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장님 또 없을 텐데…" 또 반복된 한화 감독 잔혹사, 이번엔 이게 달랐다…왜 대표이사까지 사퇴했나
[OSEN=이상학 기자]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의 감독 잔혹사가 재현됐다. 최원호(51) 감독이 자진 사퇴로 물러나며 최근 4명의 감독이 모두 시즌 도중 물러났다. 4연속 중도 퇴진이라는 불명예 속에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프런트 수장인 박찬혁(52) 대표이사도 동반 사퇴하며 현장과 함께 책임을 진 것이다.
한화는 27일 최원호 감독과 결별을 알리며 박찬혁 대표이사의 자진 사퇴를 발표했다.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감독에게만 지우지 않고 대표이사까지 같이 물러나며 팀 쇄신을 위해 스스로 몸을 내던졌다.
한화는 앞서 2017년 5월 김성근 감독, 2020년 6월 한용덕 감독, 지난해 5월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이 계약기간 마지막 해를 마치지 못하고 중도에 지휘봉 내려놓았다. 이때는 전부 감독이 물러나는 것으로 끝났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박 대표도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히며 최 감독과 동반 책임을 졌다.
한화는 올 시즌을 앞두고 FA 안치홍을 영입하고, 메이저리거 류현진이 12년 만에 복귀하면서 기대감을 크게 높였다. 구단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벌써 두 번이나 대전 홈구장을 찾을 정도로 구단을 넘어 그룹 내에서의 관심도가 상당했다. 어떻게든 무조건 성적을 내야만 하는 시즌이 됐다.
개막 10경기에서 7연승 포함 8승2패로 단독 1위에 오르며 구단 역대 최고의 스타트를 끊었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4월부터 급격한 하락세로 바뀌었고, 50일 동안 연승 한 번 하지 못할 만큼 침체가 오래 갔다. 순위가 8위로 떨어진 지난달 말부터 최원호 감독이 몇 차례 사퇴 의사를 보였다.
하지만 구단에선 최 감독에게 힘을 실어줬다. 시즌 초반이기도 했고, 계약 기간이 내년까지 남은 상황이었다. 지난 10~12일 대전 키움전에서 위닝시리즈를 거두며 반등 계기를 마련했지만 15일 대전 NC전부터 18일 대구 삼성전까지 4연패로 다시 꺾였다. 이후 3연승을 했으나 롯데의 상승세와 맞물려 23일 대전 LG전 패배로 시즌 첫 10위 최하위까지 떨어졌다.
이때 최 감독이 다시 한 번 사퇴 의사를 밝혔고, 24~25일 문학 SSG전을 모두 이기며 최근 6경기 5승으로 8위에 올랐지만 감독 교체 결정이 이뤄졌다. 이에 박 대표도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히며 같이 물러나기로 했다. 한화 구단은 ‘박찬혁 대표이사가 현장과 프런트 모두가 책임을 진다는 의미에서 동반 사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 2020년 11월 한화 구단 역대 최초 40대 대표이사로 선임된 박 대표는 팀 쇄신을 진두지휘했다. 미국 마이너리그 감독 경력 20년 경력이 되는 ‘육성 전문가’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을 구단 첫 외국인 사령탑으로 선임해 전면 리빌딩 작업에 나섰다. 2년간 팀의 초석을 다지고, 2023년부터 이기는 야구를 통해 강팀으로 성장해 2025년 새 야구장 개장 시기에 맞춰 우승에 도전하는 단계별 로드맵을 그렸다.
어느 정도 성적 부진을 각오하고 리빌딩에 나섰지만 수베로 감독 체제에서 2021~2022년 2년 연속 10위에 그쳤다. 성적에 대한 갈증을 느꼈고, 2023년에는 FA 3명 영입으로 전력 보강에 나서 이기는 야구로의 전환을 꾀했다. 그러나 육성에 특화된 수베로 감독은 승부사적 기질을 보여주지 못했고, 결국 지난해 5월11일 대전 삼성전을 마친 뒤 경질했다. 구단에서 이뤄진 결정으로 그룹 재가를 받는 데 시간이 걸리면서 6경기 5승으로 반등하던 타이밍에 감독 경질이 발표됐다.
여론이 좋지 않았지만 자신이 직접 선임한 수베로 감독과 결별을 택한 박 대표는 퓨처스 팀을 이끌던 최원호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낙점했다. 2020년부터 퓨처스 감독, 1군 감독대행으로 4년간 팀에 몸담으면서 선수단 파악이 잘 돼 있고, 준비된 감독감으로 평가된 최 감독과 함께 2024년 가을야구 도전에 포커스를 맞춰 준비했다.
