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조례 폐지는 해답이 아니다”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는 이렇게 시작한다. “이 조례는 학생의 인권을 보장함으로써 모든 학생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며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이루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이런 내용이 담겼다. “학생은 성별, 종교, 장애, 경제적 지위, 사상,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차별받지 않을 권리). 학생은 건강하고 개성 있는 자아의 형성·발달을 위해 과중한 학습 부담에서 벗어나 적절한 휴식을 누릴 권리를 가진다(휴식권). 학생은 소지품과 사적 기록물, 사적 공간, 사적 관계 등 사생활의 자유와 비밀이 침해되거나 감시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사생활의 자유).”
서울시 학생인권조례가 폐지 위기에 처했다. 4월26일 서울시의회는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통과시켰다. 조례 제정 12년 만이다. 폐지를 주도한 김혜영 국민의힘 서울시의원은 학생인권조례가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 등 사회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항목을 차별받지 않을 권리에 포함해 불필요한 논란을 양산했고, 학생들이 권리와 책임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갖도록 유도하는 등 오늘날의 교육 현장을 황폐화시키는 주범”이라고 규정했다. 이에 반박하며 5월16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서울시의회에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에 대한 재의를 요구했다.
‘조례’는 지방의회 의결로 제정되는 각 지방자치단체의 규범이다.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는 서울시민의 주민발의(9만7702명 서명)에서 출발했다.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지던 2010년대 초는 ‘때리지 말라’ ‘두발을 규제하지 말라’ ‘강제 야간자율학습을 멈춰라’ 등 인권을 보장하라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던 시기였다. 이런 요구가 모여 2010년 경기, 2011년 광주에 이어 2012년 서울에서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됐다. 그 뒤 줄곧 보수 기독교 단체를 중심으로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라는 요구가 나왔다.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 금지’ 조항을 문제 삼았다.
‘서이초 사건’ 이후 또 다른 방향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 여론이 만들어졌다. 지난해 7월18일 서울시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1학년 담임을 맡았던 2년 차 교사(23)가 교내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고인은 학급의 한 학생이 다른 학생의 이마를 연필로 긁은 사건과 관련해 학부모 민원에 시달렸다고 알려졌다(2월27일 고인에 대한 순직이 인정됐다). ‘남 일 같지 않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라는 동료 교사들의 분노와 절망이 오랫동안 들끓었다.
서이초 사건의 근본 원인, 즉 ‘교권 추락’의 원인으로 정부는 학생인권조례를 지목했다. 고인의 사망 사흘 뒤인 지난해 7월21일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학생의 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우선시되면서 교사들의 교권은 땅에 떨어지고 교실 현장은 붕괴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학생인권조례 개정을 지시했다. “교권을 침해하는 불합리한 자치조례 개정을 추진하라(2023년 7월24일).”
일부 교원단체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나왔다. 지난해 7월25~26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3만2951명 참여)에서 유·초·중·고 교원 84.1%가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추락에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 조성철 교총 대변인은 〈시사IN〉과 통화에서 학생인권조례의 ‘일부 독소조항’이 교권 추락의 원인이 됐다고 주장했다. “미성년자인 학생들은 아직 인격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도가 필요한 부분이 많다. 휴식권 보장이나, 두발과 복장에 개성의 자유 부여, 소지품 검사를 못하게 하는 조항에는 학생들의 권리만 부각하고 의무나 책무가 없다. 잘못된 인권 의식을 심어주고 교사의 생활지도에 거부하거나 반항하는 빌미가 되고 있다.”
하지만 ‘교권 침해는 학생인권조례 때문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선생님들도 있다. 4월30일 교사 1478명은 “교육공동체 내 한 구성원의 인권을 지우는 방법으로는 다른 구성원의 인권 역시 지킬 수 없다”라며 조례 폐지를 규탄하는 성명문을 냈다.
〈시사IN〉은 학생인권조례 폐지 규탄 성명에 동참한 현직 교사 5명을 만났다. 초등학교 교사인 A씨(43)와 B씨(50), 중학교 교사 C씨(35), 고등학교 교사 D씨(35)와 E씨(46)가 참석했다. 모두 서울의 학교에서 일한다. 5월13일 퇴근 후 만난 교사들과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이 느끼는 위기감과 위태로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인권조례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생인권조례 폐지’는 교사 사회 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민감한 주제여서, 참석자 모두가 익명을 요청했다.
왜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규탄하는 교사 성명에 동참했나?
