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썰] 강제동원 피해자 한 풀어주는 게 소원이라는 일본인

신진 기자 2024. 5. 28.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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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양심' 야노 히데키 인터뷰
〈사진=JTBC 보도 캡처〉

돈을 벌 수 있다 해서, 제비뽑기로, 아무 설명 없이 무작정….

제각기 다른 이유였지만 강제로 전쟁터에 끌려갔다는 사실은 같았습니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 얘깁니다. 수십 년이 지나서야 목소리를 내게 됐지만, 여기저기 고장 난 몸을 이끌고 시위하고 항의하고 주장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일본 정부, 법원, 기업……. 가는 곳마다 막혔고 박대당했습니다. 모르는 게 너무 많았고 사람들은 무시했습니다.

1995년 12월,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원자폭탄 피폭 피해자들. 〈사진=미쓰비시 히로시마 징용공 피폭자재판 지원회〉

그때 내 일처럼 나서 준 일본인이 있었습니다. 일본 시민단체 '강제동원 해결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을 이끈 야노 히데키 국장입니다. 지난 24일,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수십 년 투쟁을 담은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청파동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야노 국장을 만났습니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이 통역했습니다.

"장례도 못 치른 피해자 가족들 사연이 계기"



전시관 한쪽 벽면이 피해자 수십 명의 사진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현장을 안내하던 김승은 민족문제연구소 학예실장은 “관람객 관점에서 눈을 마주하는 듯한 느낌을 연출하고 싶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야노 국장은 마치 사전처럼, 피해자들의 얼굴만 보고도 사연을 기억해 냈습니다.

" 이분은 남태평양 부겐빌이라는 곳에 동원됐던 분입니다. 끔찍한 전투에 투입됐죠. 그러다 남양군도에 남겨져 도마뱀 같은 것을 잡아먹으며 살아남으셨습니다. 아, 이 분은 아버지가 아직도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이희자 씨네요. "

서울 청파동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 강제동원 피해자 운동 기록 사진전.

도쿄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던 야노 히데키는 1995년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사연을 접하면서 피해자 지원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됩니다. 특히 가마이시 제철소 노동자들의 삶이 마음을 움직였다고 합니다. 야노 국장과 함께 지난 30년의 한일관계, 강제동원 배상 문제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Q 제철소 노동자의 어떤 사연이 마음을 울렸습니까?
A 1945년 7월 피해자 한 분이 미국의 사격으로 돌아가셨는데, 유족들이 미지급된 임금과 유골을 돌려 달라는 반환 소송을 제기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가족들은 아버지가 어디로 끌려갔는지, 언제 돌아가셨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장례식도 할 수 없었고, 호적도 정리되지 못했습니다. 부인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일평생 문을 열어 놓고 살았다고 합니다. 밤에도 문을 잠그지 않고 꾸벅꾸벅 졸면서요. 일본 정부와 기업이 저지른 일을 방치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런 일을 하게 됐습니다. 특히 1990년대 초, 일본은 '평화국가'라는 점을 강조했지만 실제로는 전쟁, 식민 지배에 대한 것이 제대로 청산되지 않았다고 느꼈습니다.

고령인 피해자들은 하나둘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걸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봐 온 야노 국장도 이제 74세 노인입니다. 야노 국장에게 '30년 동안 가장 무엇이 가장 힘들었고, 한편 보람 있었나'라고 물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그는 잠시 울먹였습니다. 그는 "많은 얼굴이 떠오른다"라며 말을 멈췄다가 "여전히 식민지배라는 것이 해결되지 않았고, 현재도 그냥 남아 있다고 본다"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사진=JTBC〉

Q 한 때 한국과 일본이 이 문제를 놓고 화해를 하기도 했습니다.
A 맞습니다. 1993년 고노담화가 발표됐고, 1995년 무라야마 담화가 있었습니다. 당시 무라야마 총리는, 일본이 잘못된 국가 정책으로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했고 아시아의 다른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는 점에 사죄하는 마음을 표명했죠. 당시엔 거짓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Q 언제부터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의 반성이 옅어졌을까요?
A 1997년 정도부터라고 생각합니다. 그 중심에 고 아베 총리가 있었습니다. 또 우익 세력이 결집한 일본 회의라는 집단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고노담화와 무라야마 담화를 부정하는 움직임을 확산한 것이 지금의 결과를 낳았다고 생각합니다. 결정적인 것이 2015년 아베의 종전 70년 담화입니다. 과거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을 한마디도 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요. 러일전쟁이 오히려 식민지배를 받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 〈사진=연합뉴스〉

