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기자의 시선] 피식대학과 수도권 우월주의 블랙코미디
[미디어오늘 김연수 경남도민일보 기자]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주워담고 싶은 말이 하나 있다.
“마! 여기가 센틈시티다, 센틈시티!”
8년 전쯤 일이다. 인천에 사는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부산에 왔는데 잠깐 얼굴이나 볼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흔쾌히 나가겠다고 했다. 어디서 볼까 생각하다가 불쑥 '센텀시티'에서 보자고 했다. 센텀시티는 신축 아파트와 빌딩이 밀집한 신도시다. 부산의 맛과 멋은 전혀 없는 곳이다.
부산 여행을 온 친구와 만나기에 적합한 장소가 아니었다. 번화가인 서면1번가나 동래역 정도가 적당했다. 하지만 굳이 센텀시티에서 보자고 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수도권에 사는 친구에게 부산도 꿀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더 깊숙한 마음에는 지방도시에 산다는 그 자체로 일말의 열등감을 느꼈던 것 같다.
센텀시티에서 만난 친구에게 나는 세계에서 제일 큰 백화점이 바로이 부산광역시 센텀시티에 있다며 자랑했다. 친구는 아마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던 것 같다. 우리는 세계에서 제일 큰 백화점 앞에 덩그러니 서서 어디를 가야할까 방황하다가 결국 다른 동네로 이동했다.
센텀시티 악몽이 다시 떠오른 건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 영상을 본 후였다. 최근 논란이 된 '메이드 인 경상도' 영양군 편이었다. 영상에서 피식대학 멤버들은 지방 소도시인 영양군을 탐방하며 지방을 비하하는 늬앙스의 발언을 쏟아낸다. 누리꾼들은 “지켜야 할 선을 넘었다”면서 분노했다. 언론은 이 분노를 확대·재생산했다.
침묵을 지키던 피식대학 멤버들은 뒤늦게 사과문을 올렸다. 여론에 떠밀리는 모양새였다. 영상을 제작한 당사자들이 “변명의 여지없이 모든 부분에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지만, 지방생활 32년차 프로 지방러인 나는 이 영상을 수도권 우월주의를 소재로 한 블랙코미디로 받아들였다.
수도권 사람에게 센텀시티로 인정받고 싶어한 나 또한 수도권 우월주의에 절여진 인간 아닐까. 지방 사람들은 수도권 우월주의에 강한 반감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서울을 동경하기도 한다. 수도권 사람에게 수도권 우월주의는 은연중에 지방 멸시로 표출된다면, 지방사람은 일종의 열등감이 잠재돼 있다.
피식대학 멤버들은 지방멸시적인 감정을 언행으로 여과없이 드러냈다. 과장된 언행이긴 하지만, 현실에서 겪을만한 멸시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너희들도 솔직히 지방 하찮게 여기잖아? 안 그래?'라고 속삭이며 옆구리를 콕콕 찌르는 것만 같다. 진짜 의도가 어떻든 상당히 풍자적인 영상이라고 나는 느꼈다. 수도권과 지방 간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상하관계를 이렇게 원초적으로 드러낸 영상를 여지껏 본 적이 있나 싶다.
이들은 영양군을 서울에 견줘 끊임없이 평가하려고 든다. 동네 제과점에서 햄버거 빵을 먹으며, 영양군 같은 곳에는 프렌차이즈 햄버거 가게가 없다며 낄낄댄다든지, 로컬푸드 직매장을 가서 “여기가 더현대(백화점)이다”라고 비꼬는 식이다.
특히 이들이 '맛'을 평가하는 장면은 상당히 상징적이다. 제과점 햄버거 빵, 백반집 반찬, 블루베리 젤리를 먹는다. 그것들의 '맛'으로 수도권과 지방을 구분지으려는 시도를 계속해서 한다. 제과점에서 햄버거 빵을 먹으며 “여기는 롯데리아가 없다고 하더라. 젊은 애들이 햄버거 먹고 싶은데 이걸로 대신 먹는 거야”라고 조롱한다거나 백반집에서 “이것만 매일 먹으면 햄버거가 얼마나 맛있을까. 아까 그 햄버거가 천상 꿀맛일 것”이라고 하는 식이다. 또 블루베리 젤리를 먹더니 “할매 맛이야 할매맛, 내가 할머니 살을 뜯는 것 같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영화 <기생충>에서 '냄새'가 상류층과 하류층을 구분하는 소재로 쓰이는 것처럼, 영양군 편에서는 세련된 식당과 다양한 맛이 넘치는 서울에서 온 자들이 지방 소도시의 '맛'에 어이없는 웃음을 지음으로써 구분짓기를 시도한다.
지방에 살면서 평가 당하거나 구분짓기를 당할 때가 종종 있다. 지역 기자 생활을 하면서 종종 “지방에 있기에는 아깝다”라든가 “큰 물에서 노셔야죠”라는 말을 듣는다. 당사자의 의사는 묻지 않고 서울로 가는 것이 당연히 더 나은 선택이라고 여긴다. 불과 얼마 전에는 경남지역 방송에 출연했는데, 표준어를 구사했으면 더 좋았겠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경남에만 나오는 방송에서 아나운서도 아닌 내가 꼭 서울말을 구사해야 할까.
또 서울에서 놀러 온 친구에게 “여긴 공기가 좋다”라든가 “생각보단 촌이 아니네?”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종종 이런 말을 들어도 나는 늘 듣고 그냥 웃어넘기는 편인데, 피식대학 영상은 지방 멸시를 꾹꾹 눌러담아 원초적인 언행으로 보여주다 보니 저절로 나의 경험과 나의 언행을 반추하게 됐다. 그들이 의도한 바이든 아니든 말이다.
최근 관련 보도를 훑어보니 언론들이 피식대학의 나락행을 매일 시시각각 중계하고 있다. 아직까지 지방 시점으로 피식대학 논란을 바라본 기사는 읽어보지 못했다. 나락을 보낼 땐 보내더라도, 이왕 이렇게 기사를 쏟아내는 마당에 논란의 영상에서 사회적인 문제를 길어올릴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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