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진통 연금 '구조개혁'은…숫자조정 아닌 '틀' 바꾸기
"연금 지속가능성 위해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통합해야"
KDI는 '신연금'과 '구연금' 분리해 미래세대 부담 덜자는 제안 내놔
'자동안정화장치 도입', '확정기여방식 변경' 의견도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기자 = 21대 국회 임기 내 연금개혁 가능성이 불투명한 가운데 여야가 마지막까지 입씨름하는 것은 바로 연금의 '구조개혁'이다.
구조개혁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각종 특수직역연금을 통합하거나, 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등 연금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을 뜻한다.
보험료율(내는 돈)과 소득대체율(받는 돈) 등 국민연금의 핵심 수치를 바꾸는 '모수(母數)개혁'과 동시에 추진할지를 두고 의견이 갈린다.
27일 정부와 국회 등에 따르면 21대 국회 종료를 사흘 앞둔 전날까지도 국민연금 개혁안 처리를 놓고 여야는 팽팽하게 맞섰다.
더불어민주당은 21대 국회에서 '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44%'를 담은 모수개혁을 먼저 처리하고 다음 국회에서 구조개혁을 하자는 입장이지만, 여당인 국민의힘은 국민적 합의를 전제로 모수개혁과 구조개혁을 차기 국회에서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수개혁, 연금기금 고갈 시기 연장시켜…구조개혁은 '새 틀' 짜기
모수란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연금을 받는 나이 등 주요 '숫자'를 뜻한다.
모수개혁은 이런 숫자를 조정해 연금 적립기금의 고갈을 늦춰 연금 재정을 안정화하는 대표적 방식이다.
보건복지부,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에 따르면 1988년 1월에 도입된 우리나라 국민연금 제도는 도입 초기에 노후소득 보장을 강조하기 위해 소득대체율을 70%로 설정했지만, 보험료는 불과 소득의 3%만을 부과했다.
쉽게 말해 국민연금 재정은 태생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게 설정된 셈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역대 정부는 소득대체율을 단계적으로 40%까지 낮추고, 보험료율은 9%까지 올리는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는 데는 충분하지 않아, 보험료율을 추가로 인상하는 방안 등 연금개혁이 꾸준히 논의돼 왔다.
21대 국회에서 연금개혁특별위원회의 여야 의원들은 9%인 보험료율을 13%로 인상하는 방안에 대해 뜻을 모았지만, 소득대체율로 국민의힘은 44%, 더불어민주당은 45%를 각각 제시해 합의를 보지 못했다.
이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여당의 소득대체율 '44%' 제안도 수용하겠다고 밝혔지만, 여당은 구조개혁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며 22대에서 처음부터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맞선다.
구조개혁은 모수개혁처럼 단순히 주요 숫자만 바꾸는 것이 아니다. 기초·퇴직·직역연금 등 전체 연금제도의 틀을 손보고,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를 도입하는 작업을 뜻한다.
구조개혁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모수개혁만 할 경우 국민연금 적립금 고갈 시기만 늦출 뿐, 기금 소진 후 막대한 누적 적자가 쌓이는 것은 막을 수 없으므로 근본적인 구조개혁을 해야 한다고 설파한다.
기초-국민연금 '관계 재정립'…"공무원연금 등도 함께 개혁해야"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모수개혁 문제는 구조개혁 문제와 따로 놀 수 없다"며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연계 등을 거론했다.
기초연금에 대한 재정소요가 시간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국민연금과 연계해 보장성 등을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는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관계에 대해 2개의 대안을 내놓았다.
하나는 '국민연금의 재분배 기능과 기초연금의 수급 범위를 현행대로 유지하고, 급여 수준을 강화한다'는 안이고, 다른 하나는 '국민연금 급여 구조는 현행 유지하며, 기초연금은 수급 범위를 점진적으로 축소하고 차등 급여로 하위소득자에 대한 보호를 강화한다'는 안이다.
기초연금은 65세 이상의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소득과 재산 수준을 따져 매달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노후소득 보장 제도이다. 재원은 세금으로 마련한다.