Q 일본 시민들은 자국의 전범, 식민지배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까?
A 많은 사람들이 식민지배 자체에 대해 모르고 있습니다. 일본이 그 당시 어떤 일을 했는지 알지 못합니다. 또 일본 정부, 우익 인사들이 혐오를 조장해 온 측면이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 하지만 다수의 사람이 식민 지배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1990년대 초반,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자로 증언하셨을 때를 떠올려 보면 그 당시 여론조사 결과 3분의 2, 혹은 4분의 3 정도의 일본 국민들이 "피해자에게 사죄하고 보상해야 한다"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일본에는 야노 히데키처럼 자국의 식민지배 역사를 비판하며 피해자들을 오랜 기간 돕는 지식인들이 있습니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이들의 공통점은, 인간이라면 자연스럽게 지니는 보편적 인권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일본이 과거에 저지른 식민지배와 침략이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된다는 반성과 함께, 그것이 일본 사회를 위해서도 중요하다는 자각이 있기 때문에 내 일처럼 나서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제3자 변제, 해결책이 아니다"



Q 한국 정부는 국내 기업의 기금으로 배상한다는 '제3자 변제'를 강제동원 해법으로 내놓았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한국 정부도 상당히 고심해 해결책을 내놨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간단히 말해 이 문제는 제3자 변제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2018년 대법원 판결은 민사 소송입니다. 원고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이고, 피고는 일본 기업들이죠. 재판은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책임이 일본 기업에 있으니 배상하라고요. 국가가 관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1965년 청구권 협정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는 것을 강경하게 밀어붙이면서, 사실상 판결을 이행하지 말라고 일본 기업들에게 압력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피해자들이 구제를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의 주장은 명확합니다. '나를 끌고 가 노동을 시킨 회사가 사죄하고 배상하는 것 외에는 해결책이 없다'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당연합니다. 이건 피해자들만의 주장이 아닙니다. 지난 2월, 국제노동기구 ILO 전문가 위원회의 보고서가 발표되었습니다. 2018년 대법원 판결 이후 일본 정부와 기업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취지의 지적이 나와 있습니다. 또 피해자들이 살아계실 때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2004년 12월, 도쿄지방재판소 앞에서 시민들에게 강제동원 피해 사실을 적은 유인물을 건네고 있는 야노 히데키 국장(왼쪽). 〈사진=민족문제연구소〉


Q 강제동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할까요?
A 첫 번째는 일본 정부가, 조선에 대한 식민지배가 불법이었다는 것을 근본적으로 인식하는 겁니다. 특히 침략 전쟁을 위해 한반도의 물자와 노동력을 동원했다는 사실이요. 일본 정부는 1990년, 노동자 명부를 한국 정부에 인도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둘째는 피해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사과입니다. 지난해 5월 기시다 총리가 방한해 '식민지 시대에 고통받은 분들에 대해 마음이 아프고 슬프다'라고 했는데, 누구를 향한건지 모호합니다. 피해자와 유족에게 직접 사죄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가해 당사자들의 사실 인정, 사죄와 배상, 재발 방지 맹세입니다. 일본 기업들이 해야 할 일이고, 일본 정부도 기업을 지도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것 또한 유엔에 가이드라인이 있습니다. 기업이 인권침해를 일으켰을 때 사죄하고 피해자들을 구제하라는 원칙 말입니다.

Q 피해자들과의 유대가 강합니다. 기억나는 장면이 있을까요?
A 두 가지 장면이 떠오르네요 하나는 2018년 10월 대법원 판결 날입니다. 일본에서 뉴스를 들었는데 펄쩍 뛰어오를 정도로 기뻤습니다. 그런데 그만큼 슬펐습니다. 이춘식 할아버지가 그러더군요. " 여기에 (또 다른 피해자인) 여운택 씨, 신천수, 김규수 씨는 없다. 나만 남았다…". 마이산 탑사에 가서 돌아가신 피해자 부모님의 제사를 함께 지낸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단체로 버스를 타고 갔는데, 돌아올 때 버스가 흔들릴 정도로 노래도 하고 춤도 췄습니다. 피해자들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인생을 보내왔어요. 하지만 이렇게 함께 시간을 보낸 시간들도 분명 있었습니다.

2019년 8월 야스쿠니 반대 촛불 시위를 마친 뒤 회식 중인 야노 히데키 국장. 〈사진=민족문제연구소〉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실장은,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명확히 밝힌 2018년 대법원 판결이 저절로 나온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65년 체제를 극복한 이 판결이 어느날 갑자기 떨어진 것이 아니고 앞서 일본에서의 지난한 소송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며 “일본과 한국의 시민들이 오래 연대하며, 구체적인 조사를 통해 방대한 자료와 각종 논리를 쌓아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인터뷰를 끝내려 하자 야노 국장은 덧붙일 말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 정부의 제3자 변제에 반대해 배상금 수령을 거부한 양금덕 할머니, 이춘식 할아버지를 언급했습니다.

" 양금덕 할머니가 96세, 이춘식 할아버지가 104세입니다. 숱한 재판이 있었지만, 그분들의 가슴속에 맺힌 한이 풀리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분들이 살아계실 때 그분들의 한이 풀렸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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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하고 사과해야…" 30년째 피해자 돕는 '일본의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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