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지역에 남지 않는 ‘지역 인재 의사’
올해 치르는 2025학년도 입시에선 전국 의대 정원이 3058명에서 4567명으로 약 1.5배로 늘어난다. 특히 비수도권 대학에선 해당 지역 출신 학생들을 선발하는 ‘지역 인재’ 전형으로만 2000명가량을 뽑는다. 이는 작년 선발 인원의 두 배. 의대 입학 티켓 한 장을 차지하기 위해 ‘초등 의대반’까지 보내는 한국에서, 천 명 단위로 의대 정원이 늘어나는 것은 최근 몇 년 동안의 입시 정책 중 가장 파격적인 변화다.
지역 인재 전형이 큰 폭으로 늘어난 것은 만성적으로 의사가 부족한 지방의 의료 인력 확충을 위해서다. 해당 지역에서 나고 자란 학생이 졸업 후 지역에 남을 확률이 높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실제 대한의사협회 자료에 따르면 지방에서 자란 의사의 절반 정도가 지방 병원에서 근무한다. 반면 수도권 출신 의사가 지방에서 일하는 경우는 10% 수준에 불과했다. 졸업과 동시에 수도권으로 돌아갈 학생보다, 성적이 조금 낮더라도 지역에 남을 사람을 뽑겠다는 것이 지역 인재 확대의 목적이다.
지역 인재를 늘리는 것은 분명 지방 의료 환경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수도권 쏠림’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대책 없이는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제2의 도시 부산에서도 의대 졸업생 3명 중 1명이 부산을 떠나 수도권 병원으로 간다. 부산 병원의 시설이 열악하거나, 취업할 곳이 없어서가 아니다. 한 부산대 의대생은 “수도권에서처럼 문화 생활을 할 수 없고, 이성을 만나기도 힘들어서”라고 말했다. 이미 많은 지역 인재들이 졸업도 전에 수도권으로 간다. 재작년에만 지방 소재 의대에서 약 140명이 자퇴를 했다. 대부분 수도권 의대로 ‘반수’를 노리는 학생들이다.
일부 대학은 이번 증원 과정에서 한 발 더 나가 ‘지역의사제’를 주장하기도 했다. 장학금 혜택을 주고 졸업 후 몇 년 동안은 지역에 남아 근무하게 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역시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오히려 지방에 남는 의료진들을 ‘서울로 가지 못한 의사’로 낙인찍는 부작용도 생길 수 있다. 한 경남 지역 의사는 충분히 지역 병원에서 치료할 수 있는 병인데도 무작정 KTX를 타고 서울의 ‘빅5′로 향하는 환자들을 보며 박탈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 인재 숫자만을 늘리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더 많은 물을 부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2009년 로스쿨 도입 후 변호사는 크게 늘어났지만 아직도 전국 곳곳엔 무변촌(無辯村)이 남아있다. 마찬가지로 지방에 의사가 부족한 것은 의료계의 문제가 아니라 수도권에 모든 것이 집중된 국가 차원의 문제다. 의사 뿐 아니라 우수 인재들이 지역에 정주할 수 있는 방안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국토 균형 발전’ 대책이 먼저였다면, 어쩌면 이토록 큰 진통을 겪어가며 의대 증원을 추진하지 않았어도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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