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베이비부머 은퇴… 산업현장 베테랑 740만명 떠난다
경제활동인구의 25% 차지하는 1964~74년생, 올해부터 정년
산업계에 ‘25%의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 1차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의 퇴장에 이어 2차 베이비부머(1964~1974년생, 50~60세)가 만 60세에 접어드는 올해부터 은퇴가 본격 시작되기 때문이다. 매년 100만명 안팎으로 태어난 2차 베이비부머들은 지금도 740만명이 일하고 있어 한국의 경제활동인구의 25%를 차지하는데, 대규모 집단 퇴장에 들어가면서 산업계의 우려가 커지는 것이다. 이들이 은퇴하면 새로 일터로 진입하게 될 청년(12~22세) 인구는 2차 베이비부머의 절반(56%) 수준이어서 인구 절벽에 따른 구조적인 인력난이 불가피하다. 특히 체력·적응력·이동성이 뛰어나 생산성이 높은 청년 인구가 줄면 우리 경제 전반의 활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차 베이비부머들이 지켜주던 전통 제조업 생산직, 설치·AS 현장직에서 먼저 문제가 가시화되고 있다. 이들 업종은 특히 젊은 세대들의 선호도가 떨어져 이미 외국 인력으로 충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가기반시설 공사를 하는 플랜트 건설 분야나 국내 물류를 책임지는 화물 운송 등은 외국인 고용 허가가 나지 않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대기업이나 IT·반도체 등 첨단업종이라고 해서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처우가 좋은 곳 일부를 제외하면, 현장의 인력난은 이미 시작됐다.
세계 1위를 최근 중국으로부터 되찾은 조선업계는 안 그래도 인력난인데, 2차 베이비부머가 은퇴하면 커다란 인력 구멍이 생긴다. HD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 도크에서 후판 용접 등을 하는 생산직 2만7000명 중 42%(1만1400명)가 50세 이상이다. 16%(4300명)는 외국인이 메워주고 있지만, 의사소통도 안 되는 신참 직원들로만 채워서는 세계 1위를 유지하기 어렵다.
국내 최대 철강기업 포스코는 향후 5년간 생산인력(1만3500명)의 20%인 2700여 명이 은퇴한다. 섭씨 1000도가 넘는 고로에서 쇳물을 만들고, 불순물을 제거하고, 고유의 레시피로 고품질 철을 만드는 업무 특성상, 20~30년간 고도의 노하우를 체득한 기술자들이 필요하지만, 갈수록 이런 일을 하려는 젊은 층이 없어 경쟁력을 유지하기 쉽지 않다. 현장의 기업인들은 “정말 발등에 불이 떨어졌지만, 대책은 별로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경남 밀양에 있는 국내 최대 열처리 업체인 삼흥열처리 공장. 이곳 직원 109명 중 30대는 2명뿐이다. 40대 14명, 50대 35명, 60대 55명, 70대 3명이다. 60대 이상이 53%로 공장의 중추인 셈이다. 주보원 대표는 “우리 같은 중소 제조업체는 이제 정년이 무의미한 상황”이라며 “자동차 부품 제조의 필수 작업인 열처리가 멈추면, 현대차 등 자동차 생산 라인도 모두 서야 한다”고 했다.
베테랑 숙련노동자의 기술 전수도 막히고 있다. 경기도의 한 금형업체 A사 베테랑 장서호(60)씨는 “형상 가공 작업을 하려면 도면을 읽고, 설비 프로그램도 짜고, 기계 절삭의 미세한 차이도 읽어낼 줄 알아야 하는데 기술을 전수할 사람이 없다”고 했다. 신용문 금형조합 이사장은 “50대 후반 조장·반장들이 떠나면 기술 명맥이 끊길 판”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고용 안 되는 곳도 골머리
플랜트 건설 분야는 국가 기밀 보호, 노조 반대 등의 이유로 외국인 고용 허가가 안 나오고 있다. 그런데 올해 대규모 시설 공사가 집중되면서 2만명의 일손이 부족해 사우디 아람코가 9조원을 들여 울산에 짓는 석유화학단지 ‘샤힌 프로젝트’나, 평택·용인 반도체 공장 등의 공사비용이 올라가고 공기가 지연될 위기에 처해 있다. 플랜트산업협회 관계자는 “해외에서 납기를 가장 잘 맞추는 한국이, 국내 공사에서 납기를 못 맞출 상황에 놓였다”고 말했다.
젊은이들의 외면으로 2차 베이비부머가 주로 맡아온 화물트럭 운송 분야도 한계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화물트럭 운송은 안전 문제 등 이유로 외국인이 일할 수 없는데, 국내 대형 화물트럭 운전자들은 이미 80~90%가 50대 이상이다. 향후 인력 부족으로 물류 흐름에 차질이 생기면, 산업 전체의 활력과 성장 속도가 떨어질 수 있다.
◇가구·급식 등 내수 경제 기반들도 흔들린다
내수 경제를 책임지며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초 산업에도 위기가 오고 있다. 에이스침대는 인력난 고육지책으로 정년이 된 직원을 65세까지 재고용하는 한편, 각종 채용박람회에 나가 젊은 직원을 구하고 있다. 하지만 뽑아놓으면 금방 퇴사해버려 골치다. 지난 1년간 21명이 입사했다 퇴사했고, 이 중 14명이 20~30대였다. 회사 관계자는 “공장을 대부분 자동화했지만, 무거운 침대 프레임을 잠깐씩 옮기는 육체 노동이 일부 남아있어 이마저도 꺼린다”고 말했다.
여성 2차 베이비부머가 지탱하던 급식업계도 비상이다. ‘여사님’(조리보조원)들이 은퇴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웰스토리가 전국 500여 개 사업장에서 고용 중인 조리보조원 8000명 중 67%가 50~60대 여성이다. 회사 관계자는 “닭·생선 등 음식 재료를 손질하거나, 무거운 솥을 옮기는 등 힘든 일이 꽤 있다”며 “최대한 자동화 기술과 로봇을 개발하고 있지만, 워낙 손이 많이 가는 업무라 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국내 엘리베이터 설치·AS를 책임지는 50대 인력이 은퇴하면 향후 엘리베이터 사고 대응이 미흡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내 엘리베이터 설치 인력은 약 5000명으로 평균 연령이 50대 후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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