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관의 마약 파는 사회] 50대 이상 마약중독자는 드물다, 그때까지 못 끊으면 죽기 때문이다
100명 중 4명이 의지로 끊는 데 성공한다. 의사의 치료를 받아 석 달 동안 매일 아침저녁으로 약을 먹어도 네 명 중 세 명이 실패하고, 한 명만 성공한다. 그것도 평생이 아니라 1년 동안이다. 끊고 나서 잘 지내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술을 마시다가, 아니면 주위에서 권해 ‘한 번은 괜찮겠지’ 하는 생각에 또다시 손댄다. 마약이 아니라 담배 이야기다. 담배보다 훨씬 중독성이 강한 마약 끊기는 의지만으로 성공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마약의 끝은 결국 감옥 아니면 죽음이다. 마약 사범자는 50대부터 크게 감소한다. 그 나이까지 마약을 끊지 못하면, 질병이나 자살, 과다 사용 등으로 사망하기 때문이다. 누구는 그 사람의 선택이니 놔두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마약은 그 한 사람에게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가족을 절망에 빠뜨리고 사회를 병들게 한다. 거기다 마약은 감염병이다. 마약 투약으로 시작한 이는 마약 할 돈을 구하기 위해, 결국 마약 알선과 매매로 넘어가서 친구와 지인은 물론이고 사회에 마약을 퍼트린다.
“무조건 사형하라.” 마약에 대한 글을 쓰면 항상 빠지지 않고 달리는 댓글이다. 한국은 1997년 이후 사형은 선고하지만, 집행은 하지 않는다. 마약을 강하게 처벌하는 중국에서는 마약을 대량 밀수, 판매, 운송, 제조한 사람에게만 최고 사형에 처할 뿐, 투약자를 사형하지 않는다. 일부는 이들을 영원히 사회에서 격리하라고 한다. 격리는 공짜가 아니다. 교정본부에 따르면 수감자 1인당 매년 드는 비용이 3100만원에 이른다. 물론 대부분 우리 세금이다.
사형도 격리도 불가능한 여건에서 유일하게 남은 건, 중독자가 마약을 끊고 사회로 복귀하도록 돕는 일뿐이다. 즉 치료와 재활이 현실적 대안이다.
우리는 그 누구도 다리가 부러진 사람에게 정신력과 의지만으로 걸으라고 하지 않는다. 다리가 부러지면 수술 여부를 떠나 6주간 깁스를 하고, 몇 달 동안 재활 치료를 받아야 이전처럼 걷고 뛸 수 있다. 마약중독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다리가 부러진 것과 같다. 뇌 구조가 완전히 바뀐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기에 많은 이가 단순히 의지만으로 해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마약 중독에는 1년에서 1년 6개월이라는 긴 치료와 재활 시간이 필요하다.
의사로서 가장 치료하기 어려운 환자는 자신이 이상하거나 아픈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다. 통상 병식(病識)이 없다고 하는데, 이런 환자 중에는 정신과 환자, 그중에서도 중독 환자가 많다. 중독자는 대부분 초기에 “나는 중독이 아니다” “나는 조절할 수 있다” “나는 언제든지 끊을 수 있다”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마약 투약 사실을 가장 먼저 아는 가족과 수사·사법 기관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응급실에서 온몸을 벌벌 떨며 식은땀을 흘리는 마약 사범과 함께 온 경찰은 나에게 “선생님, 이 사람 지금 연기하는 거죠?”라며 묻기도 했다. 뛰어난 연기자가 눈물은 흘릴 수 있지만, 식은땀까지 흘릴 수는 없다. 나는 의사로서 심한 금단 증상과 환각을 겪고 있다고 설명하고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한다고 했지만, 경찰은 그를 다시 경찰서로 데려갔다.
