다. 이른바 ‘내 새끼 지상주의’ 같은 학부모들의 잘못된 인식과, 교육을 배움이 아닌, 공급자인 교사가 고객인 학생과 학부모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로 바라보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최근에는 아동학대처벌법(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등을 남용해 이뤄지는 무분별한 신고가 선생님들의 교육활동 전체를 위축시키기도 한다. 학생에 의한 교권 침해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건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규제하고 교육해야 할 문제다. 학생인권조례 폐지 주장에는 권위주의에 대한 향수가 있다. 훈육하기 좋았던 시절을 연상하면서, 옛날 방식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향수다. 그렇게 돌아간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된다고 1년 후에 교권 추락 현상이 없어지겠나.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있나?
학생인권조례는 처벌을 위한 조례가 아니다. 반인권적 현실에 문제를 제기하고, 피해 구제를 요청하는 학생에 대한 보호와 구제 조치를 하는 게 핵심이다.
인터뷰에 배석한 우필호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옹호관(학생인권교육센터장)은 관련해 “기존 아동학대처벌법은 형사 처벌 위주다. 우리(학생인권교육센터)는 학생 인권침해 사건을 다룰 때 처벌 위주로 권고하지 않는다. 피해자의 권리 회복과 학교의 재발 방지 대책, 가해 교사를 포함해 전 교원과 학생을 대상으로 한 인권교육을 권고하는 식으로 자체적 해결을 유도한다. 실제로는 피해자의 권리 회복과 인권친화적 학교가 되도록 돕는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처벌과 징계의 근거라는 오해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10월 학생인권조례 개정안을 서울시의회에 제출했는데.
개정안에서 ‘신체적·언어적 폭력 금지’ ‘수업 방해 금지’ ‘교원의 정당한 교육활동에 대한 존중과 방해 금지’ 등 학생의 책무 규정을 확대했다. 법과 학칙에 따라 조언·상담·훈육·훈계 등의 방법으로 교육할 수 있다는 점도 명시했다. 타인의 권리에 대한 강조가 부족했다는 지적을 겸허히 수용하고 반성을 담았다.
학생 인권에 대한 생각이 다소 달라진 건가.
권리에 대한 생각은 더 풍부해질 수 있다. 과거 권위적인 학교 문화가 남아 있던 시절과 권위주의 유산을 극복한 지금은 우리가 직면하는 문제의 성격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학생 인권에 대해 ‘자유권적 권리의 확장’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했다면, 이제는 나의 권리를 타인의 권리와 어떻게 조화할 거냐 하는 새로운 생각과 시선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사생활의 자유를 보장하는 측면에서 보면 휴대전화 사용을 일괄 금지하면 안 된다. 하지만 교육권이라는 또 다른 가치를 위해 학교에서 휴대전화 사용에 대해 일정한 공적 제한을 가할 수 있다는 ‘생각의 전환’이 있었다. 학교 구성원으로서 학생의 책임과 의무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단계에 왔다.
서울시의회도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면서 ‘학교 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에 대한 조례(권리와 책임 조례)’를 통과시켰다.
이 조례가 학생인권조례와 병존할 수는 있어도 대체할 수는 없다. 이 조례에는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 금지를 포함해 학생인권조례에서 주요하게 담아낸 권리 조항이 대부분 빠지고 아주 일부만 포함됐다. 무엇보다 학생을 문제 제기할 수 있는 주체로 규정하지 않으면서 학생의 권리 구제에 대한 청구권을 박탈했다. 완전히 다른 내용의 조례를 두고 학생인권조례의 ‘대체 조례’라고 주장하는 건 학생인권조례 폐지 책임을 회피하려는 목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교권 보호 5법’이 통과되면서 교권 보호를 위해 교육활동을 방해하는 학생을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강화됐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인권조례처럼 학생 인권을 옹호하는 근거가 사라지면 또다시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다. 오히려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고, 그 바탕에서 교권을 두껍게 보장하는 법적·제도적 장치를 보강해가야 한다.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소속 정지웅 국민의힘 의원은 〈시사IN〉과의 통화에서 “교육청 감사실이나 사법부 등 (학생의 권리 구제와 관련한) 창구가 충분히 존재한다. 권리와 책임 조례는 학생의 권리를 포함했다는 점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가 아니라 대체다. 필요하다면 (권리와 책임 조례) 개정도 충분히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거부권(재의 요구)을 쓰더라도,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이 재가결될 확률이 높다.
교권 추락이 학생인권조례 때문이라며 원인을 잘못 끄집어내고, 학생인권을 악마화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6월10일 시작하는 서울시의회 정기회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에 대한 재의결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 중 두 명만 다른 판단을 해주면 재가결을 피할 수 있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이 합리적 판단을 해주기를 바라며, 끝까지 설득하고 소통하려 한다.
이은기 기자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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