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연기' 하려고 뇌와 심장 놓고 다녀요"...천우희와 경쟁하는 천우희
넷플릭스 시청률 1, 2위 드라마 동시 출연
'더 에이트 쇼'에선 최고계급 '광인'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에선 '생존자'
독립영화도 마다 않는 20년 차 톱스타
연기도 일상도 "미개척지 가고파"
① 타인의 고통에 “재밌다”며 까르르 웃고, 방화를 저지르고는 “재밌겠다”며 흥분하는 ‘송세라’. (넷플릭스 드라마 ‘더 에이트 쇼’)
② 트라우마 때문에 가스레인지 불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대형 화재 참사의 생존자 ‘도다해’. (JTBC 토일드라마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최근 공개된 두 드라마에서 극과 극의 배역을 연기한 배우 천우희(37). “어떻게 한 사람한테서 상반된 두 가지 연기가 나올 수 있느냐”는 호평이 이어지며 데뷔 20년 차인 그의 연기력이 새삼 화제로 떠올랐다. ‘더 에이트 쇼’와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이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 시청률 1, 2위에 나란히 오르며 ‘천우희가 천우희와 경쟁하는’ 희귀한 광경까지 펼쳐졌다. K콘텐츠의 5월은 ‘천우희의 달’이라 할 만하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천우희는 웃으며 말했다. “아예 다른 작품에서 전혀 다른 인물들을 보여드렸는데, 둘 다 반응이 좋다는 게 너무 행복해요. 앞으로도 무슨 역할을 맡든 자신감과 책임감으로 잘 할 수 있겠다는 힘을 얻었어요.”
영화 '써니'에서 본드를 흡입하고 기괴한 행동을 하는 비행청소년 '상미', 영화 '우상'에서 생존을 위해 극단적 선택을 거듭하는 조선족 불법체류자 '최련화' 등 센 캐릭터를 꽉 차게 연기한 천우희이지만, ‘더 에이트 쇼’의 세라는 그에게도 도전이었다.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하고 본능과 유희만 좇는 세라는 급이 다른 '광인'이었기 때문. 천우희는 “주변 사람들에게 ‘저는 집에 뇌와 심장을 두고 촬영장에 와요’라고 말할 정도로 세라의 본능에만 집중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히어로는~'에서 맡은 '도다해' 역시 쉽지 않은 인물이다. 천우희는 화재 참사 생존자의 고통을 세밀하게 재현하는 동시에 아버지 빚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직업으로 택한 사기꾼을 능청스럽게 연기한다. 그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증상 연기에 시청자들은 "나까지 숨이 막힌다"며 공감했고, 장면마다 얼굴을 바꾸는 연기에 호평이 이어졌다.
단역부터 시작해 김희애, 손예진, 전도연을 제치다
처음부터 연기에 진지했던 건 아니다. 아르바이트로 단역 배우를 하던 천우희가 ‘배우 될 결심’을 본격적으로 한 건 ‘써니’(2011)를 찍으면서였다. “실제 삶에선 착한 딸로 살아가고 있었는데, 촬영 현장에 가니까 ‘천우희’와 ‘배우’라는 정체성이 주어지더라고요. 그 몫이 되게 좋았어요.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 직업에 최선을 다하는 걸 보면서 저도 진지하게 연기를 해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지요.”
천우희는 경남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다룬 독립영화 '한공주'(2014)로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당대의 배우인 김희애, 손예진, 전도연 등을 제치고서다. 수상소감을 밝히며 눈물범벅이 된 채 “이렇게 작은 영화에, 유명하지 않은 제가 이렇게 큰 상을 받다니...”라고 말을 잇지 못한 장면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영화 ‘곡성’ 드라마 ‘멜로가 체질’ 등을 찍으며 이른바 '톱스타'가 된 후에도 천우희는 단편영화 '걸스 온 탑', 독립영화 ‘메기’와 ‘버티고’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연기한다. 그가 작품을 고르는 기준 중 하나는 ‘연대와 연민’. “제가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것들, 제가 주목하게 할 수 있는 것들에 힘을 실어주고 싶어요. 배우로서 여러 작업을 경험해보는 것이 시야를 넓혀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소문난 집순이’에서 '모험가'로 변신한 까닭
천우희는 유명한 ‘집순이’이기도 하다. 작품에 몰입했다가 촬영이 끝나면 집에서 기력을 보충하고 또다시 새 작품을 시작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작품에선 누구보다 에너지가 넘쳐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 연기만 하며 지냈다고 한다. 마음이 지칠 때도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 혼자 일기를 쓰며 조용히 생각을 정리한다.
그런 천우희가 얼마 전부터 집 밖으로 눈을 돌렸다. 2022년 드라마 촬영이 겹쳐 몸과 마음의 부담이 컸는데, 불안한 시기를 통과한 것이 그를 바꿨다. “배우는 인간을 가장 잘 표현해야 하는 직업인데 ‘내 삶을 잘 살고 있을까’(라고 자문해 보니) 아닌 것 같았어요. 저한테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고, 제 일상을 잘 보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지난달에는 필리핀에서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땄고, 8개월간 배우다 작품 때문에 그만뒀던 첼로 연주에도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다음 작품 전까지 매달 여행을 떠난다는 목표도 세웠다. “은하수를 보러 몽골에 갈까 생각 중이에요. 모험을 하고 싶어요. 연기도 그렇고, 여행도 그렇고, 미개척지로 계속해서 가고 싶어요.”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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