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대, 로컬 크리에이터 양성의 핵심 기관으로 거듭나야
참석자들, 전문대 정체성 살린 교육 역량 발휘 촉구
특성화 통한 경쟁과 함께 주변 대학과 협력도 노력해야
내년 종료 예정 한시적 특별회계 유지 확대 목소리
지난 21일 대전 유성구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이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회장 남성희 대구보건대학교 총장, 이하 전문대교협)이 주최한 ‘전문대학 RISE 대응 광역자치단체 및 유관기관 토론회’이다. 내년으로 예정된 ‘지역혁신 중심대학 지원체계(RISE·라이즈)’ 사업의 시행을 앞두고 광역자치단체와 전문대학이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기조강연자로 나선 박양호 대구정책연구원장은 ‘산학정.RISE.전문대학과 지역발전’을 주제로 발표했다. 뒤를 이어 박성하 교육부 지역인재정책과장이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대학과 지역의 동반성장을 위한 새로운 길’, 한광식 전문대교협 산학교육혁신연구원장이 ‘지역발전 차원에서의 전문대학 역할과 기여’를 주제로 각각 발표했다.
이후 참석자들은 지역과 전문대가 상생하는 데 필요한 협력적 파트너십 구축과 동반 성장 방법 등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특히 전문대 관계자들은 라이즈의 성공을 위해선 일반대와 전문대의 역할을 구분한 뒤 전문대의 특성에 맞는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라이즈는 2023년 7개 지역에서 이미 시범 운영됐다. 내년부터 본격 시행되면 전문대도 라이즈를 통한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지역 발전의 중심축으로 역할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대한민국시도자협의회장인 박형준 부산시장도 축사에서 “전국 130여 개 전문대가 라이즈 사업에서도 핵심 주체로 큰 역할을 해야 한다”라며 “지역 사회가 요구하는 숙련된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라고 말했다.
현장 실무 중심 교육의 강점을 살려라
일반대와의 차별화를 꾀하는 전문대가 주목하는 분야 가운데 하나가 ‘로컬 크리에이터’ 양성이다. 로컬 크리에이터는 지역에 혁신을 불어넣는 기업가 정신을 가진 개인 등을 말한다. 기본적으로 지역의 자연, 문화적 자산 등에서 사업적 가치를 창출해 내는 일을 맡는다.
이는 현 정부의 핵심 정책과도 연결돼 있다. 지역 사회의 자생적 창조 역량 강화가 그것이다. 정부는 이를 달성할 교육 기조 공약으로 3가지를 내세웠다. 여기에 ‘로컬크리에이터 중심의 콘텐츠 창업 지원’이 포함돼 있다. ‘지역 대학을 활용한 로컬크리에이터 인력 양성’은 실천 과제에서도 최우선 순위를 차지한다.
중소벤처기업부는 한발 더 나아가 로컬 크리에이터의 세부 유형을 7대 분야로 나눠 좀 더 구체화했다. 또 이를 바탕으로 ‘지역 기반 로컬크리에이터 활성화 지원 사업’과 ‘로컬 콘텐츠 중점 대학 사업’을 펼치고 있다. 로컬 콘텐츠 중점 대학에 12개 학교가 선정됐는데, 전문대 2곳(서울예술대, 경남정보대)이 포함됐다.
로컬 크리에이터 양성에서 전문대가 일반대와 비교해 강점을 갖는 것은 실무 중심의 직업 교육에 있다. 학생들도 현장 경험이 풍부한 편이다. 따라서 지역의 특색을 파고드는 인재 발굴에 있어 일반대보다 유리하다.
한광식 원장도 “지역의 자생적 창조 역량 강화라는 국정 과제에는 전문대가 대응을 더 잘 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전문대가 로컬 크리에이터 발굴에 있어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낸다면 스스로 ‘지역 비즈니스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면서 지자체-대학의 상생을 이끌 수 있을 것이다”라고 기대했다. 지역 비즈니스 코디네이터는 지자체를 도와 지역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의 각종 사업에 관여함으로써 최대한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전문가이다.
전문대만의 정체성을 살려라
참석자들은 전문대의 정체성를 살리기 위한 방안 모색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 가운데 일반대와 전문대가 경쟁하는 학제 운영을 벗어날 수 있는 제도 마련도 포함됐다.
송승호 충청대 총장은 “전문대 중심이던 뷰티·미용, K-POP, 외식·조리, 바리스타, 반려동물, 제빵 등의 관련 학과를 일반대에서도 개설하고 있다”라며 “이제부터라도 고등교육기관 체제를 기능에 따라 학문연구 중심대학과 직업교육 중심대학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만 실무에 강점이 있는 전문대만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대 스스로도 변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무엇보다 특정학과 쏠림 현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송 총장은 이와 관련해 “전문대가 직업교육 중심대학에 걸맞게 다양한 전공, 사업 프로젝트, 아젠다 등을 발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부산 내 7개 전문대를 보면 중복 학과가 적잖다. 이들 대부분이 보건이나 디지털 분야에 쏠려 있다. 김병규 전문대교협 사무총장은 이에 대해 “지역 혁신 주체로 전문대의 역할 다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직업 전환 교육 기관으로의 역할 뿐 아니라 지역 내 다양한 가치 창출을 지원하는 혁신 주체가 돼야 한다는 뜻이다.
