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대] ‘광화문’ 현판 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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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이다.
광화문의 이름표인 현판 또한 우여곡절이 많았다.
광화문 복원에는 삼척 준경묘에서 벌채한 대경목이 사용됐고, 현판 또한 강원도에서 자연건조 과정을 거쳤으니 강원도와 인연도 깊다.
그 광화문 현판을 한글로 바꾸자는 논의가 촉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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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이다. 숭례문(남대문)과 함께 서울 도성과 궁성의 상징 관문 역할을 해왔다. 조선 개국 직후, 태조 대에 건립했으나 임진왜란 때 경복궁과 함께 소실돼 폐허로 남아 있다가 1865년 흥선대원군이 다시 중건하면서 복원됐다.
일제강점기에는 총독부 청사를 가린다는 이유로 철거 계획이 세워졌으나, 국내는 물론 일본에서까지 반발 여론이 일면서 위치만 옮기는 것으로 철회됐다. 당시 일본 지식인인 야나기 무네요시가 철거에 반대하며 발표한 글 ‘사라지는 한 조선 건축물에 대하여’는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6·25 한국전쟁 때도 목조 건물이 소실되는 아픔이 있었으니, 한민족의 역사 만큼이나 간난고초를 많이 겪은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광화문의 이름표인 현판 또한 우여곡절이 많았다. 창건 초기 남문(南門) 등으로 불리다가 세종대에 이르러 광화문(光化門) 이름을 내걸게 됐다. ‘빛(덕)을 온 나라에 비춘다’는 뜻이다. 한국전쟁 때 불탄 건물을 1968년에 철근 콘크리트로 재건축 복원하면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쓴 한글 현판을 사용하기도 했다.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광화문은 지난 2010년에 목조로 새롭게 복원 준공한 것이다. 그때 현판도 한자로 다시 고쳤다. 광화문 복원에는 삼척 준경묘에서 벌채한 대경목이 사용됐고, 현판 또한 강원도에서 자연건조 과정을 거쳤으니 강원도와 인연도 깊다.
광화문 일대는 지난 600년 이상 한민족의 터인 한반도의 중심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주요 관청이 밀집한 육조거리였고, 오늘날에는 대한민국 번영의 상징인 세종로와 광화문 광장이 들어서 교통로와 집회·휴식의 중심 공간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광화문이 ‘나랏문(國門)’으로 통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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