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기훈 감독의 ‘길바닥 사퇴’…팬들의 ‘버스 가로막기’ 위험 수위 넘었다
K리그 열성팬들의 '버스 가로막기' 위험 수위 넘었다는 비판
수원 공식 서포터 "선수단에 악영향, 앞으로 자제할 것"
K리그2 수원의 염기훈 감독이 지난 주말 경기를 마치고 팬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현장에서 사퇴 선언을 했다. 어느 구단보다 충성도 높은 수원 팬들이지만, 거듭된 '버스 가로막기' 방식의 집단 의사 표현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수원 염기훈 감독은 25일 서울 이랜드 원정경기에서 1-3으로 역전패한 뒤 구단 버스를 가로막고 있는 팬들 앞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프로축구 감독이 자신의 중도 사퇴를 퇴근길 버스 앞에서 발표한 초유의 일이었다. 도대체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수원은 서울 이랜드전에서 1-0으로 앞서다 후반 10여 분 동안 내리 3골을 허용하며 무너졌다. 한때 K리그 최고 명문으로 꼽힌 수원이 2부 리그에서 당한 5연패였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염 감독이 사퇴 의사를 밖으로 표출하기 전 단계였다.
하지만 경기 직후 기자회견에서 사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고, 일부 취재진과의 질의 응답에서 선수 영입 계획과 같은 발언이 실시간으로 보도되자, 팬들의 분노가 폭발했다는 전언이다. 수원 관계자는 "기자회견에서 염 감독이 향후에도 지휘봉을 계속 잡을 것 같은 뉘앙스의 답변이 이어지면서 경기장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팬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 같다. 버스에 타고 있던 염 감독도 팬들의 항의를 전해 듣고 박경훈 단장과 면담을 요청해 사퇴 의사를 전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성난 수원 서포터들은 구단 버스를 막고 도무지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물리적 충돌까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박경훈 단장과 염기훈 감독 등 구단 스텝들이 전부 나가, 팬들 앞에 섰다. 염기훈 감독이 거듭된 연패에 대해 사과했고, 결국 그 자리에서 팬들을 향해 "경기 끝나고 단장을 찾아가, 제가 떠나는 것이 맞는다고 얘기했다"며 사퇴를 공식 선언했다. K리그 감독이 길바닥에서 사퇴를 공식화한 초유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K리그에서 열성 팬들이 구단 버스를 가로막고 성적 부진에 항의하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과거 수원의 리그 우승을 이끌던 전설 차범근 감독조차 성적 부진에 대해 팬들의 분노를 퇴근길 버스에서 맞닥뜨리는 일이 있었다. 버스 가로막기를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버막'이라는 줄임말로 사용할 정도로 흔한 광경이 되어 버렸다.
최근에는 이 같은 상황이 더 잦아졌고 수위가 더 높아졌는데, 이유는 K리그 명문 팀들이 과거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성적 부진에 자주 직면하기 때문이다. 전북과 서울, 수원 등 우승권 팀들은 그만큼 충성도 높은 팬들이 많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다.
그렇지만 팬들의 버스 가로막기 시위가 구단 운영의 각성제가 되기보다는, 일부 팬들의 과격한 표현에 쫓기듯 미봉책만 내놓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구단 성적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원 박경훈 단장은 열성 팬들의 버스 가로막기에 대해 아쉬움과 감사함이 공존하는 팀의 묘한 현실을 호소한다. 박 단장은 "이렇게 열정적으로 우리 팀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응원해주는 팬들이 어디 있나. 정말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선수와 감독들이 탄 버스를 가로막고 직접적인 항의를 하는 건 자제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팬들의 목소리는 단장을 비롯한 구단 프론트 들이 직접 경청하고, 그들의 의견을 소중하게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수원 서포터들도 이번 사태가 과했다는 축구계의 지적을 수용하고 있다. 수원의 공식 응원단인 '프렌테 트리콜로'는 27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성명을 발표했다.
"프렌테 트리콜로 운영진은 지난 21일 충남 아산 원정과 25일 서울 이랜드와의 홈경기에서 발생한 선수단 버스를 막는 행위와 관련하여 심도 깊은 논의를 하였습니다.
논의를 통해 프렌테 트리콜로 운영진은 무분별하고 대표성 없는 인원들이 선수단 버스를 막는 행위에 대해 어떠한 장점도 찾을 수 없었으며 이러한 행위가 감독과 코칭스태프 및 선수단에 좋지 않은 영향만을 끼치고 불필요하게 재생산 및 확대해석 되는 것이 우려스럽다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수원 박경훈 단장은 "염기훈 감독의 뒤를 이어 대행 체제보다는 빠르게 신임 감독 선임 쪽으로 무게를 두고 있다. 9명 정도의 감독 후보군을 살펴보고 있고,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새 사령탑 선임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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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범 기자 (kikiholic@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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