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용주골 떠나도 내 발로... 사회 나가기가 두렵다" [용주골 사람들②]
10명 중 8명 파주시 지원조례에 “반대한다”
매달 나가는 돈은 수백만원, 시 생계비는 50만~100만원
“사회 나갔을 때 받을 시선, 두렵기도”
<글 나가는 순서>
1화 그녀가 ‘용주골 아가씨’가 된 이유
2화 그만두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3화 시와 싸우는 여인들
지난해부터 경기 파주시 성매매 집결지 용주골을 둘러싸고 시와 성매매 여성들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시는 집결지 가림막 철거와 집결지 내부 폐쇄회로(CC)TV 설치 등을 통해 폐쇄를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성매매 여성들은 자립을 준비해 나갈 수 있도록 유예기간을 달라며 대치했다. 이번에도 성매매는 명백한 위법이니 유예가 아닌 즉각 폐쇄가 답이라는 목소리가 크다.
세계일보는 “나갈 만한 아가씨는 다 나갔다”는 용주골에서, 남아 있는 자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불법은 당장 폐쇄’라는 간편한 당위로 해결할 수 없는 취약계층 여성이 당면한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용주골에 남아 있는 성매매 여성 114명 가운데 63명을 설문조사하고 6명에 대해서는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용주골 이야기를 3화에 걸쳐 보도한다.
5년 전 경기 파주시 용주골에 왔다는 윤민주(39·가명)씨는 이곳이 “너무 지겹다”면서도 아직 본인이 배우고 싶은 애견미용을 선뜻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일보가 지난달 19∼20일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와 용주골 성매매 여성 63명에게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50명(79.4%)은 2년간 생활비를 지원하고 직업교육도 한다는 내용이 담긴 파주시 성매매 종사자 지원조례에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이들은 왜 지원금도 준다는 파주시 정책을 마다하고 “내 손으로 관두고 싶다”고 답한 걸까.
◆여전히 나를 놓아주지 않는, 돈
지난 9일 용주골에서 만난 민주씨는 고등학교를 졸업 후 텔레마케터를 5년 정도 하고 각종 단기 알바를 전전하다가 서른 넘어 이곳에 왔다. 민주씨는 “지인의 ‘카페 알바’라는 잘못된 소개로 와서 처음에는 깜짝 놀랐는데 2달 동안 고민한 끝에 시작했다”며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빠가 집을 나가고 한겨울에도 못 쉬고 개천가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던 엄마가 그때까지도 일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2∼3년만 하고 돈을 모아 그만둘 계획이었지만 이번엔 동생의 도박빚이 문제였다. “갱생이 안 될 걸 알지만 ‘이 빚 못 갚으면 이혼 당한다’고 말하는데 동생이니까 어쩌겠냐”던 민주씨는 이렇게 전화 몇 번에 매달 대략 400만원이 빠진다. 고졸 신입도 아닌 민주씨가 400만원 넘게 벌 수 있는 알바를 찾기란 어렵다.
이주현(39·가명)씨는 용주골에 2022년에 왔다. 주현씨 부친은 가정폭력을 일삼다 중학생 때 집을 떠났고 모친 혼자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삼남매를 먹여 살렸다. 주현씨는 “그때 엄마 월급이 150만원이 안 됐다”며 비가 오면 물이 새던 반지하집을 떠올렸다. 14살부터 주유소, 편의점, 식당 등 각종 알바를 한 주현씨는 “성인이 되자 더 빨리, 많이 벌어 얼른 이사하고 싶었다”며 이십대 초반 성매매를 했다고 전했다.
이후 카페 장사를 했다.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매출은 급감했고 사기까지 당했다. 주현씨는 “가게 일 끝나면 저녁에 음식배달과 새벽배송 알바까지 한 뒤 새벽 5∼6시쯤부터 몇 시간 쉬고 다시 아침에 출근하는 생활을 1년 했다”며 “여기 안 오려고 끝까지 버텼는데 도저히 고정비가 감당되지 않았다”며 잠시 말을 멈췄다.