2023년 최종 순위 9위로 눈에 띄는 성적은 아니었지만 수베로 감독 때보다 높아진 승률로 가능성을 봤다. FA 안치홍에 이어 메이저리거 류현진 복귀를 성사시키며 리그를 발칵 뒤집었다. 그러나 올해 짧았던 봄을 뒤로하며 걷잡을 수 없이 성적이 떨어졌고, 최 감독 리더십도 흔들렸다. 최 감독이 사퇴 의사를 보일 때도 힘을 실어줬지만 5월에도 부진이 계속되자 결국 박 대표와 최 감독의 동반 사퇴로 물러나기로 했다. 부임 4년 차에 박 대표도 벼랑 끝 각오를 종종 내비쳤고, 이번 결정도 즉흥적으로 한 것이 아니다.
대개 현장과 프런트가 동반 책임을 질 때는 단장과 감독이 같이 물러나는 게 일반적이다. 그룹 내에서 입지가 탄탄한 박 대표이지만 스스로 성적 부진에 책임을 통감하며 사퇴를 결심했다. 함께 물러나려던 손혁 단장에게 “팀에 남아서 상황을 정리할 사람은 있어야 한다”며 사퇴를 만류, 마지막까지 수습을 맡긴 것도 박 대표였다. 대체 외국인 투수 영입을 비롯해 구단 전반적인 살림살이를 이끌고 있는 손 단장까지 떠나면 업무 공백을 피할 수 없다.
박 대표는 부임 후 구단 프런트 전문성을 강조하며 역량 강화에 집중했다. 연공서열에 의한 직급 체계를 타파하며 수평적인 문화로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대리급 팀장이 둘이나 나왔고, 적극적인 외부 인사 영입으로 인적 구성에 변화를 주며 보수적이었던 구단 문화를 바꿨다. 구장 입장 수입에만 의존하지 않고 상품 및 식음 사업, 디지털 마케팅, 스폰서십으로 수익을 늘려 구단 자생력을 높이는 등 구단 가치를 높이기 위한 노력도 기울였다.
그 결과 KBO리그 역대 최초 17경기 연속 홈경기 매진 사례로 역대급 흥행 신기록도 썼다. 안타깝게도 지금 당장 성적으로 뚜렷한 결과가 나지 않았지만 구단 쇄신을 위해 발벗고 나선 박 대표는 마지막까지 결과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그만큼 이글스에 진심이었다. 한화 구단 관계자들은 “정말 좋은 사장님을 잃었다”, “이런 사장님 또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박찬혁 대표는 이날 자신의 SNS를 통해 “지난 3년간 저희 선수단과 직원들 모두가 어려운 시기에 혼신을 다해 노력해주었고, 우여곡절 속에서도 각 단계별로 많은 성장을 이뤄왔습니다. 올 시즌은 이 성장을 증명해 나가야하는 출발점으로써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러나 계획과 달리 시즌 초반 부진으로 기대하셨던 팬분들께 죄송스럽고 우리 선수단과 임직원에게도 조직의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합니다. 이에 반등 기회를 남겨둔 시점에 이 자리에서 물러나고자 합니다”고 사퇴의 변을 밝혔다.
이어 박 대표는 “여전히 그간 선수단과 직원들이 하나하나 쌓아 올린 수많은 토대는 조만간 모두가 염원하는 지속적인 강팀으로 이어질 것임에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독창적 비즈니스로 지속적으로 전력을 보강하고 팬덤을 키워나가는 선순환 구조가 새로운 지평을 열 것입니다. 부디 분위기 쇄신과 보다 유능한 조직 운영을 통해 반등하고 이글스의 길이 열리길 간절히 기원하는 바입니다. 신축구장, 파트너십, 브랜드 정비 등 현재 추진 중인 주요 사업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빠른 기간 내 후속 업무를 정리할 예정입니다”면서 “끝까지 믿고 지원해주신 한화그룹에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어려운 시기에 각 단계별로 함께 노력해주신 정민철 전 단장, 수베로 전 감독을 비롯하여 최원호 감독, 손혁 단장, 선수단 및 프론트 임직원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난 이글스와 함께한 시간들은 제 인생에서 가장 강렬한 시기였고, 맹목적인 사랑의 순간들이었기에 앞으로도 마음 깊이 이글스와 함께 하겠습니다”며 이글스를 계속 응원하겠다고 밝혔다. /waw@osen.co.kr
Copyright © OSE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