D(고등학교 교사):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이 가결되고 ‘교사들의 숙원사업이 해결됐다’라는 보도를 보면서,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지금은 학생들 본인에게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대한 의사도 묻지 않은 상태다. 서이초 사건 이후, 학생인권조례를 탓하는 교사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교사들의 요구는 학생인권조례 폐지가 아니었다. 교육부와 정부가 교사들이 힘들어하는 이유를 엉뚱한 데서 찾고 서이초 사건의 해결을 학생인권조례 폐지로 ‘퉁친다’는 느낌 때문에,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반발하는 선생님들이 많은 것 같다. 금요일(4월26일)에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이 가결되고 주말 사이(4월27~28일) 서명을 받았는데, 예상보다 많이 모였다.
B(초등학교 교사): 10년 이상 학생인권조례가 유지될 수 있었던 건, 학생인권조례를 지지하고 함께하려는 교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이초 사건 이후 이런 목소리가 다 지워지고 학생 인권이 교권을 침해한다는 프레임만 부각됐다.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되면 교권이 보호될까?
B(초등학교 교사): 교사들이 지금 ‘학생 인권이 확장되어온 만큼 우리는 보호를 받고 있나?’라는 박탈감과 상실감이 큰 건 사실이다. 하지만 학생 인권이 비대해진 게 아니다. 우리가 쪼그라들었다. 학생인권조례 폐지가 아니라 교권을 분명하게 확립해야 한다. 그러려면 교사의 직무가 무엇인지, 그래서 교사가 뭘 해야 하는지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지금 교사의 역할은 추상적인데, 책임은 무한으로 져야 하는 상황이다.
C(중학교 교사): 막상 교사나 학생 중에 학생인권조례를 읽어본 사람은 정말 소수일 거다.
B(초등학교 교사): 대다수가 학생인권조례라는 말을 들어봤겠지만, 전문을 읽어본 사람은 1%도 안 되지 않을까.
학교 구성원 중 1%도 학생인권조례를 읽지 않았다면, ‘왜 필요하지?’라는 의문이 든다.
B(초등학교 교사): 우리는 헌법 조항을 다 알지 못해도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누린다. 학생인권조례도 마찬가지다. 구체적인 조항을 모르더라도 정기적인 인권교육, 두발·복장에 대한 가이드라인 등 조례에 근거한 학생 인권 정책이 학교에서 시행되고 있다.
A(초등학교 교사): 학생인권조례가 생기고 나서 조례를 바탕으로 학교마다 학생 생활규정을 여러 차례 개정할 수 있게 됐다. 이전까지는 개별 교사의 재량에 너무 많이 기대어 자의적이고 불합리한 생활지도가 이루어진 적도 많다. 조례를 통해 ‘어디까지가 가능한 영역’이고 ‘어디부터는 안 되는지’ 선이 그어지고, 공동의 합의가 만들어졌다.
E(고등학교 교사):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전국 중·고등학교 학생 생활규정 중 10%를 표본조사한 적이 있다(‘학생 인권 보장 위한 학교규칙 실태조사’). 조사 결과를 보면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지역에서는 어느 학교 생활규정을 꺼내봐도 특정 학교가 문제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지역에서는 학교마다 격차가 컸다. 균질한 수준으로 학생 인권 보장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학생인권조례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온 건데, 조례가 폐지되면 이 기준점이 무너질 수 있다.
C(중학교 교사):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학교들도 나타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 폐지 안건이 서울시의회에 올라간 날, 한 학교 생활부장 선생님이 ‘그럼 이제부터 생활규정 바꿔서 두발·복장 제한할 수 있느냐’고 묻더라.
학생인권조례 폐지 나흘 뒤인 4월30일, 서울의 한 고등학교는 전체 교직원에게 학생들의 교복 착용 여부, 두발 등을 불시에 검사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용의복장 지도 계획’ 문서를 보냈다. 교육청이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하자 학교는 계획을 철회했다.
2012년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된 후 학교는 어떻게 달라졌나.
B(초등학교 교사): 우리 교실에서는 큰 차이를 못 느꼈다. 두발·복장 규제에 대한 것도 중등에 비해 초등에서 예민한 부분은 없었다. 다만 학생인권조례가 공표되면서 동료 선생님들 사이에 ‘학생에게도 인권이 있구나’ ‘이제 내가 학생을 인권적으로 대해야 하는구나’ ‘인권적으로 대한다는 게 무언지는 몰라도, 옛날처럼 해서는 안 되겠구나’라는 인식과 부담감이 생긴 것 같다.
E(고등학교 교사): 나는 군에서 제대한 다음 날 ‘상륙돌격형 머리’를 하고 학교에 출근했다. 그때가 2000년대 초중반이었다. 사립 남자 고등학교에 특채로 뽑혔는데, 당시만 해도 학교에 군 장교 출신 교사를 선호하는 문화가 남아 있었다. 체벌도 있었다.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면서 교사들 사이에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혼란과 허탈감이 있었다. 그런데 조례가 시행되자마자 체벌이 없어지지도 않았다.
