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첩보 스릴러의 전설이 된 "따분한 이름"

5.28 이언 플레밍

영국 조각가 앤서니 스미스가 만든 이언 플레밍의 청동 흉상. 위키피디아

핑커턴 탐정사무소의 대실 해밋처럼, 영국 작가 이언 플레밍(Ian L. Fleming, 1908.5.28~1964.8.12)도 경험을 재료로 첩보 스릴러 ‘007 시리즈’를 썼다.

명문 이튼 칼리지를 거쳐 샌드허스트(Sandhurst·영국 육사)를 중퇴한 그는 정치·금융계에 발이 넓었던 집안 어른들의 주선으로 1929년 로이터 통신사에 입사해 스탈린 체제의 모스크바에서 특파원으로 일했고 2차대전 해군 정보장교로 입대, 당시 정보국장이던 존 고드프리 제독의 보좌관으로 복무하며 비밀정보국(SIS)과 특수작전국(SOE)을 비롯한 전시 합동정보위원회의 주요 부서 업무를 어깨너머로 익혔다. ‘30 Assault Unit’ 등 적진 근접 정보수집 특수부대를 이끈 적은 있지만 그의 주 임무는 후방 작전지휘였다. 하지만 자물쇠 따기, 금고 폭파 등 대원들의 훈련 커리큘럼에 능통했고, 오히려 그 덕에 비밀요원과 특공대원들의 주요 작전과 활약상을 폭넓게 접할 수 있었다.

1945년 5월 중령으로 예편한 뒤 선데이타임스를 보유한 언론 그룹의 해외 담당 매니저로 59년 말까지 근무했다. 1952년 2월, 자메이카 휴양지에서 3개월 겨울 휴가를 즐기던 그가, 알려진 바 집필을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탈고한 작품이 그의 데뷔작이자 007의 탄생을 알린 ‘카지노 로열'(1953)이다. 그는 1965년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까지 12편의 장편과 ‘For Your Eyes Only'(1960) 등 2권의 007 작품집, 아동소설 ‘치티치티뱅뱅'(1964) 등을 썼다.

주인공 ‘제임스 본드’는 플레밍이 카리브해에서 만난 미국 조류학자의 실제 이름. 첩보 스릴러의 전설이 된 그 이름을 플레밍은 “따분하리만치 평범하고 남성적이어서” 선택했다고 밝힌 바 있다. ‘살인 면허 007’은, 이견들이 있지만 전시 해군 정보국이 해독한 적국 최고등급 기밀문서에 붙이던 접두번호(00)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