이미 용주골은 전 같지 않다. 민주씨는 “철거만 안 됐지 빠질 사람은 진작 다 빠졌고 소멸 직전”이라고 말했다. 용주골에 20대는 한 명도 없다. 설문조사 응답자의 74.6%는 40대 이상으로, 30대가 16명(25.4%), 40대가 43명(68.3%), 50대가 4명(6.3%)이었다.
응답자 대부분은 초기에 목표한 기간이 있었지만 본인이 정한 기한을 넘긴 채 남은 이가 다수였다. 이들에게 남은 이유를 복수로 답변 받았을 때, 39명(61.9%)이 가족 부양을 꼽았고 27명(42.9%)이 주거지 마련을 못했다고 했다. 그 다음 이유는 사회에 나가기 두려움(19명·30.2%)이었다.
민주씨도 ‘왜 나가서 다른 일을 구해보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게 말이 쉽지, 사회경험이 부족해서 밖에 나가기 두려울 수 있다”는 답부터 돌아왔다. 그는 “평범한 일을 하고 싶어도 ‘갖춘 것도 없는 상태에서 새 일을 시작했다가 고정비용을 낼 수 있을까’ ‘이제 마흔인데 새 일이 막상 잘 안 맞으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이 든다”고 말했다.
파주시가 탈성매매에 지원하겠다는 금액은 2년간 최대 4420만원이다. 이 중 1000만원은 보증금으로 갚아야 하며 매달 월세 50만원, 생계비는 첫해 최대 100만원, 두 번째 해에는 최대 50만원을 지급한다. 시는 직업교육도 제공하는데, 지원을 받으려면 ‘탈성매매 서약서’를 작성해야 하고 지원기간 중 성매매가 적발되면 받은 비용은 모두 반환해야 한다. 용주골 여성들은 계약관계 같은 방식과 개인정보 노출 우려로 지원에 부정적이다.
주현씨는 ‘용주골을 떠난다면 기분이 어떨 것 같으냐’는 물음에 “홀가분하고 두 번 다시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파주시 발전을 위해 용주골은 없앨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고 했는데, 그러면서도 “(현재 파주시의) 방법은 잘못됐다”고 잘라 말했다.
지난 9일 경기 파주시 용주골에 있는 성매매 업소 모습. 파주=최상수 기자
주현씨는 “이미 정부 지원사업도 많고 파주시 지원금으로는 필요한 만큼 벌지도 못하는데 왜 2년간 이 프로그램에 묶여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파주시가 당장 나가라고 하면 ‘이달 대출은 어떻게 갚지’ 이 생각부터 든다”며 “돈을 여기저기서 빌리다가 사채에 손댈 상황”이라고 했다.
선희씨는 “파주시장은 우리를 딱 한 번 만난 뒤로는 대화하자는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며 “우리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한 번도 묻지 않고 ‘살 수 있게 돈 주고, 일할 수 있게 교육시켜준다는데 왜 불만이야’ 이런 강압적 태도에 반감이 있다”고 밝혔다.
장다혜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시는 집결지 폐쇄가 성매매를 근절시키려는 노력 중 하나고 용주골 여성들은 생존권 문제라 입장 차이가 있다”며 “탈성매매 지원을 받는다고 생계유지가 보장될지 고민하는 상황에서 정책이 강압적으로 진행되면 용주골 여성들은 탈성매매 후를 불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는 기존에는 지원 2년 차에 최대 50만원이었던 생계비를 50만원 상향해 최대 100만원까지 지급할 수 있도록 지원조례의 시행규칙을 다음달 7일 개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시 관계자는 “개정을 위해 필요한 행정 절차는 이미 다 이행됐고 7일부터 곧장 지원이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시는 충분한 지원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파주=박유빈·윤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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