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목 칼럼] 라인 사태는 반복된다

2024. 5. 27.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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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글로벌 시장에서 디지털 플랫폼 산업경쟁이 뜨겁다. 구글, 넷플릭스, 카카오 등과 같은 플랫폼은 접속자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우리 네이버도 라인(LINE)이라는 메신저 앱을 개발하여 글로벌 플랫폼으로 성장시켰다.

라인은 일본의 야후재팬과 합병하여 라인야후가 되었는데, 일본 시장을 석권하고 동남아 시장에도 진출했다. 16조 원 매출기업으로 급성장 하다가 지난해 11월 사이버 공격을 당해 개인정보를 대량 유출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제도적 개선책을 요구하다가, 지난 3월 라인야후가 네이버와의 자본적·기술적 관계를 끊으라는 행정지도까지 내린 바 있다.

지분매각 압박을 받은 네이버는 라인야후 경영권을 놓고 일본의 소프트뱅크와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네이버와 소프트뱅크는 라인야후 지분 64.5%를 보유한 최대 지주회사의 지분을 각각 50%씩 나누어 가지고 있어, 1주라도 소프트뱅크가 추가로 지분을 사들이면 라인의 사업주도권은 소프트뱅크 측에 넘어가게 된다.

우리 정부는 5월 10일이 되어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과학기술 정보통신부 및 외교부 차관급이 나서서 우리 기업에 대한 외국의 차별적이고 부당한 조치에 대해서 강력히 대응할 뜻을 밝혔다.

소통과 콘텐츠 확산 능력이 산업 및 국가의 디지털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다. 그만큼 각국에서는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의 독점적·반경쟁적 행위에 대한 규제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일본이 이런 목소리를 등에 업고 라인야후를 일본기업화하려는 시도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 3월 일본의 행정지도가 나올 때까지 우리 정부는 경고성 메시지는커녕 사태 파악조차 못한 것 같다. 행정지도가 나온 후에도 두 달 동안이나 사태를 방관하다시피 했다. 한일 간에는 투자보장협정이 두 개나 체결되어 있다. 상대국 투자자에 대한 차별적인 대우나 일반적 투자보호 수준에 미달하는 조치는 협정 위반이 발생한다.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해 경영권을 넘기라는 식으로 정부가 개입하여 네이버가 일본 시장을 기점으로 동남아까지 구축해놓은 디지털 플랫폼에서 손을 떼게 만드는 것은 외국투자자에 대한 차별적 조치이고 일반적 투자보호 수준을 준수하지 않는 조치에 해당한다.

그동안 정부는 지난 정부에서 무너진 한일 관계를 회복하느라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렇더라도 라인사태와 같은 초대형 이슈를 덮고 가려는 식의 소극적 대응은 오히려 양국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말로 로우키(low key)로 사태를 처리하려 했다면 3월 행정지도가 일본 정부가 지켜야할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나오도록 사전에 예방적인 협의를 진행했어야 했다.

또 행정지도가 나왔으면 즉시 비공식적 대응이라도 해서 협정 위반이 발생하지 않도록 상황을 유도했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네이버가 현재 진행 중인 소프트뱅크와의 협상에서도 훨씬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을 것이고, 라인사태가 이처럼 눈덩이처럼 커져 양국 국민들의 정서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막을 수 있었다.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실패한 정책은 없다. 탈원전, 소득주도성장, 비핵화, 부동산 등 모든 정책에서 말이다. 아무리 일을 그르친 경우에도 정부가 절대로 그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 책임을 청와대가 나서서 묻지도 않았다. 그런 위선의 정치를 종식시키고 원칙을 세우겠다고 출범한 현 정부가 아닌가.

우리 전기차 산업이 커다란 영향을 받는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내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 밝혀졌는데도 급하게 의회를 통과해 파악할 겨를이 없었다는 게 정부의 변명이었다. 공직자들은 소신껏 일한 사람들이 적폐로 몰리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적극적으로 일을 벌이려 하지 않는다. 이렇게 문제가 터져도 어차피 정부 차원에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기에 개인적인 징계도 받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한국정부 리스크'를 국민들은 항상 따로 계산해 넣어야 한다. '일본 때리기'에서 '일본 친하기'로 전환된 정치 하에서 네이버는 고분분투하는 길 밖에 없었을 것이다. 정부가 아직도 사후약방문 식으로 차관급 대응에 그치고 한중일 정상회담 모드로 향하는 지금 순간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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