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액셀 밟지 않았다"…급발진 재연 시험 분석 결과
풀 액셀 밟았으나 속도 증가 폭 달라…급발진 주장 힘 실릴 듯
지난 2022년 12월 이도현(사망 당시 12세) 군이 숨진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와 관련해 사고 현장 도로에서 이뤄진 국내 첫 재연시험 기록을 놓고 벌어진 법원 지정 감정인의 정밀 분석 결과 '도현이의 할머니는 가속페달을 밟지 않았다'는 주장에 힘을 싣는 결과가 나왔다.
제조사 측 주장과 달리 '변속패턴'이 달랐고, 차량에는 결함이 없다는 국과수의 분석과 비교했을 때 '주행데이터'가 현저히 달랐으며, 풀 액셀을 밟았다는 사고기록장치(EDR) 기록대로 풀 액셀을 밟은 결과 '속도 변화'는 훨씬 컸다.
도현이 가족은 이 같은 결과를 토대로 "할머니는 페달 오조작을 하지 않았음이 입증됐으며, 페달 오조작이 아니므로 차량 결함에 의한 급발진"이라고 강조했다.
차량 제조사인 KG모빌리티를 상대로 약 7억6000만원 규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통해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는 도현이 가족은 지난달 19일 진행됐던 공식 재연시험의 감정 결과를 27일 밝혔다.
당시 경찰의 도로 통제 협조와 법원에서 선정한 전문 감정인의 참관하에 이뤄진 시험에서는 사고 차량과 같은 2018년식 티볼리 에어 차량에다 제조사 측이 제공한 변속장치 진단기를 부착해 이뤄졌다.
감정 결과 제조사 측 주장과 달리 변속패턴이 이번 실제 주행에서 나온 수치들과 맞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재연시험에서 이뤄진 기어 변속 정보를 토대로 실제 속도와 변속패턴 설계 자료상의 예측 속도를 비교했을 때 일치하는 사례는 1∼2건에 불과했다. 8∼9건은 적게는 시속 4∼7㎞에서 많게는 시속 54∼81㎞까지 차이가 났다.
도현이 가족의 소송대리를 맡은 법률사무소 나루 하종선 변호사는 "재연시험에서 변속패턴 설계자료대로 속도 변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며 "이번 사고에 적용할 수 있는 현실적인 자료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간 제조사에서는 변속패턴 설계자료를 토대로 EDR 자료상 가속페달 변위량이 100%(풀 액셀)인 상태에서 충돌 4.5∼5초 전 분당 회전수(RPM)가 5900에서 4초 전 4500으로 떨어지는 현상에 대해 기어가 3단→4단으로 변속됐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도 "변속패턴 설계자료대로 속도 변화가 이뤄지지 않음이 확인된 이상 제조사 주장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차량에는 결함이 없고, 운전자의 페달 오조작'이라는 국과수의 분석 결과와 비교했을 때 이번 재연시험의 속도, RPM, 변속단수 등 '주행데이터'도 현저히 달랐다.
처음 급가속 현상이 나타나면서 모닝 승용차를 추돌했을 당시를 상정해 진행된 재연시험에서 그 차이가 두드러졌다. 모닝 추돌 직전 시점으로 되돌아가 시속 40㎞에서 변속 레버를 주행(D)으로만 두고 2∼3초간 풀 액셀을 밟았을 때 실제 속도는 시속 40→73㎞, RPM은 3천→6천, 기어는 4단→2단→3단으로 변속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어가 중립(N)인 상태에서 속도 및 RPM이 각각 시속 40㎞와 6200∼6400으로 일정했다는 국과수의 분석과 전혀 다르다.
도현이 가족은 국과수의 '운전자가 변속레버를 굉음 발생 직전 D→N, 추돌 직전 N→D로 조작했다'는 분석은 이미 앞선 음향분석 감정을 통해 '변속레버 조작은 없었다'고 밝혀진 만큼, 할머니가 기어 D 상태에서 운전한 게 사실이라면 국과수의 분석은 완전히 틀렸다고 주장했다.
모닝 추돌 이후 상황을 가정해 풀 액셀을 밟았을 때도 주행데이터가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재연시험에서는 시속 44㎞→120㎞까지 18초가 걸려 높고 빠르게 가속이 이뤄졌지만, 국과수는 40㎞→116㎞까지 24초가 걸렸다고 분석해 상대적으로 낮고 느리게 가속됐다.
RPM 그래프도 재연시험은 단순한 직선 형태를 보인 반면 국과수는 여러 굴곡이 생기는 형태를 띠었고, 변속패턴 역시 재연시험(4단→2단→3단→4단)과 국과수 분석치(2단→3단→4단→3단→4단→3단) 간 현저한 차이를 보였다.
감정인은 "가속페달과 변속기어 주행 형태를 볼 때 풀 액셀로 주행할 경우 국과수의 감정서 내용과 같은 변속기어 패턴이 발생하기 어려운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시속 110㎞에서 5초 동안 풀 액셀을 밟은 시험을 두 차례 진행했을 때도 속도가 각각 124㎞와 130㎞가 나와 EDR 기록을 토대로 한 국과수의 분석치(시속 116㎞)보다 속도 증가 폭이 컸다.
도현이 가족은 이처럼 국과수 분석치와 다른 재연시험 결과를 토대로 "할머니는 페달 오조작을 하지 않았음이 입증됐다"며 "페달 오조작이 아니므로 차량 결함에 의한 급발진"이라고 주장했다.
또 EDR이 할머니가 사고 전 마지막 5초 동안 풀 액셀을 밟았다고 기록하면서도 속도가 시속 110㎞에서 116㎞로 6㎞밖에 증가하지 않은 것과 모닝 추돌 후 40㎞에서 116㎞에 달할 때까지 무려 24초나 걸린 것은 할머니가 브레이크를 밟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는 도현이 가족 측이 줄곧 주장해온 EDR의 신뢰성 상실과도 연결되는 부분으로, 사고 당시 블랙박스 영상에서 할머니는 사고 당시 "이게 왜 안 돼"라고 외치며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에둘러 표현하기도 했다.
도현이 가족과 제조사는 다음 달 18일 춘천지법 강릉지원에서 법정 다툼을 이어가며, 이번 재연시험 결과를 두고 팽팽히 맞설 것으로 보인다.
또 도현이 가족이 법원에 공식적인 감정신청을 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자동 긴급 제동장치(AEB)' 기능 재연시험을 진행하기로 해 해당 시험의 증명력을 두고도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박양수기자 yspar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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