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태양광 발전의 빛과 그늘

김보미 기자 2024. 5. 27.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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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칵 뒤집힌 산골마을…왜?

강원도 평창군에는 해발 1천 미터 울창한 산을 끼고, 가운데 청정계곡이 흐르는 작은 산골마을이 있습니다. 봄이면 철쭉이 온 동네를 뒤덮는다 하니, 한 폭의 그림 같은 광경을 볼 수 있다는데요. 바로 '봉황마을'입니다. '옛날에 누군가 묏자리로 쓰려고 땅을 팠더니 갑자기 봉황이 날아갔다'하여 붙은 이름입니다.

그만큼 수려한 경관을 가진 동네인데, 몇 년 전부터 입 소문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귀농을 하려는 외지인들이 차차 유입되기 시작해 10년 전보다 인구가 4배 이상 늘어난 겁니다. 매월 10일이면 반상회를 여는 문화가 생긴 것도 새로운 식구들을 환영하고 화합을 다지기 위한 차원입니다. 지자체도 이 마을을 '명품마을'로 두 차례나 선정했습니다. 휴양·체험마을로 육성하고자 지금까지 약 60억 원에 달하는 보조금도 지급해왔습니다.
 

"명품 마을로 선정해 놓고…6만 평 부지에 태양광?"

"평창군 담당자들 정신 차리시오. 큰일 납니다! 우리 개수리 주민들 다 죽는다!"

-봉황마을 주민-


그런데 지난 4월, 이 마을 주민들이 아침 댓바람부터 평창군청 앞에 모였습니다. 이들이 목청을 높여가며 외치는 건 하나였습니다. '태양광 발전 사업을 중단하라'는 것. 봉황마을의 중심부에는 6만 4천 평에 달하는 광활한 부지가 있습니다. 과거 목장으로 쓰였습니다. 봉황마을 둘레길도 통과하는 경치 좋은 코스죠. 그런데 머지않아 이곳을 모두 태양광 패널이 덮게 된단 거였습니다.

지난해 말, 강원도청에 이 부지에 대한 태양광 발전사업 허가 신청이 접수됐습니다. 그즈음부터 외부 사업자들이 마을을 찾아와 주민 설득에 들어갔습니다. 처음에는 찬반이 어느 정도 나뉘었다가, 현재는 90%에 가까운 주민이 반대하고 있습니다. 자연 속 평화로운 노후 생활을 꿈꾸며 땅을 사고 예쁜 주택을 지었는데, 태양광 설비가 마을의 절반을 차지해 버린다면? 찬성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물론 땅값 하락에 대한 우려도 없지는 않겠죠.
 

"한쪽에서는 명품 마을이라고 지원을 해주고 한쪽에서는 태양광 사업을 해서 마을을 망치려고 하고 그게 지금 약간 아이러니한 상황이거든요."

- 봉황마을 주민-


그런데도 태양광 사업의 가장 첫 관문인 전기사업법상 발전허가가 떨어졌습니다. 그다음 단계인 개발행위허가 절차가 진행 중입니다. 개발행위허가는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민가와는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등 국토계획법과 조례에 의거해 평가를 거치는 과정입니다. 하지만 주민들은 어차피 허가가 떨어질 것이라 우려합니다. 왜 일까요? 우선 평창군 조례에는 주민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규정 자체가 없습니다. 내 집 코앞에 태양광이 들어서지만, 이격거리 몇십 미터 조정하면 그만입니다. 이미 환경평가와 재해영향평가는 통과한 상태입니다. 사실상 올해 안에 허가가 날 가능성이 큰 상황입니다. 주민들이 너도나도 거리에 나선 이유입니다.
 

법인 등기에 중국인 이름이?…사업자는 누구



이 마을에 태양광을 설치하려는 업자는 누구일까요? 하나의 업체가 아니었습니다. 총 7개 법인으로, 각각 2,999kW씩 나눠 발전하겠다고 계획서를 냈습니다. 주민들은 '① 사실상 같은 회사가 ② 환경영향평가 등 인허가를 쉽게 받기 위해, ③ 혹은 보조금을 더 타내기 위해 쪼개기 개발을 하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습니다.

사실일까요? 우선, '쪼개기 개발'이라고 하면, 부지를 쪼개서 보통 50kW, 99kW 등 100kW 미만씩 개발하는 행위를 일컫습니다. 보전관리지역 5,000㎡, 생산관리지역 7500㎡ 등 미만의 작은 부지라면 환경영향평가를 받지 않아도 돼 비교적 인허가가 쉬울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 케이스는 좀 다릅니다. 6만 평 부지이기 때문에 7개로 쪼개도 발전 용량과 면적 자체가 워낙 커 인허가 자체는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 관계자 설명입니다.

