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만의 아기 울음소리 [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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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27일 경남 사천시에서 우주항공청이 문을 열었다.
여러 객관적 지표를 따져봤을 때 우주항공 전담기관의 후보지로 사천보다는 대전이 더 낫다는 주장에 기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쯤 되니 사천에 분만의사를 데려오려 했던 보건소장의 백방의 노력도, 우주청 유치를 위해 '단식과 삭발 빼곤 다 해봤다'는 경남지사의 끈질김도 이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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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27일 경남 사천시에서 우주항공청이 문을 열었다. 신설된 우주청은 향후 우주항공 관련 행정을 전담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국가행정기관이다. 글의 제목과는 영 관련성이 떨어지는 첫 문장에 고개를 갸웃거릴 독자들이 분명 계실 듯하다. 이어질 기자의 취재 후일담이 의문을 잠재우길 바란다.
지난해 11월 우주청과 관련된 사안을 취재하는 기자들이 사천을 찾으면서, 시 소속 공무원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우주항공과장을 비롯해 여러 관련 부서 담당자들이 자리했는데, 그중에 의외의 인물이 한 명 있었다. 사천시 보건소장이었다. 각자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보건소장은 "이제 사천에도 분만 산부인과가 생겨, 조만간 아기가 태어날 예정"이라고 운을 뗐다. 그동안 사천 시내에 분만이 가능한 산부인과가 없어 인근 진주시로 원정출산을 해야 했는데, 12년 만에 사천에서도 아기를 낳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곤 분만 산부인과를 만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한 이야기(관련 기사: 우주항공청이 쏘아올린 "응애"… 사천서 12년 만에 아기 울음소리)가 제법 길게 이어졌다.
처음에는 웬 엉뚱한 이야기인가 했다. 우주청과 사천에서 아기를 낳을 수 있게 된 게 무슨 관련이 있다는 것인가. 안 그래도 당시엔 우주항공 관련 기업과 연구개발(R&D) 인프라가 다년간 집적돼온 대전이 우주청을 유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각에서 흘러나올 때였다. 접근성이나 인재 유치 측면에서도 반도의 끝자락인 사천이 대전보다 우세하긴 힘들었다. 여러 객관적 지표를 따져봤을 때 우주항공 전담기관의 후보지로 사천보다는 대전이 더 낫다는 주장에 기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분만 산부인과가 이 지역에 새롭게 문을 열었다는 건 우주청 유치와는 별다른 관련이 없는, 단순한 지역의 숙원 사업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정부의 의도처럼 사천이 정말 우리나라의 '우주항공수도'로 거듭나게 된다면 어떨까. 지속적인 인구 감소로 이제 10만 명을 겨우 넘기는 이 소도시가 다가올 우주경제 시대의 메카로 탈바꿈한다면 말이다. 이는 단지 사천시민들에게만 경사스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국가의 성장동력이 첨단 지식산업으로 바뀌면서 안 그래도 좁은 국토는 극심한 수도권 집중 현상을 '앓고' 있다. 공고한 성채 같은 수도권 바깥 지역의 중소도시들은 운명처럼 다가오는 지역 소멸을 걱정한다. 우주산업은 강대국들이 너도나도 뛰어드는 미래 먹거리고, 우주청 유치는 사천에는 다시 없을 도약의 발판일 수도 있다. 사천의 도약은 어쩌면 수도권 집중 현상에 작은 균열을 낼 수도 있고, 매년 인구가 늘어나는 기적의 도시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분만 산부인과처럼 도시의 가장 기초적인 인프라가 회복된 것은 풍성한 과수원을 일구기 전 작은 씨앗을 뿌린 일에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이쯤 되니 사천에 분만의사를 데려오려 했던 보건소장의 백방의 노력도, 우주청 유치를 위해 '단식과 삭발 빼곤 다 해봤다'는 경남지사의 끈질김도 이해가 간다. 사천의 이상향은 프랑스 남단의 툴루즈라고 한다. 툴루즈는 프랑스에서 인구 4위 도시로, 항공기업 에어버스 본사와 프랑스 국립우주연구센터의 연구시설 등이 밀집해 있는 유럽의 우주항공 중심지다. 사천의 꿈이 꼭 이뤄지길 바란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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