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조사' 두려운 갑질 피해 공무원들…"괴롭힘 보호막 입법 절실"
근로기준법 보호 받지 못하는 공무원들
노동부 "공무원징계령 등이 우선 적용"
제 3자 조사 아닌 '셀프 조사'에 기대야…"신고조차 어려워"
'공무원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발의 됐지만 국회 계류 중
최근 강북구 보건소 공무원 사망 등 공무원 사회에서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잇따르고 있지만, 이러한 비극을 막기 위한 '공무원 직장 내 괴롭힘 방지 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21대 국회 임기는 하루 뒤에 마무리되지만, 해당 입법 요구가 큰 만큼 22대 국회에서 비중 있게 다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처벌 강화해도 '직장 내 괴롭힘'은 여전…왜?
28일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2022년 공무원 징계령상 '우월적 지위 등을 이용한 비인격적 부당행위'(직장 내 괴롭힘) 조항에 따라 징계 받은 공무원 수는 50명이다. 해당 조항은 공직 사회에서 벌어지는 '갑질'을 근절하기 위해 2021년 12월 30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같이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처벌 조항이 강화됐지만, 공무원들은 여전히 직장 상사의 갑질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1일 강북구 보건소에서 일하던 50대 공무원 A씨는 가족들을 뒤로 한 채 안타깝게 숨졌다. 유족은 "A씨가 상사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이야기를 했었다"며 "한 개인이 우울증 때문에, 아무 이유 없이 숨진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A씨의 유서와 개인 휴대전화 메시지함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고충 섞인 글들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강북구청은 현재 '직장 내 괴롭힘 조사위원회'를 설치해 해당 사안에 대한 내부 조사를 진행 중이다.
예방 위해 '괴롭힘 방지법' 발의 됐지만 폐기 수순
문제는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는 공무원들은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2019년 7월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포함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되고 있지만, 공무원들은 적용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대법원 판례 등을 바탕으로 "근로기준법에 따른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제도는 공무원에게 직접 적용되지 않고, 근로기준법 및 공무원행동강령, 공무원고충처리규정, 공무원 징계령 등이 우선 적용된다"는 행정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 때문에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공무원은 인사혁신처와 기관마다 설치된 고충처리 심사위원회 등을 통해 구제를 받게 된다. 쉽게 말해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가 노동청 신고 등 외부 기관을 통해 구제 받을 방법은 막혀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한 장소인 '일터'에서 실시한 '셀프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만 가해자에 대한 처분과 피해자 보호조치 등이 결정되는 상황 자체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여는 강민주 노무사는 "현재 공무원 관련 법령에는 신고 및 조사 절차, 특히 피해자 보호조치 등의 내용이 없어서 피해 공무원들이 실제 피해를 당하고도 실제 신고로 이어지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상명하복과 위계질서가 강하고 폐쇄적인 공직사회 분위기 속에서 공무원들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서는 공무원에게도 근로기준법의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국가공무원법 일부개정안(공무원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지난해 12월 국회에 발의됐다. 하지만 이 법안은 21대 국회 임기 종료일을 하루 앞둔 이날까지 소관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해당 법안은 국가공무원법상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규정을 신설하고,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했을 때, 기관장은 근무장소의 변경, 유급휴가 명령 등 피해자 보호조치를 실시해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법안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김한규 의원은 CBS노컷뉴스 통화에서 "일반 기업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제기하는 분위기가 점차 도입되고 있는데, 공무원 사회는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더라도 보복이나 인사 상 불이익 때문에 제보나 신고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법률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 방지 규정이 만들어지면 공무원들이 다시 긴장하게 되고 공무원 사회에도 경종을 울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법안을 제출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타깝게도 국회 내 여야 대치 상황 때문에 정치적으로 크게 관심 받지 않는 법안은 논의가 되지 않는 상황"이라며 "결국 시간의 문제이고 (공무원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은) 당연히 통과돼야 하는 법이라고 생각해 22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상 '금지 규정' 적용돼야"
노동계에서는 더 나아가 국가공무원법 개정 만으로 뿌리 깊은 '직장 내 괴롭힘' 문화가 사라질 수 없다고도 지적한다. 공무원의 근로 조건 등을 개선해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공무원 조직 문화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공무원노동조합 이철수 위원장은 "공무원 노조는 (노조) 전임자의 역량이 법적으로 제약되고 취약하다 보니 직장 내 괴롭힘 등 조합원들의 애로사항을 해소하고 방지하는 데 제한이 많다"며 "공무원노조법 등 공무원의 근로조건과 연관된 다른 법안들도 같이 연동돼 해소되지 않으면, 조직 문화 자체를 개선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공무원을 비롯해 특수고용직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등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규정'을 확대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샛별 노무사사무소 하은성 노무사는 "작년에는 직업교육훈련촉진법 개정안(다음 소희법), 올해는 '사회복무요원 괴롭힘 금지법' 등을 통해 현장실습생과 사회복무요원에 대한 괴롭힘 금지법이 인정됐다"며 "괴롭힘 금지법의 제정 근거는 헌법상 인격권이다. 누구든지 타인으로부터 괴롭힘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규정의 적용 범위가 점차 넓어지고 있는데, 당연히 공무원이 안 될 이유가 없다"며 "근로기준법은 노동하는 모두에게 기본적으로 적용되는 법"이라고 강조했다.
직장갑질119 배가영 활동가는 "지금까지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 신고하더라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보호 받지 못했다"며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근로자와 사용자 개념을 폭넓게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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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양형욱 기자 yangsim@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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