다만, 발전용량에 따라 REC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 가중치가 달라집니다. 이는 전력 판매 수익이 달라진다는 얘기입니다. 일반 부지의 경우, 100kW 미만은 가중치가 1.2, 100kW 초과 3,000kW 미만은 1.0, 그 이상은 0.8이 적용됩니다. 개인들이 100kW가 아니라 99kW씩 많이 사업을 하는 이유입니다. 봉황마을 케이스도 수익성을 더 높이려고 법인을 나눴을 수는 있을 걸로 추정됩니다.

그렇다면 정말 한 사업자가 법인을 여러 개 낸 것일까요? 그런데 법인 등기를 떼어봤더니 예상치 못한 이름들이 등장했습니다. "장시성 지안시에 거주 중인 우 모씨, 베이징시 거주하는 장 모씨…." 7개사 모두 22년 10월에 설립됐는데, 초기 대표들이 모두 중국인으로 기재돼 있었던 겁니다. 현재 2곳을 제외한 5개 업체는 대표가 한국인으로 바뀐 상태입니다. 중국이 발전소를 세우려 했던 걸까요? 마을에 찾아왔다는 사업자를 수소문해 찾아가 어찌 된 사정인지 물어봤습니다.


업체 대표는 절대 중국이 운영하는 발전소가 아니라며 선을 그었습니다. 사업 자금이 문제였다고 했습니다.
 

"예전엔 토지비부터 해서 은행에서 대출을 해줬었어요. 그런데 자꾸 사고가 터지고 하니까, 은행에서 토지매입비도 '공사 끝내고 발전사업허가에 한전 송전 계약까지 끝낸 상태로 갖고 와 그럼 돈 빌려줄게' 이런 식이에요. 이제 아예 내 돈 갖고 100% 다 끝내고 갖고 와라 이렇게 된 거죠"

- 봉황마을 태양광 사업자-


돈을 빌리기 위해 국내 굴지 대기업들을 찾아가 봤지만, 돌아오는 건 막대한 보증 수수료 요구뿐이었다고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해외투자회사에 눈을 돌리게 됐다는 얘기입니다. 우연찮게 중국에 본사를 둔 해외투자회사를 알게 됐고, 발전소 7곳 중 한 곳을 내주는 조건으로 돈을 빌렸다고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투자회사와 소통이 잘못돼 등기가 잘못 올라갔을 뿐이며, 국내 사업자들을 모집해 함께 운영할 계획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주민들의 반발에 대해선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업체 대표는 한숨부터 쉬었습니다.
 

"처음에 60 가구 찬성 받았었어요. 그런데 반대로 넘어가고…. 이격거리 때문에 총 8천 평이 날아갔어요. 제 발전소가 제일 많이 날아갔어요. 마을에 발전기금도 최대치로 주는데…."

- 봉황마을 태양광 사업자-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을뿐더러, 마을에게 최대한 피해가 안 가게끔 하고 있다는 겁니다.
 

산골로 파고드는 태양광…떠나는 주민들


최근 주민들은 농지법·초지법 위반 사유를 찾아 국민권익위원회에 진정을 넣었습니다. 어떻게든 태양광이 들어서는 걸 막아보려는 겁니다. 농지로 형질 변경을 하면 실제 경작행위가 이뤄져야 하는데 휴경지로 방치됐던 점을 지적했습니다. 문제가 있는 부지를 어떻게 또 태양광 허가를 내주냐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대법원 판례에도 나와있듯, 사실 개발행위 허가는 불명확하게 규정된 부분이 많습니다. 결국 지자체에 재량이 달려있는 셈입니다.

이런 상황은 다른 곳에서도 재연되고 있습니다. 이미 수년 전부터 태양광이 들어서기 시작한 평창군 백운리 맷대마을, 도사리 도사마을은 상황이 더 심각합니다. 민가 쪽으로도 업자들이 공격적으로 부지를 사들이면서, 주민들이 하나둘씩 마을을 떠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집 앞까지 들어온다는데 어떻게 버텨요. 힘없는 사람이 나가야지"

- 맷대마을 주민-

 

"60년 살았어요 이 마을에. 그런데 이사 가야 해요. 태양광 사업자들이 무조건 있는 사람들 다 내보내잖아요. 그렇게 하면 안 되잖아요."

- 도사마을 주민-


우리나라는 국토 면적의 70%가 산지입니다.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을 9%에서 21.6%까지 높이려면 더 많은 개발행위가 이뤄질 수밖에 없습니다. 영호남 지방은 이미 포화인 상태에서 강원도 산골까지 파고드는 건 불가피한 걸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주민 수용성을 높이며 친환경 에너지 흐름을 좇아가야 할지 묘안이 필요한 때입니다.

김보미 기자 spri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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