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사랑한다’고 썼던 47년 전 고1 때 일기장… 과거서 현재의 나를 찾았다
‘진실. 진실을 가장 사랑합니다.’ 노랗게 바랜 종이에 귀여운 글씨가 적혀 있다. 시인 최영미(63)가 고교 1학년 때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장 겸 시화집의 첫 장. 26일 서울 홍대 인근 한 호텔 라운지에서 시인 최영미를 만났다. 그가 머리를 식히기 위해 종종 찾는 공간. 평소 자주 앉는 자리에서 시화집을 골똘히 보던 시인이 중얼거렸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썼을까….”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1994)로 잘 알려진 그는 2017년 계간지 ‘황해문화’에 시 ‘괴물’을 발표하며 시인 고은의 문단 내 성폭력을 고발했다. 재판 과정에서 사건 당시를 기록한 일기장을 증거로 제출했다. “광기인가 치기인가 아니면 그도 저도 아닌 오기인가…고 선생 대(對) 술자리 난장판을 생각하며.” 재판부는 최영미의 손을 들어줬다. 시인은 재판을 즈음해 40여 년 전의 일기장을 발견했다. “첫 장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게 아닐까요?” 진실을 사랑하는 사춘기 소녀의 일기 쓰는 버릇이 훗날 한국 문단의 성폭력 문화에 회초리를 들었다.
◇47년 전의 일기와 詩, 광적인 독서
시인의 기록하는 습관은 단단했다. 1977년부터 쓰기 시작한 시화집은 과거를 거슬러 올라간다. 셸 실버스타인의 그림책 ‘아낌없이 주는 나무’ 삽화가 그려진 노트. ‘과거의 나’라고 이름 붙인 장에는 1976년 중학교 3학년 때 교내 백일장에 당선된 시 ‘얼’을 옮겨 적었다. ‘근정전의 흐르는 듯한 곡선에도/ 할머니의 바랜 웃음이 있습니다./ 다소곳이 속삭이는 ‘내 이 얼굴을 보아라’// 주름진 기와엔/ 지켜온 인내가 내음을 발하고/ 힘차게 내딛은 기둥엔/ 강인한 기상이 내뿜고 있었다.’
최영미는 “지금 봐도 괜찮네”라며 웃었다. 고궁의 곡선을 보고 할머니를 떠올렸던 시다. “우르르 경복궁에 몰려가서 시 쓰라고 해서 썼는데 당선이 된 거야. 1등은 못 했지만, 사람이 칭찬을 받으면 열심히 하잖아요. 이게 아마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윌리엄 워즈워스의 ‘초원의 빛’, 박목월의 ‘나그네’ 등 애송시를 필사했다. 도스토옙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구절도 여러 번 등장한다. 자작 시도 있다. 필자는 ‘C.Y.M.’.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쓰기 시작해 고교 시절 3년 내내 쓴 독후감 노트는 시인이 얼마나 치열하게 읽고 기록했는지 보여준다. 1976년 10월 9일부터 20일까지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를 종로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같은 달 12~13일에는 이광수의 ‘사랑’, 23일에는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 24~30일에는 스탕달의 ‘적과 흑’을 독파했다. “광적인 독서지, 책에 미쳤던 거야. 교과 공부는 무조건 다 외우는 거니까 재미가 없잖아요. 책이 내 학교 공부 해독제였지.” 대학 입시를 앞둔 고교 3년에도 6월까지는 기록이 빼곡하다. “4월에 고3이 아직 정신 못 차리고 쇼펜하우어를 읽었네(웃음).”
