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광 그 후 - 다시 찾은 미래] 9. 카메라로 폐광 역사 기록을 캐다

김여진 2024. 5. 28. 00: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빛으로 그린 검은 땀… 탄광촌 기록하는 광부아들 사진가
광부 프로젝트 7개 주제 개인전
대비 극명 흑백사진 상징성 빛나
탄광·폐광 생동감 기록 산증인
금기시 ‘여성 광부의 삶’ 첫 조명
진폐증 보상 제외 선탄부 지원

태백 출신 박병문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아버지는 광부였다. 한국전쟁 직후부터 30여년간 어두운 터널에서 빛을 캔 산업전사다. 항상 탄가루가 끼어있던 손톱 밑, 어두운 터널만큼 깊은 고단함을 웃음으로 덮던 광부. 검은 땀으로 얼룩진 얼굴과 미소지으면 나타나는 하얀 이, 손에 간식봉지를 들고 들어오던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에서 쉽게 지울 수 없었다. 박병문 작가가 광부와 탄광촌 기록에 천착해 온 이유다.

2014년부터 광부 프로젝트 아래 10년간 ‘아버지는 광부였다’, ‘검은 땅 우금(于今)에 서다’, ‘아버지의 그늘’, ‘선탄부’, ‘검은 땅 막장 탄부들’, ‘폐광’ 등 크게 7개의 주제로 강원은 물론 서울, 전주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탄광촌과 그 속 사람들의 역사가 한 사진가의 땀을 통해 사진 예술로 승화되고 있다.

▲ 박병문 작, ‘저탄장,광부’

■ 예술노동으로 폐광역사 기록

박병문 작가는 탄광과 폐광 현장에서 빼놓고 말할 수 없는 인물이다. 들러붙는 분진 가루를 마다하지 않은 채 강원지역 탄광 갱도를 누볐다. 수많은 광부들을 마주치면서 동료로서의 끈끈한 유대감을 갖게 됐다. 땀과 탄가루가 엉겨붙어 범벅이 된 얼굴을 보면 영락없는 광부다. 탄 캐는 도구 대신 카메라를 들었을 뿐이다. 그러면서 광부들의 노동, 목욕, 식사, 휴식 등 모든 장면을 담았다.

강원도민일보 ‘폐광 그 후- 다시 찾은 미래’에서 소개한 광부 삼형제 김영구·석규·영문 씨의 갱도 내 작업 사진을 담은 것도 박 작가다. 그들의 일상을 이어가는 탄광촌의 풍경도 구석구석 기록했다.

태백 삼방동과 저탄장 등 탄광촌에 진한 향수가 남아있음 역시 느꼈다. 태백과 정선 등은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다.

새카만 탄가루와, 하얗게 흩날리는 눈. 마을 풍경이든, 사람의 감정이든, 자본과 노동의 이면이든, 삶과 사회 시스템의 모든 명암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탄광촌에서 흑백으로 담는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은 더욱 깊은 상징성을 품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올해 95세가 된 부친과 추억 여행을 다녀왔던 박 작가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광부들이 지니고 있는 갱도 속 추억이 여전히 빛나고 있음을 발견했다”고 했다.

▲ 박병문 작, '철암시장'

 

■ 탄광촌 철암의 오늘 조명

31일까지 철암탄광역사촌에 있는 한양다방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박병문 다큐멘터리 사진가 기획초대전에서는 이러한 작업의 일면을 볼 수 있다. ‘아버지의 그늘- 탄광촌 철암의 오늘’이라는 주제 아래 마련된 이번 전시에는 31점의 사진이 걸렸다. 박 작가는 기억이 고여 있는 철암시장을 떠올리며 퍼즐을 맞추듯 유년시절을 보낸 탄광촌 동네의 변화를 담았다.

폐광을 앞두고 안타까움과 상실의 느낌만을 담아내는데 머물지 않았다. 그간 지워진 것과 새로 나타난 것, 그리고 앞으로 지켜나가야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표현했다. 관광객들이 찾아오며 생동감을 찾은 철암역, 변화를 도모하는 철암시장 등 지역의 역사도 기록했다.

까마득히 잊힌 탄광촌의 어두운 골목과 그곳에 녹아든 사람들의 진한 냄새, 검은 땀으로 만난 사람들의 수다를 사진을 인화하며 살려냈다. 그간 개인전과 같은 제목의 사진집도 함께 펴내 온 작가는 부친을 위해 헌정한 첫 책 ‘아버지는 광부였다’와 탄광촌 풍경을 기록한 ‘검은 땅-우금(牛今)에 서다’의 동명 사진집에 이어 사진집 ‘아버지의 그늘’도 출간했다.
 

▲ 탄광을 누비는 박병문 사진가

■ 선탄부의 삶 사진으로 첫 조명

박 작가는 어두운 터널보다 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오지 않았던 ‘여성 광부’들을 사진으로 처음 내보인 장본인이기도 하다. 광부 프로젝트를 시작한 2007년 삼척 경동탄광에서 선탄 작업을 하는 여성 광부들을 처음 본 그는 이들을 별도 조명하기로 결심했다. 상품성 있는 석탄을 만들기까지 컨베이어 벨트 30개를 거치는 공정 속 고된 작업이 선탄부들의 몫이었다.

그러나 시작은 쉽지 않았다. 탄광에 여자가 얼씬대면 안된다는 등 말이 나올정도로 여성을 금기시 하는 분위기 아래 그림자처럼 일만 하던 여성 광부들은 남성 사진가의 등장에 손사래를 쳤다. 짧게는 세 달, 길게는 3년에 걸쳐 설득한 끝에 그들을 담을 수 있었다.

그렇게 ‘선탄부’는 박 작가가 시작한 광부 프로젝트의 네번째 시리즈가 됐다. 2017년 처음 선보인데 이어 한국여성수련원에서 2021년 가진 개인전 ‘여성 광부, 선탄부 검은장미’에서 이들의 모습을 묶어 내보였다. 지난해 미국 뉴욕에서 가진 개인전 주제도 같았다. 이같은 작업은 진폐증을 앓아도 보상 대상에서 제외됐던 선탄부들을 돕는 일과도 연결됐다.

이제 남녀와 나이를 불문하고 탄광촌의 고된 일상과 기억을 남기는 것이 작가로서의 숙명이 됐다. 박 사진가는 “거칠게 내뱉은 기침 소리에 철암의 밤이 흔들리고, 검게 내뱉은 호흡은 멈추질 않는 날들이 있었다”며 “산업 전사인 광부 1세대를 기억하고 진폐로 고생하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라며 작업하고 있다”고 밝혔다. 제24회 강원도 사진대전 대상, 제1회 최민식 사진상 특별상 대상, 제6회 온빛 다큐멘터리 사진가상 등을 수상했다. 김여진

 

 

 

#탄광촌 #아버지 #사진가 #다큐멘터리 #선탄부

Copyright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