한 유명 정치인 아들이 마약을 투약해 경찰에 체포돼 조사를 받다 구속영장이 기각돼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풀려난 지 5일 만에 다시 마약을 투약해 체포되었다. 법원이 구속은 안 할 수 있다. 하지만 치료는 해야 했다. 자살 시도 환자는 입원 치료가 기본이다. 자살에 실패했다고 할지라도, 다시 시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마약중독 환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경찰과 검찰은 그를 그대로 집으로 돌려보냈고, 그는 풀려난 지 5일 만에 다시 마약에 손을 댔다. 그제야 법원은 “범죄가 소명되고, 도망할 염려가 있다”며 구속했다. 단순히 검찰과 판사 잘못이라기보다는 마약중독자 치료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 부족과 함께 사법 기관의 마약 치료 시스템 부재가 문제였다.
25년간 마약에 빠져 지냈던 이가 있다.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의 큰 기대에 미치지 못해 10대에 탈선하여 마약에 빠졌다. 다른 마약중독자처럼 젊은 시절을 거리와 병원 그리고 감옥에서 보냈다. 그는 운이 좋았다. 두 번이나 자살하려 했지만 살았기 때문이다. 목숨은 건졌지만, 절망에 빠진 그는 그를 살린 의료진의 멱살을 잡으며 왜 자기를 살렸냐고 화를 내기도 했다. 그의 삶을 바꾼 건 노숙자였다. 삶을 포기하고 길에서 생활하던 그를 다른 노숙자가 불쌍히 여겨 밥을 가져다 주었다. 노숙자의 온정에 감동받은 그는 스스로 병원을 다니며 치료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시 마약퇴치운동본부(마퇴부)에서 마약중독자를 위해 운영하던 생활 시설인 ‘송천쉼터’로 향했다. 그곳에서 1년간 생활하며 마약을 끊은 그는 다른 이들을 돕는 이가 되어 마약 끊기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바로 마약퇴치운동본부 센터장인 박영덕씨 이야기다.
박영덕씨만이 아니다. 내 외래 환자 중에 정태식(가명)씨가 한 달에 두 번 온다. 소위 ‘엘리트 코스’인 대마초로 시작해 필로폰에 중독된 그는 50대가 되어서야 마약을 끊고, 현재는 담배마저 끊으려 노력 중이다. 그는 마약을 끊고 다시 태어나 두 번째 인생을 살고 있다.
마약은 한 사람의 삶과 가정뿐 아니라 사회를 망쳐놓는다. 하지만 약을 끊으면, 삶이 바뀌고 더 나아가 사회가 바뀐다. 마약, 함께하면 끊을 수 있다.
치료받지 못한 마약중독자는 다시 마약을 한다.
2022년 대검찰청의 마약류 범죄 백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마약 투약으로 단속된 이는 8489명이다. 이 중 검찰이 마약 전문 병원에 입원 치료나 외래 치료를 의뢰한 경우(치료 보호)는 14건뿐이었다. 심지어 입원 치료는 한 건도 없고, 모두 외래 치료였다. 검사의 요청으로 법원이 마약 사범자에게 국립법무병원에서 치료받도록 한 경우(치료 감호)는 18명, 치료를 조건으로 기소를 유예한 경우는 14명이었다. 법에 따라 치료받게 된 경우는 46명으로 전체 마약 투약자의 0.5%에 불과하다. 그나마 마약 사범자가 자의로 치료 보호를 신청한 경우가 407명(입원 81명, 외래 326명)으로 4.8%였다. 두 가지를 모두 합해도 치료받은 경우는 마약 투약자의 5.3%에 불과했다.
한국 법무부 내부 자료에 따르면, 교정 시설에서 출소한 사람이 출소 때와 같은 죄명으로 다시 입소하는 재복역률을 보면, 성폭력 37.7%, 폭력 54.1%, 절도 78.2%에 비해 마약류는 88.8%로 마약류 범죄가 단연 제일 높다. 마약 끊기부터 힘들지만, 마약류 범죄 재발 방지와 재활 치료가 제대로 되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치료받지 못한 마약중독자는 절망에 빠져 다시 마약을 한다. 치료와 재활로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시기다.
‘양성관의 마약 파는 사회’ 연재를 마칩니다. 독자 여러분과 양성관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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