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던 한국 힙합, 맨스티어가 접수하다
‘맨스티어’의 인기는 일견 황당한 현상이다. 해외 팬덤 없는 무명 힙합 그룹의 뮤직비디오 영상이 공개한 지 두 달 만에 유튜브 조회수 1000만을 넘어섰다. 이들은 전업 음악인도 아니다. 이 힙합 뮤지션은 개그맨 최제우·전경민씨가 결성한 팀 ‘뷰티풀너드’다. 일종의 ‘부캐(실존 인물이 연기하는 가상의 캐릭터)’인 셈이다.
‘펭수’나 ‘마미손’과 달리 이 부캐 래퍼의 창작물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할머니가 총에 맞아 죽었다는 구절을 쓰고, 여성에 대한 저속한 가사도 반복된다. 그런데 한국 힙합에 밝은 팬덤은 이들의 콘텐츠를 즐긴다. 맨스티어가 ‘미러링’을 통해 힙합판의 문제를 비꼰다며 통쾌해한다. 몇몇 이름난 래퍼들이 ‘존중이 없다’며 맨스티어를 진지하게 비판하면서 판은 달아오르고 있다.
맨스티어의 ‘AK-47’ 가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순과 역설로 가득하다. 화자는 험한 동네에서 자랐고 할머니가 총에 맞아 사망했다고 말하는데, 그 뒤에는 곧바로 총기 합법화 국민청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엄마에게 ‘지옥 같았던 가정폭력(“등짝 공격”)’을 당했다고 하는 그는 갑자기 엄마에게 미안하다며, ‘은행 털고 약 팔고 남긴 돈’으로 호강시켜주겠다고 말한다. 맨스티어 모큐멘터리(가짜 다큐멘터리) ‘힙합 다큐: 언더그라운드’는 가사보다 더 모순적이다. 성공해서 효도하겠다고 가사를 쓰지만 일상에서는 부모와 할머니(노랫말과 달리 생존해 있다)의 속을 뒤집어놓는다. ‘센 척’과 총 이야기를 잔뜩 하지만 입영통지서가 날아오자 어떻게든 입대를 피하려 전전긍긍한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다. 평소 강조하는 ‘갱스터’ 정신은 SNS 게시물과 온라인 방송에서만 표출한다.
인기 래퍼들이 여기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 논쟁에 불이 붙었다. 래퍼 피에이치원(pH-1)은 5월4일 공연 도중 “래퍼인 척하면서 조회수 뽑으려고 래퍼 놀리고, 그러다 큰코다친다”라고, 맨스티어를 겨냥한 듯한 말을 했다. pH-1은 다음 날 ‘뷰티풀(Beautiful)’이라는 제목의 곡을 공개했다. 맨스티어를 디스(diss, 특정인을 랩으로 비판하는 것)하는 내용이었다. 이후 다른 몇몇 래퍼도 디스곡을 내고 맨스티어 비판에 가세했다. 래퍼 이센스도 SNS 라이브 방송에서 부정적 언급을 했다. “조롱, 혐오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낄낄대는, 찰지게 패는 악플 느낌이다. (중략) 랩만 보면 별로였다.”
맨스티어 멤버 ‘케이셉’은 5월6일 pH-1에 대한 ‘맞디스곡’을 냈다. 공개 12시간도 안 되어 조회수 100만 회를 넘고, 열흘 만에 400만 회를 웃돌았다. 사실 래퍼들의 곡은 대부분 힙합에 대한 ‘존중’을 부탁하고, 스스로에 대한 성찰까지 포함된 데 비해 케이셉의 맞디스는 조롱으로 가득하다. 그런데도 힙합 커뮤니티를 포함한 온라인상에서는 맨스티어 편에 서는 이가 많다. 더 자극적이고 독한 콘텐츠에 대중이 반응해서만은 아니다. 이 개그맨들은 비뚤어진 한국 힙합판을 제대로 때린 면이 있다.
중산층 래퍼가 웬 자수성가?
맨스티어의 가사는 클리셰와 혐오 표현 범벅이다. 그런데 적지 않은 전업 래퍼의 작업물이 이미 그렇다. 불우한 가정에서 자랐으나 랩 실력으로 돈을 벌어 사치한다는 ‘플렉스’가 레퍼토리다. 이들은 스스로 갱으로 묘사하며, 모든 여성이 자신을 성적으로 원한다고 주장한다. 몇몇은 일베저장소 용어를 섞는다. 래퍼 자신의 이야기라기엔 믿기 어렵고, 창작이라기엔 예술성과 참신함이 떨어진다.
