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쓴풀은 왜 북한을 건너뛰었을까 [김민철의 꽃이야기]

김민철 기자 2024. 5. 28.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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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회>

지난 19일 강원도 태백에 있는 한강 발원지 검룡소에 다녀왔습니다. 꽃이 관심 있는 분들은 짐작하겠지만 이즈음 검룡소에 가는 것은 대성쓴풀을 보기위해서입니다.

2년 전에도 갔지만 귀경 교통편에 쫓겨 대성쓴풀을 못보고 돌아온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두문동재에서 금대봉~분주령~대덕산 코스를 서둘러 주파해 검룡소 코스 시간을 넉넉하게 잡는 등 단단히 준비했습니다.

◇하얀 꽃잎마다 초록색 꿀샘

<산지의 길가에서 자란다. 줄기 높이는 10cm 정도, 잎은 달걀 모양이다. 꽃은 지름 1cm 정도로 잎겨드랑이나 줄기 끝에 달리며, 꽃잎 안쪽에 초록색 꿀샘이 2개씩 있다.>

제가 기억하고 간 대성쓴풀의 특징입니다. 검룡소 입구에 들어서자 길 양쪽을 주의깊게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검룡소 일대는 자연환경 보호구역으로 관리하는 곳이라 대성쓴풀을 보기 전에도 다양한 꽃과 나무를 볼 수 있었습니다. 녹음이 우거졌고 검룡소에서 내려오는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는 길입니다.

그리 멀리 가지 않아서 길가에서 대성쓴풀을 찾았습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작은 꽃이었습니다. 사전 지식 없이 갔으면, 주의깊게 살피지 않으면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는 크기였습니다. 살짝 녹색이 도는 듯한 하얀 꽃잎이 4장씩 있고, 꽃잎마다 정말 초록색 꿀샘이 있었습니다. 정말 앙증맞다는 표현이 딱 맞았습니다. 꽃 가운데 연두색 암술이 있고 그 주위로 4개의 자줏빛 수술이 달려 있었고, 꽃잎에 푸른 점선 무늬가 있습니다.

대성쓴풀. 검룡소 입구.

다른 쓴풀과 닮은 부분도 있고 대성쓴풀만의 독특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찾아보니 우리나라에 있는 쓴풀, 자주쓴풀, 네귀쓴풀, 개쓴풀 등 다른 쓴풀들은 쓴풀속(Swertia)인데, 대성쓴풀은 별도 속(Anagallidium)으로 분류해 놓고 있었습니다. 쓴풀 종류는 잎, 줄기, 뿌리 등 온몸에서 강한 쓴맛이 난다고 이 같은 이름을 가졌습니다.

◇북한에 자생 기록 없는 수수께끼

대성쓴풀은 1984년에야 국내에 자생하는 것이 알려진 식물입니다. 대성쓴풀이란 이름을 가진데 사연이 있습니다. 대성쓴풀이라는 이름은 대성산에서 자라는 쓴풀 종류라는 뜻이지만 대성쓴풀이 자라는 곳은 금대봉 계곡이었습니다. 그런데 대성산으로 잘못 알고 붙인 이름이라고 합니다. 지명이 제대로 알려졌으면 대성쓴풀이 아니라 금대쓴풀이라는 이름을 가졌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대성쓴풀. 검룡소 입구.

대성쓴풀은 우리나라에서는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 제한적으로 자생하고 개체수가 많지 않다고 합니다. 검룡소 입구 대성쓴풀도 몇 군데에서만 볼 수 있었습니다. 환경부는 대성쓴풀을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으로 분류해 보호하고 있습니다.

대성쓴풀은 우리나라 외에 중국, 몽골, 러시아 등지에 분포하는 북방계 식물입니다. 그런데 검룡소 입구에서 발견될 때까지 북한지역에서도 자생하고 있다는 기록이 없는 식물입니다. 기록대로라면 대성쓴풀이 북한을 건너뛰어 검룡소 계곡에서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에도 학자들은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수수께끼 같은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고 합니다.

한라산 백록담 부근에서 자라는 북방계 식물 암매도 북한은 물론 우리나라 내륙까지 건너뛰어 한라산에서만 자라는 식물입니다. 한라산 암매는 빙하기 때 남하했다가 다시 기온이 올라가자 고산 같은 특수한 환경에 극소수만이 살아남은 경우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키가 2~3cm에 불과해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무라는 암매(巖梅)는 바위에 바짝 달라붙어 자라면서 꽃이 매화와 닮아서 붙은 이름입니다.

환경부 국립생태원이 2015년 주최한 ‘2회 한국의 야생화 사진 공모전’에서 대상으로 뽑힌 양형호씨의 ‘한라산의 암매(巖梅)’.

그렇다면 대성쓴풀도 북한을 건너뛰어 검룡소 계곡에서 자라는 것일까요. 학자들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합니다. 대성쓴풀이 검룡소 입구만 아니라 정선 등에서도 자라는 것으로 보아서 북한에서도 자라고 있지만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엔 아마추어 야생화 동호인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들이 전국 산 구석구석을 다니다가 낯선 식물이 보이면 식물학자들에게 알려줍니다. 이렇게 해서 신종으로 등록하거나 국내 자생 사실이 알려진 식물이 부산꼬리풀, 나도범의귀, 봉화현호색, 함백취 등 상당히 많습니다.

그런데 북한에는 이런 야생화 동호인이 없습니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꽃을 찾아다니는 것은 그야말로 사치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북한이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해져 등산, 나아가 야생화 탐사 인구가 생기는 것은 언제쯤일까요. 그런 날이 빨리 와야겠지요. 대성쓴풀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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