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표 2000원’ 낙원상가 실버영화관 김은주 대표 “노인들 놀이터 만들고 싶었죠” [차 한잔 나누며]
낙원상가서 실버영화관 운영
가격 인상 없이 16년째 유지
정부 지원 등 통해 비용 충당
하루에 500~600명 ‘북적북적’
“편히 수다 떠는 공간 됐으면”
“146번 줘요. 맨 앞쪽 자리.”
‘어르신을 위한 영화관’에선 꼭 영화를 보지 않아도 된다. 문을 열고 있는 동안엔 부담 없이 쉴 수 있는 공간이다. 표를 사면 ‘영웅본색’ 주윤발 얼굴이 들어간 ‘달러’ 쿠폰 한장을 받는데, 이걸로 영화관 내 카페에서 1000원을 할인받을 수 있다. 가래떡과 조청, 옛날 커피, 주변에 전시된 90년대 물건들까지. 이곳은 어르신 맞춤형 공간으로, 찾는 어르신들은 편안함을 느낀다고 한다.
영화 마케팅을 공부한 김 대표는 2008년 낙원상가에 처음 들어와 대중 영화관을 운영했고, 이듬해 실버영화관으로 바꿔 문을 열었다. 초창기 하루 관람객은 1000명을 훌쩍 넘었다. 좌석 수 300개, 하루 4∼5회 영화를 상영하는데 몰려든 어르신들을 감당하지 못해 대기표만 200번까지 간 적도 많았다고 한다. 김 대표는 “어르신을 위한 장소가 정말 부족했다는 걸 느꼈다”며 “여기 오는 분들이 저소득층만 있는 게 아니다. 후줄근해 보여도 건물주나 땅이 많은 거부도 꽤 있다”고 전했다.
상영 영화는 고전 뿐이다. 관람객으로부터 희망 영화를 받고 1∼50위를 정한 뒤 영화관에 적합한 영화를 튼다. 한 번은 ‘방자전’을 틀었다가 호되게 야단치는 어르신들을 상대하느라 곤욕을 치렀다. 김 대표는 “방자가 이상하다면서 역사를 왜곡했다고 화내셨다”며 “폭력 영화 등 어르신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영화는 제외한다”고 덧붙였다.
2000원 티켓 값으로는 영화관 운영비를 감당하기 쉽지 않다. 정부 지원을 받거나 SK 등 기업 후원, 일부 사업 공모전에서 받는 상금 등으로 매년 1억∼1억5000만원 정도를 충당한다. 그래도 9억원에 달하는 1년 운영비가 모자라거나 적자를 겨우 면하는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은 큰 고비였다. 하루 관람객은 50∼100명으로 급감했다. 김 대표는 “그땐 사비를 써서 운영비를 메웠다”고 돌아봤다.
임대료가 크게 줄면서 이제는 여유가 생겼다. 그래도 수익성은 거의 없다. 애초에 돈을 벌려고 한 사업도 아니다. 전국의 실버영화관이 소속된 시니어어벤져스 협동조합을 통해 수익이 생기면 다른 실버영화관을 도와준다. 김 대표는 “건물이 헐려서 영화관이 없어질 때까지 푯값은 2000원”이라며 “나중엔 여기 온 어르신들이 할 수 있는 소일거리도 준비해 소액이라도 벌 수 있게 할 계획도 있다”고 했다.
김 대표는 “아무도 안 하는 일을 하고 싶고, 거기엔 반드시 사회적 가치가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미 있는 일을 할 때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어려울 때 그 사람들이 힘이 됐기 때문이다. “전 그냥 이렇게 일 하고 싶어요. 앞으로도 계속.”
이정한 기자 han@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김나정 측 “손 묶이고 안대, 강제로 마약 흡입”…경찰 조사 후 첫 입장
- 매일 넣는 인공눈물에 미세플라스틱…‘첫방울’이 더 위험?
- “내 성별은 이제 여자” 女 탈의실도 맘대로 이용… 괜찮을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3개월 시한부' 암투병 고백한 오은영의 대장암...원인과 예방법은? [건강+]
- “나 집주인인데 문 좀”…원룸 들어가 성폭행 시도한 20대男, 구속
- “내 딸이 이렇게 예쁠 리가” 아내 외도 의심해 DNA 검사…알고보니 ‘병원 실수’
- 속도위반 1만9651번+신호위반 1236번… ‘과태료 전국 1위’는 얼마 낼까 [수민이가 궁금해요]
- 사랑 나눈 후 바로 이불 빨래…여친 결벽증 때문에 고민이라는 남성의 사연
- "오피스 남편이 어때서"…男동료와 술·영화 즐긴 아내 '당당'
- 예비신랑과 성관계 2번 만에 성병 감염…“지금도 손이 떨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