국민연금연구원은 급격한 고령화 등의 영향으로 기초연금 수급자가 늘면서 기초연금 재정소요액이 2030년 39조7천억원, 2040년 76조9천억원, 2050년 125조4천억원, 2060년 179조4천억원, 2070년 238조원 등으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했다. 개혁이 시급하다는 얘기다.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 같은 특수직역연금에도 꾸준히 재정이 들어가고 있어 함께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022년 기준 국민연금 월평균 수령액은 36만9천원에 불과하지만, 특수직역연금은 그 5.5배인 203만원에 달했다.
이런 차이는 공무원연금 가입자가 내는 돈(보험료율)이 월등히 많기 때문이지만, 공적연금 간 지나친 격차는 형평성 문제를 야기하는 만큼 전문가들은 불평등한 연금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해마다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는 특수직역연금은 놔두고, 기금 고갈을 이유로 국민연금만 손볼 경우 국민 저항에 부딪힐 수도 있다.
이에 각 제도는 분리해서 운영하되 보험료율 등을 일치시키거나, 장기적으로 특수직역연금과 국민연금을 통합하는 등의 개혁 방안이 제시된다.
"'신연금' 도입해 '구연금'과 구분"…구연금엔 재정 투입
구조개혁의 한 방안으로 '신연금'의 도입도 거론된다.
KDI는 저출생 등으로 인구구조가 급격히 변화하는 현시점에서 모수 조정뿐 아니라 세대 간 형평성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구조개혁이 반드시 추진돼야 한다며 '신연금'을 도입해 '구연금'과 분리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현재 국민연금 제도에서 세대 간 형평성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앞세대의 '기대수익비'가 1보다 크기 때문이라는 게 KDI의 분석이다.
즉 가입자가 납부한 보험료와 이를 적립한 기금의 기대운용수익의 합보다, 사망 시까지 받을 것으로 약속된 총급여액이 훨씬 더 많은 것(기대수익비율 > 1)이다.
이에 KDI는 '기대수익비율=1'을 보장하기 위한 '신연금'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경우 보험료율을 15.5% 안팎으로만 인상해도 소득대체율 40%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이 경우 미래 세대의 기대수익비가 기성세대보다 훨씬 낮아지게 되지만, 1을 밑도는 일은 피할 수 있다는 게 KDI의 설명이다.
다만 구연금에 대한 재정 투입도 불가피한데, 올해 기준 구연금의 재정부족분은 609조원(국내총생산의 26.9%)에 달한다.
'자동안정화 장치', '확정기여형 방식' 등도 거론돼
국민연금의 구조개혁 방식으로는 '자동 안전화 장치'나 '확정기여형 방식'으로의 변경 등도 거론된다.
자동 안정화 장치는 경제 상황에 따라 보험료율이나 소득대체율 같은 모수를 자동으로 조정하는 제도이다. 상황이 안 좋아지면 연금 지급액을 낮추는 등 연금의 안정성을 자동으로 보장하게 된다.
확정기여형은 보험료 수준을 미리 확정해 놓고 납부한 보험료에 이자를 더한 금액을 급여로 받는 방식이다. 한마디로 '낸 만큼 받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국민연금은 급여 수준을 미리 정해놓고 확정된 급여를 지급하는 '확정급여' 방식이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일본, 스웨덴, 독일 등 두 제도를 활용해 연금개혁의 기초를 다지는 국가가 늘어나고 있다.
스웨덴은 1998년 유럽 국가 중 최초로 연금재정 안정을 위해 자동조정장치인 '명목확정기여형 소득비례' 연금 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는 기대수명이 늘어나면 연도별 연금 지급액이 축소되고, 연금 부채가 자산보다 커질 경우 균형재정을 달성할 때까지 지급액이 줄어드는 형태로 운영된다.
일본은 지난 2004년 연금액을 기대수명 연장과 출산율 감소에 연동해 삭감하는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했다. 일명 '거시경제 슬라이드'다.
독일도 2004년 연금 지급의 자동조정장치로 '지속가능성 계수'를 도입했다.
이는 전체 경제활동인구 및 연금 수급자 규모의 변화를 바탕으로 급여 수준과 보험료율을 자동 조정하는 방식이다.
인구구조 등의 변화가 있더라도 지속가능성 계수가 1에 수렴되도록 보험료율, 급여 수준을 조정해 연금 재정의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추계 실무단을 운영해 국민연금 기금에 영향을 미치는 인구, 거시경제, 제도를 분석하는 한편, 미래개혁 자문단을 운영해 확정기여 방식 전환 등 전문가 의견을 수렴할 방침이다.
so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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