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폴리시, 최고 정책전문가가 말한다] `무(無)학과제`가 성공적으로 정착하려면

2024. 5. 27.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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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K정책플랫폼 연구위원·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김진영 K정책플랫폼 연구위원·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올 초부터 한국의 많은 대학들은 '무(無)학과제'의 도입으로 진통을 겪었다. 올해부터 신입생의 25% 이상을 소속 학과 없이 받아들이라는 교육부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면 교육부의 재정지원금이 삭감된다는 조건 때문에, 많은 대학은 급하게 무학과제를 도입하였다. 그 과정이 순조로웠을 리가 없다. 교수단체의 공개적인 반대 의견도 제기된 바 있으며, 여러 대학의 학내 갈등도 적지 않았다.

학생이 대학에서 다양한 학문을 접해 본 후 둘 이상의 다양한 전공을 선택하여 졸업할 수 있다면, 융복합 시대에 바람직한 일이다. 무학과제는 교수들의 이해관계를 극복하고 학내 구조조정을 이룰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이미 많은 대학에서 유사한 취지의 여러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무학과제가 본격 도입되면 각 대학은 과거의 운영 방식과 결별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정착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다. 학교 차원에서 적지 않은 변화가 요구되므로 그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우선 학생을 학과에 소속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무학과제 도입의 취지 중 하나는 지나치게 학과 중심으로 운영되는 학사운영 체제의 전환도 포함된다. 무학과제에서는 학생이 굳이 한 학과에 소속될 필요가 없다.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과목을 수강하고 일정한 기준 이상을 충족한 후 해당 전공을 자신의 전공이라 선언하면 된다.

따라서 현재와 같이 학사 행정과 관련된 업무를 학과사무실이 담당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행정 체제가 요구된다. 특히 학생들에게 전공과 관련한 정보와 상담을 제공함으로써 학생의 선택을 돕는 서비스를 지금보다 강화해야 한다.

다음으로 무학과제의 운용을 위해서는 교양과 전공과목의 구분은 사라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전통적인 교양교육을 무시하자는 말이 아니라, 대학의 모든 강의는 전공 수준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자신이 선택한 전공이 아니라면 자동으로 교양과목이 되며, 그 교양과목의 수준은 최소한 기본적인 전공 수준은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융복합 시대에 학생들에게 복수전공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도 낡은 유물인 교양과 전공과목 구분은 사라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대학에서 문·사·철을 중심으로 한 기본 교양교육을 무시할 수 없으며 21세기의 교양이라고 할 수 있는 통계와 컴퓨터 관련 교육도 무시할 수 없다. 대학을 대학답게 만들 수 있는 기본 강의가 사라지지 않도록 보완 조치들이 취해져야 할 것이다. 단지 그런 강의가 꼭 교양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이번 교육부의 조치는 몇 가지 측면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 우선 입시 3년 예고제라는 대입 준비생들과의 약속을 어긴 결과가 되었다. 입시 관련 기본 사항은 입시생이 고등학교 1학년인 해 8월에 확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내년 대학 입학생들은 올 5월이 되어서야 무학과제에 따른 입시의 변화를 알게 되었다. 이는 향후 교육 정책의 신뢰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까 우려된다.

근본적으로 이번 조치는 대학자율 확대라는 현 정부의 정책 기조와도 맞지 않는다. 대학마다 처한 사정이 다르며 발전 방향은 해당 학교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교육부는 25% 이상이라는 획일적인 기준을 모든 학교에 적용하고 있다.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 교육 분야의 변화가 너무 급하게 일률적으로 추진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학 내부의 변화에 시간을 주어야 한다. 교육부가 초창기에 비해 "조금 더 유연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하겠다"고 하니 다행이다. 대학도 숫자 맞추기에 급급하지 말고, 제도의 근본 취지를 살리고 학생에게 도움이 되도록 신속히 준비를 갖춰 나가야 한다. 결국 대학의 변화는 학생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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