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몸에 두르는 예술… 시대정신이 드러난다
불과 100여 년 전까지 장신구는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다. 권력과 위세의 상징이자 탐미의 대상이었지만, 장신구를 제작하는 장인들은 주문자이자 착용자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20세기 이후 현대장신구가 등장하면서 제작자들은 새로운 재료와 디자인을 실험적으로 적용하는 한편, 신체·자연·환경에 대한 탐색과 개인적 경험 등을 추상적 형태 속에 담아내며 독자적인 예술 장르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서울공예박물관에서 28일 개막하는 한국-오스트리아 현대장신구 교류전 ‘장식 너머 발언’은 전통 장신구의 의미를 넘어 새로운 시각 언어로 등장한 현대장신구를 집중 조명한다. 1892년 한국과 오스트리아 수교 후 사상 첫 대규모 예술 교류전으로, 오스트리아 작가 57명과 한국 작가 54명, 총 111명 작가가 675점을 선보인다. 김수정 서울공예박물관장은 “동서양을 대변하는 한국과 오스트리아에서 빚어진 현대장신구의 발생과 현상을 재조명하면서 양국에서 교집합적으로 포착되는 미래적 움직임을 살펴보고자 기획했다”고 밝혔다.
전시는 크게 두 축으로 이뤄졌다. 도입부는 현대장신구 역사에서 선구자 역할을 했던 작가들의 작품, 이후에는 후속 세대의 작품을 펼쳤다. 전시장을 좌우 절반으로 나눠 한국과 오스트리아 작품이 마주 보고 대화하는 방식으로 진열했다.
1부 ‘주얼리 아방가르드’가 선배 작가들의 작품이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한국과 오스트리아 양국의 현대장신구 역사를 조명한다. 미묘하게 다른 양국 스타일을 비교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1970년대 오스트리아 1세대 현대장신구 작가들은 페미니즘 같은 사회·정치적 발언을 장신구에 직접 담았다. 반면 동시대 한국의 1세대 작가들은 금속공예 기반의 현대장신구에 국제적인 경험을 더해 장신구 안에 신체성과 자연의 심상을 은유적인 방식으로 풀어냈다. 유럽 현대장신구를 이끌었던 엘리자베트 J. 구. 데프너, 아니타 뮌츠 등 오스트리아 작가, 금속공예를 기반으로 예술 장신구 개념을 전파한 이정규, 김정후 등 한국 작가 7명의 작품과 아카이브를 볼 수 있다.
2부 ‘현대장신구의 오늘’은 2000년대 이후 활동을 이어가는 양국 작가들의 작품을 신체, 자연, 서사의 3가지 소주제로 나눠서 보여준다. 각각의 소주제에 맞게 양국의 키워드도 달라졌다. ‘신체’라는 주제를 한국 작가들은 ‘착용’이나 ‘신체의 움직임’ 등으로 표현한 반면, 오스트리아 작가들은 ‘신체와 젠더 허물기’를 키워드로 페미니즘적 경향이 담긴 작품이나 신체를 매개로 한 실험적 장신구를 발표했다. 이광선, 전은미, 우르줄라 구트만, 미셸 크래머 등의 작품을 이 코너에서 볼 수 있다.
두 번째 소주제는 자연. 한국은 ‘자연의 접목과 실천성’을 키워드로 자연의 유기적 형태를 표현하고, 공예의 윤리적, 실천적 태도를 보여준 작품을 소개한다. 동양의 식문화를 상징하는 쌀을 소재로 브로치, 목걸이 등을 탄생시킨 공새롬 작가의 작품, 환경 위기 시대에 버려진 비닐봉지를 자르고 붙여서 작품을 만든 최재욱 등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오스트리아는 ‘자연을 말하기’를 키워드로 베른하르트 슈팀플-아벨레, 베네딕트 피셔 등의 작품을 선보인다.
세 번째 주제인 ‘서사’에서 한국 작가들은 ‘시공간의 서사성’을 다룬다. 작가 개인의 정체성을 반영하거나, 다양한 관계 속에서 인간 존재에 관한 사유를 담은 작품이 나왔다. 오스트리아 작가들은 사회·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포커스를 맞췄다. ‘이야기의 제시’를 키워드로 수잔네 함머, 페트라 침머만 등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전시는 미래 제작 환경을 고려한 새로운 제작 방식과 태도를 보여주는 3부 ‘현대장신구의 내일’로 마무리된다. 한국에선 3D 제작 방식과 플라스틱 등 산업 소재를 활용한 윤덕노, 조성호 등 다섯 작가를 소개한다. 오스트리아는 슈테피 모라베츠, 콘스탄체 프레히틀 등 기존 생산 방식의 대안을 제시한 작가들의 작품을 다룬다. 볼프강 앙거홀처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는 “장신구는 우리가 몸에 두르는 예술”이라며 “어떤 예술품보다 동시대 정신을 뚜렷하게 반영한다”고 말했다. 7월 28일까지. 무료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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