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공백 온몸으로 막았는데…간호법 무산위기 간호사들 뿔났다
정부, 간호법 제정 약속했지만 21대 국회서 통과 '불투명'
뿔난 간호사들 "법적보호 없는 모든 의료조치 중단하겠다" 으름장

(서울=연합뉴스) 김잔디 기자 = 간호법 제정이 이번 국회 회기에서도 무산될 위기에 처하면서 전공의 이탈 후 묵묵히 의료현장을 지켜왔던 간호사들이 분노와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간호사들은 이번 국회 회기 내 간호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을 거부하겠다면서 법적 보호 없는 의료행위를 중단할 방침이다.
전공의들의 복귀가 요원한 상황에서 간호사들마저 진료 지원에서 손을 뗄 경우 의료공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전공의 이탈에 의료공백 메워온 간호사들…"다 해줄 것처럼 그러더니"
27일 의료계에 따르면 간호사들은 이번 국회 내에서 간호법이 통과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소식에 '배신감'을 호소하고 있다.
간호법은 진료지원(PA) 간호사를 법제화하는 등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간호사의 위상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이날 국회 앞에서 열린 '간호법안 제정 촉구 집회'에서는 "21대 국회 내에 간호법안이 제정되지 않는다면 전공의 이탈로 발생한 의료공백 상황에서 환자를 지켜낸 간호사에게 남게 되는 건 배신감뿐"이라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동안 간호사들은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들의 업무를 어쩔 수 없이 떠안으면서 과로와 불안에 시달려왔다.
대한간호협회(간협)는 인력이 부족해진 병원들이 간호사들에게 의사들이 해온 의료행위를 '불법으로' 떠넘기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한다.
이 와중에 전공의들의 이탈로 경영난에 시달리는 대형병원들이 의사들은 배제한 채 간호사 등을 대상으로 무급휴가 신청을 받으면서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간호사들은 정부가 주도하는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현장을 지켜왔는데 정부로부터 외면당하는 것 아니냐고 토로한다.
이 시범사업은 간호사를 숙련도와 자격에 따라 '전문간호사·전담간호사·일반간호사'로 구분해 감별·검사·치료·처치 등 진료지원 업무 범위를 명확히 제시했다.
간호사들이 심폐소생술이나 응급환자에 대한 약물 투여 등 의사가 담당해왔던 의료행위를 일부 할 수 있도록 한시적으로 허용한 것이다.
'전담간호사'로도 불리는 진료지원(PA) 간호사의 업무범위 기준을 제시해 사실상 PA 간호사의 법제화를 준비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시범사업으로 PA 간호사의 업무가 조금 더 명확해졌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간호법이 제정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결국 '불법 의료행위'로 내몰릴 수도 있다.
이에 간호계에서는 간호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해왔으나, 국회가 오는 28일 본회의 후 29일 종료되면서 이번 회기 내 통과가 불투명해졌다.
간호계는 이날 중 보건복지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가 열리지 않으면 이번 회기 안에 처리되긴 어려울 것으로 본다.
한 간호계 관계자는 "다 해줄 것처럼 하더니 지금 국회 상임위조차 열리지 못해 통과가 어려운 게 아니냐"며 "이미 시범사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를 뒷받침할 간호법이 제정되지 않으면 '불법 의료행위'로 치부될까 우려하는 간호사들이 많다"고 전했다.

정부, 간호법 제정 약속했지만 통과 '불투명'…간호사들, 강경대응 예고
간호법은 여야 모두 제정에 공감대를 형성했고, 복지부가 이달 초 논란이 될 만한 문구를 조정하는 수정안을 제출하면서 국회 통과가 가시화된 상황이었다.
복지부는 이달 초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여야 간사단에 유의동·최연숙 국민의힘 의원과 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발의한 간호 관련 3개 법안에 대한 수정안을 제출하면서 회기 내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채상병 특검법을 둘러싸고 여야 갈등이 커지면서 상임위조차 열리지 않고 있어 도통 진전이 없는 상태다.
이번 국회에서 간호법이 통과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복지부도 난감한 건 마찬가지다.
전병왕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정부가 간호법 제정을 반대해 논의가 안 되는 게 아니라, 지금 국회에서 상임위 등의 일정이 진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며 "이번에 되지 않으면 다음 국회에 원이 구상되면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간호계에서는 지난해 4월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무산됐다가 의료공백 사태 속에 극적으로 부활한 간호법이 또다시 폐기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크다.
더욱이 간호법은 이미 여야와 정부의 합의 등을 마쳐 통과만 앞둔 상황이었는데, 새로운 국회에서 다시 논의할 경우 이 모든 절차를 되풀이하면서 유야무야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병원간호사회 한수영 회장은 "간호법은 이번에 안 되면 다음에 해도 되고, 오늘 안되면 내일로 미뤄도 되는 그런 법이 아니다"며 "당장 국민의 생사가 오가는 전쟁과도 같은 의료현장에서 의지할 법 하나 없이 홀로 올곧이 버텨야 하는 간호사에게 쥐어진 마지막 희망의 생명줄"이라고 강조했다.
간협은 이번 국회에서 간호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PA 간호사를 진료에 활용하는 시범사업을 '보이콧'하겠다고 경고했다. 간호법으로 PA 간호사의 업무가 법제화되지 않는 이상 법적 보호조치 없는 의료행위를 중단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간호사 달래기에 나섰다.
전 실장은 간호법 제정 무산으로 간호사들의 시범사업 보이콧이 현실화할 경우 대응 방안이 있느냐는 질문에 "간협과 소통하고 정부 입장도 전달해서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며 "정부는 (간호법 제정을)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jand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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