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비핵화→관련 당사자 자제' 4년 반만에 바뀐 中
'탈북민·북핵 협조요청'에는 "韓우려 잘 안다"…공급망 연계·AI 등 경제협력 방점
(베이징=연합뉴스) 정성조 특파원 = 중국이 4년 5개월 만에 서울에서 열린 제9차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한반도 비핵화'라는 종전의 공동 목표 대신 한미 연합군사훈련 비판을 포함한 개념인 '관련 당사자의 자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최근 수년간 미중 전략 경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한미일 연대에 맞선 북중러 밀착 구도가 그대로 드러났다는 해석이 나온다.
리창 중국 총리는 27일 서울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중국은 시종일관 한반도 평화·안정을 추진하며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인 해결을 추진하고 있다"며 "관련 측(관련 당사자)은 자제를 유지하고, 사태가 더 악화하고 복잡해지는 것을 예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언급은 2019년 제8차 정상회의 때 고(故) 리커창 당시 총리가 한 말과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당시 리커창 전 총리는 "3국은 국제 사회와 함께 계속해서 정치적 방식으로 이 문제 해결해 나갈 것"이라는 현재와 유사한 입장을 밝히면서도 그에 앞서 "한반도 비핵화 실현과 동아시아의 항구적 평화가 (한중일) 3국 공동의 목표임을 재천명했다"는 점에 방점을 찍었다.
중국 외교 사령탑인 왕이 외교부장이 올해 3월 쌍궤병진(雙軌竝進·비핵화와 북미평화협정 동시 추진)과 단계적·동시적 원칙이라는 기존 한반도 정책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밝히긴 했지만, 중국이 4년 반만에 한중일 정상회의에 들고 나온 한반도 문제 입장에서 '비핵화' 대신 한국·미국 등을 겨냥한 '관련 당사자의 자제'를 강조한 것은 분명한 변화라는 평가다.
한중일 정상회의가 멈춘 지난 4년여 동안 중국의 대북 입장은 북한 쪽으로 기울어왔다.
2019년만 해도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에 "각국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 긴장 완화 국면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며 비핵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던 중국 외교부는 올해 3월 북한의 초대형 방사포 발사 때는 별다른 자제 촉구 언급 없이 한미 연합훈련이 북한 훈련에 선행했다고 '응수'했다. 지난달 중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에는 아예 입장 표명을 거부했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리 총리는 이날 정상회의 모두 발언에서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 예고에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일제히 중단을 촉구한 것과 달리 이 문제 언급을 피했다.
북한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제재 결의 이행을 감시하는 안보리 전문가 패널이 출범 15년 만인 올해 3월 러시아의 주도로 임기 연장에 실패했을 때 중국이 '기권표'를 던지면서도 사실상 '북중러'의 편에 선 것 역시 최근 중국의 태도를 보여주는 사례다.
올해는 북중 수교 75주년을 맞아 고위급 교류가 잇따르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분야별 북중 협력 확대를 천명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다만 이날 리 총리가 탈북민·북핵 문제에 관한 윤석열 대통령의 협조 요청에 "중국은 그동안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노력해 왔으며, 정세 안정도 중요하다고 본다"면서 "한국 측의 우려를 잘 알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소통해 나가자"고 답한 대목을 두고는 중국이 한반도 문제에 관해 한중·한중일과 공조의 문을 완전히 닫지는 않겠다는 점을 시사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반면 원론적 언급에 불과하다는 시각도 여전히 존재한다.
중국은 이번 정상회의 기간 한국·일본과 이견이 분명한 '안보' 문제에서 힘을 다소 빼는 대신 경제·과학·기술·인문 교류 등 '비(非)안보' 문제에 무게를 실었다.
이날 리 총리의 발언을 보면 "3국은 예민한 문제와 갈등·이견을 적절히 처리하고, 서로의 핵심 이익과 중대 관심사(우려)를 배려해줘야 한다"며 대만·남중국해 문제 등에서 미국과 공조하는 한국·일본에 원칙론적 견제구를 던지면서도 '실질적인 협력' 분야에 더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
한중일의 구체적인 향후 협력 영역으로는 3국 자유무역협정(FTA) 등 산업망·공급망 연계 심화와 인공지능(AI)·디지털경제·녹색경제 등을 명시적으로 제시했고, 문화·인적 교류에 힘쓰자는 뜻도 밝혔다.
그는 전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별도로 만나 한국 기업의 중국 투자를 환영한다는 '러브콜'을 보내며 제도적 문턱을 더 낮추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이런 중국의 행보는 미국 등 서방 진영의 공급망 분리 움직임과 갈수록 강도를 더해가는 첨단 기술 제재, 전기차·태양광 설비 등 '과잉 생산' 비판에 고전하는 가운데 '안보·경제 분리' 기조로 상황을 타개하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xi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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