힙합 음악 평론가인 강일권 전 〈리드머〉 편집장은 “한국 힙합의 팬이면서 동시에 불만과 혐오가 쌓인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불만의 방향은 복합적이다. 다만 그 상당 부분을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 〈쇼미더머니〉가 추동했다고 강 평론가는 본다. 이 프로그램은 2012년에 시작해 11시즌까지 방영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맨스티어가 일삼는 여성혐오적 가사와 패륜에 가까운 욕설은 과거 〈쇼미더머니〉 시리즈에도 적잖이 등장했다. 그 정도가 심한 출연자 몇을 두고 하차 여론도 일었지만, 제작진은 ‘힙합이란 장르의 특성’을 들어 묵인했다. 강일권 평론가는 “‘미국 힙합이 욕은 더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문제는 욕 자체가 아니라 소수자 혐오다. 오히려 미국에서는 소수자에 대한 폭력적 가사가 점차 줄어드는 분위기다. 미디어와 후원 기업, 팬덤의 비판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도를 넘어선 혐오 표현과 달리 자수성가, 플렉스, 갱스터 정서는 해외 힙합에서도 여전히 인기다. 왜 한국 팬덤은 이 대목에 대한 맨스티어의 풍자에 이리도 열광하는 걸까? 강일권 평론가는 “한국은 미국과 같은 환경이 아니지 않나?”라고 말했다. 힙합 본 고장인 미국과, 비슷한 형태의 음악·문화가 자리 잡은 국가에 공통점이 있다고 그는 말한다. “꼭 흑인이 아니라도 차별받는 집단이 있다. 빈민가와 게토가 있고, 갱스터와 결부된 그들만의 커뮤니티가 있다. 그들만의 언어와 정서를 공유하면서 살아간다.” 소외 집단 출신 래퍼가 험한 환경과 사회적 차별에도 불구하고 제 목소리를 내 성공했다는 게 미국 힙합의 자수성가 서사다. 이 맥락을 무시한 채,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한국 래퍼가 미국 힙합의 욕 섞인 가사만 따오는 사례가 늘었다. 몸에 안 맞는 옷을 입는 게 한국 힙합의 유행이 되면서, 어느 순간부터 힙합판을 웃음거리 삼는 이가 나왔다. 맨스티어는 이 정서를 적나라하게 대변해 성공하고 있다.
핵심은 공감이다. 맨스티어 콘텐츠와 팬덤에서 ‘군대’ 이야기가 꾸준히 화두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힙합 팬 다수는 젊은 남성이다. 병역은 이들의 주요 관심사를 넘어 정체성을 구성한다. 그러나 진정성과 공감대를 강조하는 힙합판의 래퍼 다수가 병역을 이행하지 않는다. 해외 국적이라 징집 대상이 아니거나, 질병 때문에 면제받는 이가 많다. 2022년 병역 비리가 적발돼 래퍼들이 실형을 선고받는 일도 일어났다. 이런 소식을 접한 팬덤은 래퍼들이 자신들과 다르며 그들의 음악과 태도에 공감하기 어렵다고 느낀다. 맨스티어는 5월6일 디스곡에서 국적이 미국인 pH-1을 “검은 머리 외국인”이라고 했다. 국적 거론 자체가 혐오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영상에 동조한 이들의 댓글에서는 자신들의 분노가 부당하게 이득을 보는, ‘다수자’를 향한다는 생각이 엿보인다. “한국어로 랩하고 먹고살면서 군대 얘기만 나오면 외국인”이라는 댓글이 ‘좋아요’ 2000개를 받았다.
맨스티어의 조롱에는 아슬아슬한 측면이 있다. 디스곡을 발표하는 래퍼들이 줄어들고 이전에 참전한 래퍼들도 태도를 누그러뜨리는 모양새다. 혐오와 미러링 사이 줄타기에 언제까지 성공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그러나 적어도 2024년 5월 중순 기준, 한국 힙합판에서 가장 막대한 존재감은 개그맨이 뽐내고 있다.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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