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올림픽 한국축구 전멸했는데…유일하게 경기 뛰는 ‘이 여자’
남·녀 대표팀 동반 탈락한
올림픽무대서 韓축구 대표
청소년대표 지낸 유망주
부상에 선수 꿈 접었지만
축구 그리워 심판복 입어
남자 경기서도 진행 검증
최근 매일경제가 만난 김유정 심판(35)은 그 경기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온 신경을 집중하며 경기를 관람했어요. 언젠가는 제가 저 자리에 설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니 온몸에 전율이 흘렀죠.” 그는 오는 7월 파리올림픽 축구 경기를 주관할 주심 21명 중 한 명으로 선정됐다. 2012년 런던올림픽의 홍은아 심판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 여성이 주심으로 올림픽 무대를 밟게 됐다.
23세 이하(U-23) 대표팀이 나서는 올림픽 남자 축구와 달리 여자 축구엔 연령제한이 없어 최고의 선수들이 선발된다. 12개국만이 참가 자격을 얻을 수 있어 경쟁이 치열하고 경기 수준이 월드컵 못지않다. 한국 여자 대표팀은 아직 한 번도 올림픽 무대에 진출한 적이 없다. 9회 연속 올림픽 본선 티켓을 따냈던 남자 대표팀도 파리 대회 출전이 무산됐다. 이번 올림픽에선 김 심판이 한국 축구계를 대표하게 된 것이다.
특히 이번 올림픽 축구는 기존 관행과 달리 남자 축구와 여자 축구를 나누지 않고 통합 심판 명단을 발표했다. 김 심판은 여자 경기를 주로 맡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남자 경기에 투입될 가능성도 열려있다.
김 심판은 이미 남자 경기에서도 경기 진행 능력을 검증받았다. 세미프로 축구 리그인 K3리그에서 주심으로 활약 중이고, 최상위 리그인 K리그1에선 비디오 판독(VAR) 보조 심판으로 출전하고 있다. 2년 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파라과이 평가전에선 대기심을 맡으며 남성 국가대표 경기도 경험했다. 그는 “6년 전에 국내 남자 심판 체력 테스트를 통과했고 이후로도 매년 자격을 유지해 왔다”며 “남성 경기라고 특별히 긴장되거나 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김 심판은 17세 이하(U-17) 청소년 대표로도 선발됐던 엘리트 선수였다. 그의 발목을 잡은 건 연이은 부상. 고등학교 2학년 이후 4년간 네 차례의 수술과 재활을 겪으며 은퇴를 결정했다. “한동안은 축구공도 보기 싫었어요. 그런데 딱 6개월이 지나니까 축구가 너무 그립더라고요. 심판복을 입고 그라운드에 돌아가기로 마음먹었죠.”
특히 경기 진행 속도와 공수 전환이 빠른 남자 경기에 심판으로 나서기 위해선 높은 수준의 반응속도와 체력이 필요하다. 김 심판의 일상이 웨이트 트레이닝, 인터벌 트레이닝 등 체력 훈련으로 가득한 이유다.
처음 남성 경기에 나섰을 땐 감독과 선수들 사이에서 여자 심판에 대한 편견 섞인 시선이 느껴지기도 했다. “여성 경기에 나서다 처음 남성 경기 심판을 보게 됐을 땐 자질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축구 규칙은 성별과 관계없이 똑같은데 말이죠.”
김 심판은 주눅 들기보다는 더 당당하고 단호해졌다. 안정적인 경기 운영과 꾸준한 소통으로 신뢰를 쌓아갔다. 그는 “한 경기만 함께 뛰어보면 선입견이 깨지는 것 같다”며 “단호하면서도 신뢰감 있는 판정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다 보면 더는 심판의 성별엔 신경 쓰지 않더라”고 했다.
김 심판의 다음 목표는 월드컵이다. 한국 여자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꿈의 무대에서 휘슬을 불어 보는 것이다. “성별의 벽은 이미 깨졌어요. 지금껏 TV 중계로만 보던 월드컵 무대에 심판으로 그라운드에 서는 날이 제게도 올 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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