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33] 창작의 고뇌
19세기 말 러시아 화단을 이끌었던 레오니트 파스테르나크(Leonid Pasternak·1862~1945)가 창작의 열정과 고뇌에 사로잡혀 온 밤을 보내는 시인을 그렸다. 러시아에 처음 인상주의를 전파한 파스테르나크는 첫 작품이 최고 컬렉터였던 트레티야코프에게 팔리는 등 일찍부터 성공 가도를 달렸다.
대문호 톨스토이가 1899년, 마지막 작품으로 완성한 ‘부활’의 삽화를 맡겼던 것도 파스테르나크였다. 물론 그때 톨스토이는 이미 칠십 대 노인이었으니 이 그림의 주인공이 톨스토이일 리 없다. 그러나 파스테르나크는 그와 한 집에 기거하며 한 줄의 문장과 한 단락의 장면을 구상하기 위해 영혼의 밑바닥까지 샅샅이 훑어 언어를 건져내는 창작의 고단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텅 빈 캔버스 위에 오직 붓과 색으로 온전히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야 하는 화업의 무게와 희열을 그 자신 또한 늘 겪고 있었으니 말이다.
파스테르나크의 아들은 ‘부활’이 주간지에 연재되던 당시 고작 여덟 살에 불과했으나 그때의 급박했던 상황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훗날 글로 남겼다. 소설의 장소가 시시각각 바뀌었으니 파스테르나크 또한 출판사로 향하는 기차에 원고와 삽화를 간신히 실어 보내는 마지막 순간까지 손을 놓을 수 없었던 것. 다 그린 삽화를 막판에 바꿔 그리면서도 화가는 글과 그림이 어긋나지 않도록 그야말로 영혼을 갈아 넣었다. 이토록 고된 창작의 과정을 지켜보며 자란 아들이 바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닥터 지바고’로 노벨상을 받은 시인이자 소설가다. 우리가 소설과 시와 그림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 안에 이처럼 눈을 비비고 머리를 감싸 쥔 채 흰 백지를 마주하며 좌절하는 한 인간의 영혼이 오롯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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