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ANCIAL TIMES 제휴사 칼럼] 고령화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법

2024. 5. 27.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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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1965년 영국에서 사망률이 가장 높은 연령은 생후 1세 전후였지만 오늘날에는 87세로 크게 높아졌다. 영국을 대표하는 경제 석학 앤드루 스콧 런던경영대학원 교수는 저서 '장수의 필수 요소(The Longevity Imperative)'에서 이같이 놀라운 변화를 다뤘다.

오늘날 일본의 신생아가 60세까지 생존할 확률은 무려 96%고, 일본 여성의 기대수명은 88세에 달한다. 일본의 통계가 특히 예외적이지만 현대인이 과거 그 어느 세대보다 장수하는 건 분명하다. 전 세계 여성의 기대수명은 76세, 남성은 71세다.

기대수명이 높아진 새로운 세상이 나타난 배경에는 영유아 사망률의 급격한 감소가 있다. 1841년 영국 남아 중 35%는 20세 이전에 사망했고, 77%는 70세를 넘기지 못했지만, 2020년에는 그 비중이 각각 0.7%와 21%로 낮아졌다. 인류는 깨끗한 물과 식량, 백신과 항생제를 이용해 조기 사망의 원인 대부분을 해결했다.

필자는 소아마비가 공중보건을 심각하게 위협하던 시절을 기억한다. 한때 인류 역사상 더 큰 위험이었던 천연두와 마찬가지로 소아마비도 현재는 거의 자취를 감췄다.

기대수명의 증가는 인류가 거둔 가장 위대한 성취다. 그럼에도 우리는 고령화 사회에 따른 비용에만 매몰돼 있다. 고령화 사회는 그 자체로 어려운 문제를 남기지만, 스콧 교수는 사회가 창출하는 기회에 보다 주목한다.

개인적·사회적 차원에서 '노년'을 다시 생각해 볼 시점이다. 사회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노년 인구를 생산적이지도, 건강하지도 않은 일부로서 방치해선 안 된다. 개인과 사회 모두 이를 위한 개선점을 찾을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 초고령 인구는 큰 이변이 없는 한 계속 늘어날 것이다. 1990년 100세 이상 노인은 9만5000명이었지만 현재는 50만명이고 증가하는 추세다.

결국 중요한 건 '어떻게 늙어가는가'이다. 이들이 활기찬 노년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날지, 여생을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뜻대로 하세요'에서처럼 '이도 빠지고, 눈도 안 보이고, 모든 것이 없어진' 상태로 보내게 될지는 어떻게 늙어가는가에 달렸다. 스콧 교수는 4가지 가정을 제시한다. 첫째는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 등장하는 늙은 채 영원히 사는 종족 '스트룰드브루그(Struldbruggs)', 두 번째는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 나온 갑작스러운 노화와 죽음, 셋째는 '피터팬'에서 그린 영원한 젊음, 네 번째는 마블 코믹스의 슈퍼히어로 캐릭터 '울버린'과 같은 신체 재생 능력이다.

건강한 장수 위해 공중보건 강화를

먼저 '스트룰드브루그'의 영원한 노화는 거북하게 느껴지지만 아주 비현실적이진 않다. 노화는 인체 기능의 쇠퇴를 수반하지만 식습관과 운동, 의학 발전을 통해 다른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

스콧 교수는 바로 이 지점이 고령에 따른 질병을 치료하고 관리하는 데만 그칠 것이 아니라 예방하는 데 주력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한다.

의학 발전만 필요한 게 아니다. 심각한 불평등은 사회경제적 문제인 동시에 공중보건을 위협한다. 미국의 기대수명은 여성이 82세, 남성이 76세로 중국과 별 차이가 없다.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미국의 기대수명이 놀랄 만큼 낮은 배경에는 높은 보건 불평등이 있다.

스콧 교수에 따르면 미국 소득 상위 1%와 하위 1% 간 기대수명 격차는 남성은 15년, 여성은 10년에 달한다.

늙어가는 과정뿐 아니라 나이 자체에 대한 시각을 바꿔야 한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 나온 늙어감은 이상적이지만 비현실적이다. 한편 자녀 세대에 엄청난 부담을 주면서 노쇠한 상태로 오래 살거나, 반대로 늙지 않는 조상님과 계속 함께 살고 싶은 자녀는 아무도 없을 것이기에 '스트룰드브루그'의 불멸이든 '피터팬'의 영원한 젊음이든 모두 끔찍하다. 불멸은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은퇴 후 새로운 직업 도전 열어둬야

대다수 인구가 90대 혹은 그보다 오래 살 수 있는 세상에선 새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25년 안팎의 교육, 약 35년의 노동, 그리고 35년간 이어지는 은퇴 상태는 개인과 사회 모두에 지속 불가능하다. 인구 상당수가 공허한 노후를 보낼 수 있다.

따라서 근로자들이 더 오래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평생 여러 번의 직업 변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생애주기 중 특정 시기에 정해진 교육과 근로, 단 한 번의 은퇴가 아니라 이 3가지 단계 간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

일을 하다가도 다시 학업을 시작하고, 은퇴를 하는 등 원할 때마다 현재 삶의 단계를 자주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장수'라는 과정을 금전과 정신적 측면에서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연금·복지·의료 시스템 개편을

이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교육, 노동, 연금, 복지, 의료 시스템을 재편해야 한다. 대학 입학과 직업 훈련은 이제 갓 20대가 된 젊은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평생에 걸친 활동이 돼야 한다. 법적 정년은 이제 의미가 없다. 일하거나 일하지 않을 선택지가 다양한 생애주기에 걸쳐 주어져야 한다.

사회계층의 기대수명이 같지 않기에 법적 정년의 일괄적 상향은 비효율적이고 불평등하다. 현재 지나치게 낮은 연금 기여율도 바꿔야 한다. 보건 시스템에선 사회적 연령만큼 공중보건도 중시돼야 한다.

우리는 새롭고도 늙은 사회로 향하는 중이다. 고령화 사회는 인류가 거둔 성공의 부산물이다. 그러나 '스트룰드브루그'의 미래가 가져올 현실적인 위험도 존재한다. 그런 미래에선 건강한 장수를 위한 우선순위를 재고해야 하지 않을까.

※이 글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실린 마틴 울프 칼럼 'Increased longevity will bring profound social change'를 매일경제신문이 번역한 것입니다.

[마틴 울프 FT 수석 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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