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6개월 부부가 사라졌다…남편 전 여친 3주전 '수상한 입국'
노르웨이서 귀국한 전 여친, 현금만 사용…수사 시작하자 조기출국
(서울=뉴스1) 신초롱 기자 = 2008년 봄, 충격적인 흉악 범죄가 일본 열도를 뒤흔들었다. 도쿄 고토구의 한 맨션 9층에 거주하는 여성(당시 23세)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건이다. 피해자가 귀가하는 장면은 찍혀 있었지만 밖으로 나오는 장면은 어디에도 없었다.
실종 37일 만에 체포된 범인은 놀랍게도 피해자와 같은 층에 살던 이웃 남성이었다. 그는 자기 집에서 피해자를 죽인 뒤 2주에 걸쳐 시신을 훼손해 화장실 하수구에 흘려보냈다. 범인은 사건 이후 주민을 대표해 카메라 앞에서 관련 인터뷰에 응하는 대범한 모습을 보였다.
◇결혼 6개월 만에 증발한 부부…차·반려견 그대로, 침입 흔적도 없어
그로부터 8년 뒤인 2016년 5월 28일, 부산 광안리의 한 아파트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결혼 6개월 차 동갑내기 신혼부부 전민근·최성희 씨(당시 34세)가 귀가 후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부부의 행적이 마지막으로 확인된 건 엘리베이터 속 CCTV에서였다. 최 씨는 전날 오후 11시 16분쯤 장바구니를 손에 든 채 귀가했다. 남편 전 씨는 4시간 뒤인 28일 오전 3시 30분쯤 귀가했다.
부부의 자동차는 주차장에 그대로 있었고 집 안 식탁에는 장 봐온 물품과 먹다 남은 음식들도 정리되지 않은 채 놓여 있었다. 반려견도 홀로 남아 있는 상태였다. 현장 감식 결과 외부 침입 흔적이나 다툰 흔적, 혈흔조차 발견되지 않았다. 부부는 귀가 당시 입고 있던 복장 그대로 사라진 것으로 추정됐다.
◇아내 최 씨, 극단 대표에 문자…남편도 동업자·아버지에 마지막 연락
아파트에 설치된 CCTV는 22대였지만 어떠한 곳에서도 밖으로 나가는 장면은 없었다. CCTV에 찍히지 않으려면 외부 비상계단으로 내려오는 단 한 가지 방법뿐이었다. 그렇게 내려오더라도 사각지대를 피하기엔 복잡한 구조였다.
부부에게는 금전적인 문제나 원한 관계에 있을 만한 인물이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예금통장에 수천만 원이 예치된 상태였다.
부부는 실종 전 다니던 직장 동료에게도 연락을 취했다. 연극배우였던 아내 최 씨는 극단 운영자에게 "제 상태로는 공연을 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지난번처럼 사고를 쳐서 또 병원에 입원하였습니다"라며 "이런 식으로 공연에 대해서 피해를 드려 죄송합니다. 지금 한동안 어떤 연락도 받지 못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라며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다음 날 남편 전 씨는 식당 동업자에게 "내가 해결해야만 하는 사건이 있다. 한 달에서 두 달 정도 못 나갈 것 같다"고 연락했다. 아버지에게는 "괜찮다"는 얘기만 남기고 더 이상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았다.
사건 4일 만에 실종 신고를 받은 경찰은 휴대전화 위치 추적을 진행했다. 전 씨의 휴대전화는 6월 2일 오전 8시 48분 부산 기장군 교리에 위치한 버스 정류장에서 전원이 꺼진 것으로 파악됐다. 아내 최 씨의 휴대전화는 같은 날 오후 9시 54분 서울시 강동구 천호동 인근에서 마지막 신호가 잡혔다. 천호동은 전 씨의 친모 집에서 2㎞ 이내에 위치한 곳이었다.
◇최 씨, 남편 전 여친의 살해 협박에 극단 시도…결혼식장엔 경호원 배치
부부가 실종된 후에 전 씨 지인으로부터 뜻밖의 이름이 거론됐다. 전 씨의 전 여자 친구 A 씨였다. 전 씨는 고등학교 시절 첫사랑이었던 A 씨와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했다.
전 씨와 헤어진 A 씨는 다른 남자와 결혼했음에도 전 씨와의 만남을 유지하다 들키게 돼 이혼당했다. 이때부터 자신의 인생이 망가졌다고 생각한 A 씨는 전 씨 부부를 괴롭혀왔다. A 씨는 새로운 남자를 만나 재혼 후 노르웨이로 떠난 상태다.
그런데도 A 씨는 전 씨에게 지속해서 연락했다. 전 씨의 동업자는 "A 씨와만 연락하는 휴대전화가 있었다"고 했다. 그는 "저 휴대전화 뭐냐고 물어본 적 있다. 그때 그 사람과 연락하는 휴대전화라고 얘기해주더라. 굳이 연락을 계속해야 하나. 꺼 놓으면 안 되냐고 물으니 '연락이 끊기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 했다.
전 씨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최 씨에게 연락해 살해 협박하며 결혼을 말렸다. 최 씨는 정신과 상담을 받을 정도로 큰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이름도 바꾸고 연락처도 바꿨지만 A 씨는 집요했다. 도 넘는 협박에 부부는 결국 경호원을 배치한 채 결혼식을 올렸다. 최 씨는 우울증 진단을 받고 극단적인 생각도 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전 씨 아버지는 "며느리(최성희 씨)가 저한테 울면서 전화했더라. (A 씨가 전화로) 결혼하지 말라는 식으로 이야기한다더라. (결혼하면) 식장을 뒤집어 버린다. 아들이 (A 씨를) 엄청 겁내더라. 그래서 제가 '식장 문제 괜찮다' 해도 '아버지는 몰라요. (A 씨가) 얼마나 무서운지'라면서"라고 말했다.
◇실종 3주 전 남편과 입국한 A 씨, 모텔 전전하며 현금만 사용 의문
공교롭게도 부부 실종 3주 전 A 씨는 남편과 시차를 두고 한국으로 입국했다. 2년 만에 방문한 거였지만 A 씨 부부는 가족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모텔이나 찜질방 등을 전전하며 현금만 사용했다.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A 씨 부부는 원래 출국하려는 일정을 2주 앞당겨 노르웨이로 출국했다. 당시 A 씨는 부부와 연락한 적도 없고 만난 적도 없다고 주장하며, 전 씨와 연락한 건 실종 9개월 전이 마지막이며 연인이 아닌 친구 사이였다고 했다.
경찰은 A 씨를 상대로 인터폴 적색수배령을 내렸다. 공조 요청을 받은 노르웨이 관계 당국은 A 씨를 현지에서 검거했으나, 노르웨이 법원은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A 씨에 대한 범죄인 인도 청구 기각 결정을 내렸다.
정부의 뒤늦은 대응으로 항고의 기회마저 사라지면서, 한국으로 송환할 수 있는 명분이 사라져 아직 미제로 남아 있다.
ro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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