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발한데 뭉클하기까지 한 장기용·천우희의 초능력 판타지('히어로는 아닙니다만')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4. 5. 27.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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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는 아닙니다만’, 장기용의 손끝에 천우희의 과거가 닿을 때

[엔터미디어=정덕현] "초능력 별거 아니네요. 미래도 보고 과거도 보고 전부 다 보는 줄 알았더니 정작 눈앞에 있는 건 못 보시고." JTBC 토일드라마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에서 도다해(천우희)는 자신이 이나(박소이)를 납치한 사람 취급하는 복만흠(고두심)에게 그렇게 쏘아붙인다. 그건 사실이다. 복만흠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꿈으로 볼 수 있는 예지몽 능력자고, 복귀주는 행복했던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는 타임리프 능력자다. 하지만 두 사람은 미래와 과거에 집착하면서 정작 봐야할 현재를 바라보지 못하게 됐다.

잠을 자지 못해 예지몽을 꾸지 못하는 복만흠은 그래서 더더욱 미래에 일어날 일들에 집착한다. 도다해와 함께 접근해온 백일홍(김금순) 패밀리가 사기꾼들이라는 걸 알고는 복귀주와 도다해 사이에 확실한 선을 그으려 한다. 그래서 결혼식이 깨질 걸 알면서도 복귀주가 그걸 처절히 실감하게 내버려둔다. 복귀주가 가장 행복한 날로 기억할 것 같았던 결혼식은 그렇게 부서진다. 미래에 벌어질 수도 있다 여겨지는 비극(사기결혼 같은)에 대한 불안감이 복귀주의 현재를 불행의 늪으로 빠져들어가는 것이라 예단하게 만든다.

한편 복귀주 역시 결혼식을 깨버리고 그것이 모두 사기였다 털어놓은 도다해의 진심을 읽지 못한다. 그래서 사라진 이나가 도다해를 찾아왔고 그래서 이나를 데리러 온 날 하지 말아야할 말을 꺼내놓는다. "우리 시간은 정말로 끝인 거 같네요, 도다해씨. 지나간 시간은 다 지울거고, 다시는 그 시간을 떠올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다시는 도다해와의 시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복귀주의 그 말은 사랑해서 멀어지려 했던 도다해의 마음에 비수를 꽂는다.

복귀주는 도다해가 해던 모든 말과 행동들이 거짓이었는가를 믿지 못하겠고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고 분노한다. 그는 과거에 얽매여 있다. 사기로 시작한 건 결국 사기라는 과거. 그래서 그 시작은 사기였지만 그러다 사랑이 되어버린 도다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건 복귀주의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은 그때를 다시금 반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어도 그걸 바꿀 수는 없었던 복귀주가 유일하게 그걸 되돌릴 수 있는 인물이 도다해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 기묘한 타임리프 로맨스 판타지는 복귀주에게 그토록 날선 결별을 고하는 장면에 곧바로 미래에서 나타난 복귀주가 "나 붙잡아요"라며 과거의 복귀주에게 도다해의 등을 떠미는 장면을 연출한다. 그리고 그 엉뚱한 일처럼 벌어진 장면 뒤에 복귀주가 도다해의 진심을 알게 되는 사건들이 펼쳐진다. 과거에 틈입한 미래의 복귀주가 먼저 보여진 후, 그 미래의 복귀주가 왜 그런 변화된 행동을 했는가를 보여주는 기막힌 로맨스 판타지의 세계가 그려진다.

이 로맨스 판타지의 세계는 그래서 초능력이 등장하지만, 이를 통해 그리려는 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연결된 행복에 대한 이야기다. 불행한 과거 때문에 사기를 업으로 하는 가짜 패밀리에 붙잡혀 살아가는 도다해는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또 불행하다 여기지도 않으며 살아왔다. 또 죽은 선배 소방관에 집착해 과거에만 살다가 결국 아내까지 사고로 사망하게 되는 불행을 겪은 복귀주는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만나면서 변화가 일어난다.

어느날 불쑥 자신의 삶 속으로 들어온 도다해에 대한 마음이 생겨나면서 복귀주는 과거의 불행에서 벗어나 점점 도다해와의 행복한 시간들을 만들어낸다. 복귀주가 이제 도다해와의 행복했던 과거로만 돌아갈 수 있게 됐다는 건, 그 이전의 불행한 과거로부터 벗어났다는 걸 말해준다. 한편 도다해는 자신의 불행했던 과거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복귀주를 매몰차게 밀어내는데, 복귀주는 자신의 초능력으로 과거의 도다해를 찾아 위로해주려 한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을 찾아와 절망감에 빠져 있는 도다해의 어깨에 말없이 손을 얹어준다. 무표정이던 도다해는 그 손길 하나로 뜨거운 눈물을 쏟아낸다.

복귀주의 초능력이 구해내는 건, 학창시절 화재가 났던 학교 창고에 갇힌 도다해만이 아니다. 그가 겪었던 불행한 과거로부터 구해내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초능력을 갖고 있어도 그 누구 하나 구해낼 수 없다는 절망감에 빠져 있던 복귀주를 구해내는 일이기도 하다. 초능력 가족이지만 그 능력을 앗아간 건 우울증, 불면증, 비만, 대인기피증 같은 '현대병'으로 지칭되는 것이지만, 이 드라마는 그것이 모두 오롯히 현재를 행복하게 누리지 못하는데서 생기는 무력감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현대병이 만든 무능력 때문에 우리가 무력한 게 아니고, 현재를 누리지 못하는 무력감이 그런 무능력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나 붙잡아요." 미래의 복귀주가 나타나 도다해의 등을 떠밀며 현재의 복귀주를 붙잡으라고 말하는 그 기막힌 장면은, 그래서 마치 우리가 놓치고 지나치곤 해서 소중함을 잊곤 하는 현재를 붙잡으라는 말처럼 들린다. 그것이 미래를 알아서 로또에 당첨되거나,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어서 그때를 계속 들여다볼 수 있는 능력보다, 우리를 진정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초능력이라고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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