◇스물아홉, 일기에서 시를 찾다
문학소녀였지만 시인이라고 자각한 건 한참 뒤의 일이다. 스물아홉, 소설이 쓰고 싶어 신림동 고시원에 틀어박혔다. 친구한테 돈을 꿔 다섯 달 치 고시원비 100만원을 마련했다. “취직을 하든, 공부를 하든, 등단을 하든 내가 누군지 알자”는 마음이었다. 신춘문예를 목표로 소설을 썼지만,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1991년 연말쯤, 바닥에 배를 대고 누워 과거에 쓴 일기를 하릴없이 뒤적였다. “어머, 내가 시를 썼네.” 그 일기장에만 서너 편. 다른 일기장도 들췄다. “시라고 우길 수 있는 것들이 여러 편 있었어요. 이거 재밌다. 이거 어떻게든 주물러서 시로 만들자”한 것이 그를 시의 세계로 이끌었다. 1992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시 ‘속초에서’ 등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그 시기 시인 김수영(1921~1968)의 시와 산문을 자주 읽었다. 최영미는 “대한민국 남자 지식인 중에도 이렇게 정직한 사람이 있구나. 자신의 부끄러운 치부조차도 글로 드러내는 용기가 좋았다”고 했다. 그로부터 약 20년 뒤인 2013년, 김수영 시인의 아내 김현경(97) 여사를 한 출판사 사무실에서 마주쳤다. 최 시인은 시집 ‘이미 뜨거운 것들’, 김 여사는 에세이집 ‘김수영의 연인’ 출간을 준비 중이었다. 최 시인이 언론사에 있는 지인에게 에세이를 소개했는데, 김 여사가 감사의 표시로 선물을 보내왔다. 장욱진 화백의 ‘까치와 여인’ 판화. 시인이 고이 간직하는 보물이다.
◇서울시 성평등상, 현대사의 아이러니
최영미 시인은 2018년 7월 3일 서울시로부터 성평등상 대상을 받았다. 상패에는 ‘문학·창작 활동을 통해 우리 문단 내 성폭력과 남성 중심 권력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확산시켜 성평등 실현에 기여한 공이 크므로 천만 시민의 정성을 모아 이 상을 드립니다’라고 쓰였다. 그는 “’천만 시민의 정성을 모아’라는 말이 감동적”이라고 했다. 미투 운동 확산 공로로 받은 상. 하지만 성폭력 논란에 휩싸여 목숨을 끊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수여한 상이란 점이 현대사의 아이러니다.
최영미는 “슬프고 착잡한 일이지만 한국 사회의 현실”이라고 했다. “그런 선택을 하지 않고 맞섰더라면, 그 일의 결과를 감당하면서 책임감 있게 했더라면…. 서울 시민의 상을 받은 저로서는 굉장히 아쉬워요.” 시인은 “살아서 견뎌야 하고, 잘못했으면 살아서 그 죄를 받아야 한다. 자살을 찬미하는 사회가 되면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했다.
2019년 시인 고은과의 재판 1심 판결 이후 출판사 ‘이미’를 차렸다. 출판사들이 자신의 시집을 내기 부담스러워하자 직접 출판을 결심한 것. 식탁이나 경대를 책상 겸용으로 써왔던 시인은 모처럼 서랍이 딸린 소나무 책상을 맞춤 제작했다. 제작 업체에서 그를 알아보고 남은 나무로 큰 필통을 만들어 선물했다. 이사를 거듭하며 책상은 친구 집에 맡겼고, 필통만 남아 최 시인의 잡동사니를 책임진다. 출판사를 차린 결의가 필통에 깃든 셈.
출판사 이름은 ‘이미’라는 자신의 시에서 따왔다. ‘이미 젖은 신발은/ 다시 젖지 않는다// 이미 슬픈 사람은/ 울지 않는다(중략)’. “영어로 하면 IMI. 나는 나다(I’m I). 이게 중요해요.” 시인은 “문학을 섬기지 않아 문단에서 조금 미움받는다”며 인터뷰 중 웃으며 뼈 있는 말을 날렸다. 그는 “어머니한테 언제나 정직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지나치게 솔직해서 문제”라고 했다. 여전히 최영미는 최영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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