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암흑의 5월’...1년 만에 감독 퇴진한 한화, 반등 가능할까
또다시 ‘암흑의 5월’이 돌아온걸까. 한화이글스가 1년 만에 감독 퇴진이라는 칼을 다시 빼들었다. 27일 한화는 “최원호 감독이 감독직에서 자진 사퇴 의사를 밝혔고 구단이 이를 수락했다”고 밝혔다. 최 감독은 시즌 전 최소 5강 진입이라는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최근 성적 부진에 책임을 지겠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작년 5월 11일 베네수엘라 출신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이 사퇴한 지 약 1년 만에 한화는 또다시 5월에 새 감독을 찾게 됐다.
이날 한화이글스 박찬혁 대표이사도 최 감독과 동반 사퇴했다. “구단 프런트도 성적 부진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 손혁 단장도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구단에 남아 현 상황을 수습해달라”는 박 대표의 당부에 따라 일단 팀에 남아 차기 감독 선임에 착수했다.
최 감독의 퇴진은 구단 내부도 당황할 정도로 비밀리에 이뤄졌다. 지난 26일 밤부터 최감독 사임 소식이 알려졌지만 구단 관계자들도 “우리도 듣지 못해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야구계에서는 “최 감독의 퇴진은 형식은 자진 사퇴지만 사실상 경질된 것”이라며 “이런 식의 감독 교체가 과연 한화에 도움이 될 지 의문스럽다”는 반응이 나왔다.
당장 퇴진 시기부터 논란이 되고 있다. 27일 오전 현재 한화는 51경기에서 21승29패1무(승률 0.420)로 리그 8위에 올라있다. 리그 선두 KIA와는 9.5경기차, 리그 5위 NC와 5.5경기 차이다. 시즌 개막 전 메이저리그에서 뛰던 레전드 류현진과 자유계약선수(FA)였던 안치홍에 거금을 투입하며 ‘최소 5강안에 들 것’이라는 기대치에 못미치는 상황이다.
한화는 작년에도 거금을 들여 FA로 채은성, 이태양 등을 데려오며 ‘올해는 성적을 내겠다’고 공언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4월 초 리그 1위까지 치고올라갔지만 이후 팀 성적이 계속 하락했고, 지난 23일에는 키움과 롯데에 밀려 리그 최하위까지 떨어졌다. 한화에 따르면 최 감독은 이날 구단 수뇌부에 사퇴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최근 흐름은 투타 밸런스가 살아나면서 한화가 상승세를 타는 분위기였다. 최근 10경기에서 5승 5패, 특히 지난주 5경기에서 현 리그 3위인 LG를 상대로 2승1패 위닝시리즈를 달성했고 주말 2연전에서도 SSG와의 인천 원정에서 2연승을 기록하며 4승 1패를 기록했다. 시즌 초반 오락가락한 피칭을 했던 류현진이 최근 3경기에서 연이어 호투했고, ‘국대 에이스’ 문동주도 시즌 초 부진을 겪다 20여일 2군에서 재정비한 뒤 지난 21일 LG전에 복귀해 호투를 선보이며 승리 투수가 됐다. 외인 투수 페냐와 산체스가 동시에 부상으로 빠졌지만 고졸 신인 황준서와 조동욱이 선발로 나서 기대 이상의 투구를 했다.
타격에선 불이 붙은 김태연(타율 0.314, 홈런 6개)을 중심으로 김강민, 채은성, 노시환 등 부진했던 타자들의 타격감이 살아나면서 득점력은 향상됐고, 지난달 부진했던 불펜도 정비가 되고 어수선한 수비도 안정되어 가는 분위기였다. 한 전문가는 “작년에 수베로 감독도 팀 분위기가 반전되고 있는 상황에서 나갔는데 최원호 감독도 거의 같은 방식으로 팀을 나가게 됐다”며 “상승 분위기에서 감독을 경질하는 것이 과연 팀 성적에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전문가는 “수베로 감독은 3년 임기 중 마지막 해였던 반면 최원호 감독은 정식 감독으로는 이제 부임한지 1년밖에 안된 상황”이라며 “최소한 후임 감독 인선이라도 가닥을 잡고 감독을 교체했어야 했는데 너무 급하게 결정을 내린 게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팬들 사이에서도 “감독을 내보내려면 차라리 부진했던 지난달에 더 일찍 바꿨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후임 감독 인선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최원호 감독이 1년 만에 팀을 떠나게 되면서 야구계에서는 “한화는 야구 감독의 무덤이라는 오명이 더 굳어질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기 때문. 한 전문가는 “이렇게 시즌 도중에 감독을 내보내고 새 감독이 와서 좋은 성적을 낸 선례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한화는 최원호 감독까지 총 13명의 감독이 거쳐갔는데 이 중 6명은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나갔다. 김인식 감독 외에 김응용, 김성근 등 명장들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팀을 떠났다. 특히 10대 김성근 감독부터 4번 연속 ‘사실상 경질’이 반복됐다.
김성근 감독은 부임 4년차에 성직 부진 및 구단과의 마찰로 팀을 떠났는데, 최근 한 유튜브에 출연해 “한화에선 어디 기댈 곳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11대 한용덕 감독도 2020년 6월 7일 시즌 도중에 팀을 떠났고 12대 수베로 감독과 13대 최원호 감독도 같은 귀결이었다. 한 전문가는 “반복된 감독 퇴진의 역사는 한화의 부진이 단순히 감독 책임이 아닌 프런트의 책임도 적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며 “감독 후보군들도 이런 역사를 되짚어보면 한화행을 결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한화는 일단 시즌이 더 지나기 전에 팀을 전체적으로 재정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이날 한화는 최 감독과 박 대표의 동반 퇴진에 이어 올 시즌 부진했던 외인 투수 페냐(9경기 3승 5패 평균자책점 6.27)에 대해 웨이버 공시를 요청, 사실상 방출 수순을 밟고 있다. 페냐의 대체 선수로는 미국 메이저리그 통산 22승으로 현재 미 클리블랜드 산하 마이너리그에 속해있는 파나마 국적의 우완 투수 하이메 바리아가 유력하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된 이상 경험이 많은 감독을 데려오는 데 우선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순철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한화는 선발진은 좋지만 전체적으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능력치가 다소 부족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반적인 평가”라며 “기본 전력이 탄탄한 KIA같은 팀은 감독의 관리 능력이 더 중요한 반면 한화는 현재로선 혹독한 훈련과 경기 소화를 통해 선수들이 경기 흐름을 읽고 이기는 노하우를 터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럴려면 경험 많은 감독, 이기는 방법을 아는 감독을 데려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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