B(초등학교 교사): 이전부터 체벌이 아닌 다른 길이나 인권교육을 모색하던 교사들은 있었다. 2001년 인권위가 출범하는 등 사회 전반적으로 인권에 대한 의식이 높아졌고 학생 체벌에 대한 문제 제기도 이미 많이 나왔다. 2010년 7월 교사가 초등학생을 마구 때린 이른바 ‘오장풍 교사 사건’ 이후 더 공감대가 확산됐다. 이런 맥락 속에서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계기로 ‘체벌은 반인권적이다’라는 명제가 학교 내에서 재차 확인됐다.
A(초등학교 교사): 학생인권조례가 생기고 체벌 등을 활용한 종전의 학생 지도 방법을 더는 사용할 수 없게 됐다. 그러면서 선생님들끼리 다른 방법으로 이 상황을 돌파하려는 대안 연구도 활발해졌다. ‘더 좋은 방법이 뭐가 있지?’ ‘그래서 어떻게 생활지도를 해야 하지?’라고 궁리하게 만드는 자극제가 됐다.
교사들은 지금 정작 자신들이 학교에서 보호받고 존중받지 못한다고 호소한다.
D(고등학교 교사): 교사로서 1차적으로 공포를 느낄 때는 학생이 물리적으로 난리를 부릴 때다. 특히 건장한 남자 고등학생이 갑자기 화를 내면서 달려들면 막을 수가 없다. 교사가 소리 쳐도 학생들은 코웃음을 친다. 그렇다고 매를 들면 경찰에 잡혀간다. 선생님 입장에서는 모든 수단을 빼앗겼기 때문에 나를 보호할 방법이 없다고 느껴진다. 또 학부모 민원이 정말 고통스럽다. 내가 잘못한 게 없으니 괜찮다 싶다가도 법적 문제가 되는 순간, 결국 이기겠지만 1년, 2년, 3년간의 법정 다툼을 하는 것 자체가 너무 너무 괴롭다.
C(중학교 교사): 학교폭력이 일어나서, 시험문제를 잘못 냈다고, 체험활동이나 수학여행 중에 안전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에 등 수많은 이유로 소송이 걸린다. 중·고등학교, 특히 고등학교는 생활기록부가 대입에 연결되니까 소송전으로 바로 빠져든다. 자신이 교육적으로 하는 행동이 법적 공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 교사들이 두려워하는 환경 자체다.
E(고등학교 교사): 교육청 민원도 있다. 민원이 들어오면 무조건 답변을 해야 한다.
A(초등학교 교사): 서이초 사건 이후 교사들이 아동학대와 학교폭력을 가장 많이 이야기했다. 이 두 가지가 사이클처럼 돌아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 학교폭력 신고를 해 학교에서 절차를 밟는 순간, 가해 학생의 부모가 담임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한다.
B(초등학교 교사): 수많은 교사들이 거리로 나왔던 건 고인이 겪었을 위태로움, 위기감을 학교 현장에서 조금씩은 다 느꼈기 때문이다. 교사를 조금만 신뢰해주면, 예를 들어 금품을 갈취하거나 치료가 필요한 정도의 사건이 아니라면 교사가 ‘가해 학생’ ‘피해 학생’이라고 불리는 두 학생을 만나서 갈등을 조정할 수 있다. 그런데 무조건 다 ‘학교폭력’으로 가게 되고 교사가 교육적 개입을 할 여지가 없다. 개입할 여지도 없는데 사건이 터지면 다 책임을 져야 한다.
A(초등학교 교사): 이런 상황에서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되면 소송은 오히려 더 늘어날 거다. 서울의 경우 학생인권조례에 따라 학생은 학교에서 인권침해나 차별을 당했을 때 학생인권교육센터(학생인권옹호관)에 구제 요청을 할 수 있다(서울시 학생인권교육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학생 인권 침해 관련 상담 건수는 391건, 권리구제 접수는 167건이다). 인권침해나 차별행위가 있다고 판단하면 학생인권옹호관이 행위 중지나 인권교육, 주의나 징계를 ‘권고’할 수 있다. 법적 조치가 아니다. 오히려 학생인권보호관이 조사 과정에서 일종의 중재 역할도 해왔다. 조례가 폐지되면 센터에 구제 요청하지 않고 바로 법원으로 가버릴 것이다. 그러면 학생과 교사가 모두 더 힘들어지지 않을까.
이은기 기자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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