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윤상현 “국민연금 모수개혁이라도 하자”…화답한 與 중진급, 배경은 [이런정치]
‘22대 국회 여야정 협의체 제안’ 與 지도부와 온도차
“권력투쟁 아닌 대야 정책투쟁해야”…당 내서 쓴소리
[헤럴드경제=김진 기자] 여권의 중진급 인사들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국민연금 모수개혁 선(先)처리’ 주장에 공감하고 나섰다. ‘모수·구조개혁 동시 처리’를 강조하며 민주당 제안을 일축한 국민의힘 지도부와 온도차를 보인 것이다. 총선 참패 책임을 둘러싸고 당 내 물밑 갈등이 한창인 가운데, 국정과제 논의마저 야당에 주도권을 빼앗긴 당 내 상황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나경원 전 의원(서울 동작을 당선인)은 27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된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주최 초청 토론회에서 이 대표의 제안과 관련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그 정도로 이재명 대표가 여러 제안을 했다면, 우리가 모수개혁이라도 진행하는 게 맞지 않나 이런 생각”이라고 답했다. 나 전 의원은 “가장 이상적인 건 올해 안에 구조개혁까지 포함해서 모두 다 한번에 끝나는 게 좋겠지만 실질적으로 국회 원 구성이 녹록지 않고, 여러 대립이 많이 예상되는 부분이 있어서 사실상 모수개혁이라도 먼저 받아야 되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많은 것 같다”며 “저는 처음에 굉장히 부정적이었는데, 첫단추라도 꿰어야 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나 전 의원은 지난 4·10 총선을 통해 5선 고지에 오르면서 여권의 유력한 당권주자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그는 지난 4월30일 “연금개혁에는 조금 더 내고 더 많이 받는 마술은 없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나 전 의원과 마찬가지로 5선에 오른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인천 동·미추홀을)도 이날 오전 SBS라디오 인터뷰에서 “사실 저도 여야 간 합의를 빨리 하자는 입장”이라며 “모수개혁 합의만 하는 것도 대단히 긍정적인 평가”라고 말했다. 윤 의원은 “모수개혁과 구조개혁은 다 하기가 정말 힘들다”며 “(연금개혁안을) 28일 본회의에 올리는 것은 정략적인 의도로 읽히니, 다음 국회가 시작하자마자 첫 본회의 때 연금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이 안을 가장 먼저 원포인트로 통과시키자”고 중재안을 제안했다.
이 대표가 21대 국회 임기 내 모수개혁안 처리를 주장하는 배경에 본인의 사법리스크 및 민주당 당권 장악 셈법, 대여 공세 전략이 있다는 의구심이 존재하는 만큼, 처리 시점을 오는 6월로 늦춰 여야 합의를 이끌자는 것이다. 윤 의원은 “워낙 타이밍이 묘하다”며 “이재명 대표가 정말 진정성이 있다면 특위하고 특위 위원이라도 (21대 국회 구성) 그대로 가져가고 (모수개혁안 만이라도) 통과시키자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러한 중진급 인사들의 목소리는 전날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거라면 우선 나아가자(김미애 연금특위 위원)”, “천금과 같은 기회가 왔을 때 처리하는 것이 미래세대의 부담을 줄이는 길(윤희숙 전 의원)” 등 여권 인사들에 이어 나왔다. 다만 지도부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두 개혁을 한 뭉텅이로 해야 한다(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 “청년과 미래세대를 포함한 국민적 공감을 얻어가며 정기국회 내에서 처리하자(추경호 원내대표)”는 입장이다. 추 원내대표는 26일 기자회견에서 22대 국회 여야정협의체를 통한 연금개혁 논의를 역제안한 상태다.
지도부의 입장은 국회 연금개혁특위 산하 민간자문위의 1차 활동 결론과도 궤를 같이 한다. 자문위는 2023년 3월 발간한 경과보고서에서 “국민연금을 중심으로 공적연금의 시급한 현안을 중심으로 모수적 개혁 차원의 접근을 시도했으나,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우리 연금제도에 내재돼 있는 근본적인 구조 문제에 대한 해결이 전제되지 않으면 단일한 개혁방안을 수렴해 도출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기에 이르렀다”고 했다.
그럼에도 중진급 인사들이 ‘모수개혁 선처리’에 공감하는 배경으로는 총선 참패 이후 정책 논의가 사라지다시피 한 원내 상황 때문이란 해석이 나온다. 서울 동대문갑에서 석패한 3선 출신의 김영우 전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국민의힘이 총선백서 권력투쟁을 하는 동안 이재명의 잔꾀에 완전히 걸려들었다”고 쓴소리를 던졌다. 총선 참패 이후 ‘한동훈 책임론’과 전당대회 개최 시점을 놓고 당 내 이견이 분출되고, 총선백서특위의 중립성 논쟁이 번지는 사이 국정과제마저 야당에 주도권을 빼앗겼다는 지적이다.
국민의힘은 22대 국회 첫 1년을 이끌 원내대표 선거 당시에도 후보 등록을 하는 인사가 나타나지 않아 선거를 한 차례 연기하는 기현상을 겪기도 했다. 최근에는 정부의 해외직구 정책을 놓고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유승민 전 의원, 나 전 의원 등이 메시지를 내며 정책 논쟁이 이뤄지는 듯했지만, 이마저도 원외 논쟁에 그쳤다. 김 전 의원은 “지금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백서 정치, 권력투쟁이 아닌 대야 정책투쟁을 해야 한다”며 “22대 국회는 누가 봐도 특검 정국, 개헌 정국인데 전략이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고 했다.
soho090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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