전문대가 지역 중소기업과 인재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로서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상호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전문대의 라이즈 사업의 타깃은 첫 번째 광역경제권 내 하위 권역별 전략 산업과 연계한 중숙련 수준의 융복합 인재 양성, 두 번째 산업 전환에 직면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40∼50대 중장년층, 세 번째 지역 문제 해결에 관심을 가진 공동체 구성원 등에 맞춰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런 타깃으로 사업으로 진행되면 산업 현장에서 실질적인 일자리 연계 성과가 나올 수 있다”라며 “이를 통해 지역 공동체 활성화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경쟁과 함께 합종연횡도 필요하다
전문대는 강점이 뚜렷하고 특성화돼 있다. 이에 따른 경쟁력 확보도 중요하지만 전문대와 일반대, 전문대와 전문대 간 협력 체제 구축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상하 교육부 지역인재정책과장은 ‘라이즈 대학과 지역의 동반 성장을 위한 새로운 길’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서 정부의 ‘글로컬대학 30’ 사업에 선정된 전문대-일반대 연합 사례를 전문대 혁신의 모델로 제시했다.
‘글로컬대학 30’은 지방대 경쟁력을 세계적인 대학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게 목적이다. 이를 위해 2026년까지 구체적인 미래 혁신 계획을 내세운 지방대 30개를 선정해 대학마다 5년 간 1000억 원을 지원한다. 지난해 10곳을 선정한 데 이어 올해는 20개 학교가 예비 지정됐다. 지난해 선정된 10개 대학 중에는 전문대가 한 곳도 없었다. 그러나 올해 예비 지정에는 전문대 10곳이 포함됐다. 국립대 등과 통·폐합한 곳을 제외하더라도 7곳이나 된다.
한국승강기대는 국-공립대로 통합한 창원대-거창대-남해대와 연합했다. 창원국가산단과 연계해 방산과 원전, 스마트제조 분야 특성화를 시도한다. 대구보건대-광주보건대-대전보건대는 보건의료계열로 초광역 연합을 구성했다. 목포과학대는 지역 내 사립대인 동신대, 초당대와 뭉쳐 지역 공공형 연합대학 모델을 구축했다. 울산과학대와 연암공과대는 전문대끼리 연합공과대학 브랜드를 만들었다.
류지은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연구위원은 “전문대와 폴리텍대학(학교법인 한국폴리텍에서 경영하는 고용노동부 산하 기능대학)의 연계, 협력 방안”을 제안했다. 그는 “비슷한 수준의 학위 과정을 운영하는 전문대와 폴리텍대학이 학점 교류, 공동 학위 등으로 힘을 모은다면 지역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인재 발굴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전문대 홀대 우려를 없애야 한다
이번 토론회에선 다양한 청사진이 제시됐지만 적잖은 고민도 쏟아졌다. 특히 전문대의 독자성을 확실하게 정립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고민의 목소리가 적잖았다. 무엇보다 2025년에 종료되는 ‘한시적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의 유지, 확대가 절실한 것으로 지적됐다.
라이즈 사업에서 전문대가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이어졌다. 한광식 원장은 “전문대는 일반대에 비해 호남권과 대구, 경북을 제외하고 출신 지역에 취업하는 비율이 10% 이상 높고, 지역 인구 정주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지만 기존의 대학 지원 사업에서 광역, 지방 거점 일반대에 밀린다”라며 “라이즈 사업에서는 전문대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인정해주는, 전문대에 대한 인식의 전환도 시급하다”라고 말했다.
남성희 전문대교협 회장(대구보건대 총장)은 “전문대 졸업생들은 지역 산업체와 중소기업, 지역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는 비율이 일반대보다 높은 만큼 라이즈 체계 내에서 전문대 역할 배분에 지자체의 큰 관심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전문대교협은 전문대와 지역의 협력적 거버넌스를 더욱 공고히 하고, 지역 정주형 인재 양성, 지산학연 협력, 평생 직업 교육 혁신, 지역 현안 해결 등의 정책이 구체화될 수 있도록 앞장서겠다”라고 덧붙였다.
“전문대 아젠다 계속 발굴할 것”
[INTERVIEW] 김병규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전문대교협) 사무총장
김 총장은 지난해 11월 사무총장으로 부임한 뒤 전국 각지의 현장을 찾았다. 그리고 알고 있던 것보다 어려움과 한계가 더 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전문대의 독자성과 재정에 관한 아젠다를 끊임없이 외치는 수밖에 답이 없어 보인다”라며 “그러면 언젠가는 좋은 정책이 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전문대가 지역 발전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
“전문대는 일반대 학생들이 진출하지 않는 산업 현장과 인력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에 맞춤형 인력을 제공한다. 재직자 재교육 등을 통해 기업들이 급격하게 바뀌고 있는 노동 환경에도 대응할 수 있도독 도움을 준다. 실업자와 경력 단절자 등에게도 고등직업교육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 사회의 안전망 구축과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지역 산업 발전, 인구 정주 등에서도 전문대의 역할은 굉장히 차별화된다.”
-차별화를 강조하는 까닭은?
“산학 협력 위주의 커리큘럼, 실습 교육은 전문대의 반 백년 전통이다. 일반대가 백화점식으로 학과 운영을 한다라면, 전문대는 필요한 것만 있는 편의점이다. 비수도권에 있는 약 1600여 개 산업단지의 인력난이 심각하다. 전문대는 여기에 인력을 즉시 공급할 수 있다. 대학 학사 운영과 교육이 이 포인트에 맞춰져 있다.”
-어떤 학생들이 전문대에 맞는가?
“전문대는 유니크한 인재 양성의 요람이다. 보건, K-컬쳐, 웹툰, 실용음악 등의 분야에서 전문대 출신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4년제 일반대에 없는 전공을 공부하고 싶은 학생과 인생 이모작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문을 더 활짝 열 것이다.”
- 앞으로의 계획은.
“이번 토론회에서 나온 의견을 반영한 추진 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이어 지역별 라이즈 센터를 방문해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것이다. 정부와 광역자치단체 등에도 전문대의 목소리를 전달할 거다.”
대전=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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