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의 포스트잇] [28] 영혼과 마음
언젠가 한적한 길에서 한 청년이 개를 안고 있다가 바닥에 내려놓더니 목줄을 잡고 ‘아주 천천히’ 산책시키는 것을 보았다. 그 느림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살펴보니, 그 개는 두 눈이 없었다. 보통 그런 경우, 그 청년은 그러한 장애가 있는 유기견을 입양해 돌보고 있다는 게 상식적 추측이다. 설혹 다른 사연이 있다고 한들 다음과 같은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개는 화창한 대낮의 칠흑 같은 어둠 속을 친구가 잡아주는 줄에 의지해 걷고 있었다.’
지난 며칠간 한 유기견 보호소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일어나곤 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반려견 사료와 영양제, 갖은 소모품들을 기부하는 중에 그렇게 되었다. 좀 앉아 있다가 가도 되겠냐는 내 부탁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전에 내가 방문했던 유기견 보호소들과는 달리, 깨끗한 반려견 카페를 연상시키는 그곳의 관리자는 내 눈물과 떨리는 목소리를 감안했을 터이다.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허리를 앞으로 굽힌 채 앉아 있는 내 주변을 유기견들이 서성였다. 인간이라는 것의 정체를 알고 싶다면 인간을 만나볼 필요가 없다. 유기견 보호소에 가보면 된다. 버려진 개들이 ‘인간’을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친족의 죽음을 거의 다 경험한 사람이다. 벗들도 죽음 뒤편으로 많이 사라졌다. ‘완전한 이별’이라면 내 나름대로 전문가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관한 시험이 불현듯 닥쳐올 적마다 나는 낙제생이고, 내 것이 아닌 죽음은 매번 가슴이 미어지고 찢어진다. 유기견 보호소 한쪽 벽 모서리에는 누렁이 두 마리가 겁에 질려 몸을 맞댄 채 처박혀 있었다. 개 농장에서 구출된 녀석들인데, 학대와 공포에 질려 그 상태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는 거였다. 문득 놀라웠던 것은, 다른 유기견들이 가끔씩 그 녀석들에게 다가가 얼굴을 핥아주거나 비벼주는 장면이었다. 덜 상처 받은 개가 더 상처 받은 개를 위로하고 있었다. 조용한 햇살이 창가에 스며들었다.
평소 ‘죽음’을 잊지 않는다면 헛된 일들에 매달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어렵다면 대신, 모든 생명체가 그저 고깃덩어리가 아니라 ‘영혼’을 지녔다고 생각하는 것도 방법이 아닐까 싶다. 나는 유물론을 부정하기 이전에 유물론을 거부한다. 착한 척 정의로운 척하지만 정작 자신 말고는 다 무생물 취급하는 인간들로 이 사회는 득시글거린다. 깊은 밤 잠을 이룰 수가 없어 주차장 화단 턱에 앉아 있는데, 불쑥, 저 어둠 속에서 개 한 마리가 내게 다가와 무릎을 핥고 비빈다. 뒤따라온 그 개의 주인이 이런 말을 한다. “얘가 이런 애가 아닌데 남한테 가네요.” 그 개의 눈동자를 마주하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토토가 그 아이 안에 들어와 내게 슬퍼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살아 있는 우리의 영혼을 믿는다. 죽은 이들의 영혼도 믿냐고? 물론이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아들이 행복하길 바라는 그 마음을 믿듯. 이 마음을 영혼이라고 부른들 무슨 문제가 있을 것인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간 나의 토토에게 해 주고픈 말이 있다. “나는 화창한 대낮의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너에게 의지해 걸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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