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 삐쩍 마른 북극곰은 왜 죽었을까

한겨레 2024. 5. 27. 13:3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남종영의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19) 아이슬란드 북극곰 표류 사건 2
캐나다 처칠에서 만난 한 북극곰. 한겨레 자료사진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에 제보가 들어왔어요. “아이슬란드에서 북극곰 사냥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로 멸종에 치닫고 있는 북극곰을, 멧돼지 잡듯 주민이 신고하면 사냥꾼이 나서 사살한다고 해요. 세상이 정말 엉망진창이 되어가고 있어요!” - 제보자 IPB (☞18회에서 이어짐)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은 2009년부터 2012년까지 환경부 장관을 했던 스반디스 스바바르도티르(Svandís Svavarsdóttir)를 레이캬비크의 한 카페에서 만났습니다. 금요일 밤이어서 시내가 젊은이들로 들썩였습니다.

스반디스는 2009년부터 좌파녹색운동 소속으로 아이슬란드의 의회인 알팅그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치계의 거물이었습니다. 그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습니다.

“거물이라니요? 우리나라 인구가 38만 명입니다. 당신네 나라 중소도시 정도일 걸요. 호호호.”

너무 가벼운 분위기로 가고 싶지 않아서, 왓슨은 일부러 헛기침한 뒤 질문했습니다.

“북극곰은 바다얼음의 감소로 장기적으로 생존을 위협받는 멸종위기종입니다. 원래 서식지인 동그린란드에 보내야 하지 않을까요?”

스반디스는 쾌활하게 대답했어요.

“캐나다, 덴마크, 노르웨이, 러시아, 미국이 1973년 맺은 북극곰보호협약에서도 원주민 사냥은 허용했습니다. 그린란드 당국도 매년 동그린란드에서 약 50마리의 북극곰 사냥을 허용하죠. 10년 동안 아이슬란드에서 총에 맞아 죽은 북극곰의 비율은 동그린란드 개체군의 1% 미만이라고 나왔어요. 길잃은 곰을 산 채로 그린란드에 돌려보냈다고 칩시다. 그런데, 거기서 원주민 사냥으로 죽는다면요?”

당시, 표류 북극곰을 사살하고 결정한 공식적인 이유는 네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사람과 가축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둘째, 동그린란드 개체군은 개체 손실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로 안정적이다. 셋째, 북극곰 한 마리 구조하는 데 7만5000유로가 든다. 관련 인력과 장비를 유지하는 비용은 연간 75만~110만유로에 이른다. 넷째, 북극곰을 송환하려고 해도 그린란드 당국의 동의를 얻기도 힘들다.

인터뷰를 마치자, 스반디스는 자리를 떴습니다. 그가 카페 문밖으로 사라지는 걸 확인하자마자, 홈스와 왓슨은 동시에 소리쳤습니다.

“돈 때문이군!”

캐나다 처칠에서 만난 한 북극곰. 한겨레 자료사진

코미디언 시장이 지키고 싶었던 공약

“맞아, 돈 때문이에요.”

갑자기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카페 안에서 들렸습니다. 노르딕 체크무늬의 빨간 스웨터를 입은 30대 여성이었습니다. 그가 ‘이리 오라’고 손짓했습니다.

“녹색 가치를 표방하는 정당이라면서 북극곰을 사살하자고 하다니! 저분이 정치권의 주류인 건 맞지만, 아이슬란드의 모든 생각을 대표한다고 생각해선 오해예요. 욘 그나르(Jón Gnarr)라고 아세요? 과거에 레이캬비크 시장을 했던…”

‘빨간스웨터’의 말에 홈스 반장이 기억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2010년 ‘내가 최고다’라면서 ‘최고당’(Best Party)을 만들고 선거에 나갔다가 덜컥 레이캬비크 시장에 당선됐던 그 코미디언 말씀이군요?”

“맞아요. 우리는 그때 네 가지 공약을 제시했어요. 모든 수영장에 무료 수건 비치, 케플라비크공항에 디즈니랜드 건설, 동물원에 북극곰 데려오기 그리고 어떤 약속도 지키지 않기. 결국 공약을 다 지켰어요. 어떤 약속도 지키지 않았으니까.”

욘 그나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위기에 빠진 아이슬란드 경제 상황에서 기성 정치인들을 비판하면서 인기를 얻었어요. 나중에는 대통령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여론의 지지가 높았지만, 2014년 시장 임기 만료를 끝으로 정계 은퇴했죠. 지금은 코미디언으로 돌아가 활동하고 있어요.

“사실 욘 그나르는 북극곰 공약만은 정말 지키려고 했어요. 이름도 미리 지었어요. 아이슬란드 출신의 세계 최고의 여성 보컬의 이름을 따 ‘비요크’라고요.”

“북극곰이 비요크 노래를 부른다니… 썰렁해서 사람들이 얼어붙겠어요. 어쨌든 동그린란드에서 표류해 도착한 북극곰을 사살하느니, 동물원에서 사육하자는 깊은 뜻이 있었던 거군요.”

“네! 우린 몰래 그 대안을 모색했었죠. 저를 중심으로 ‘레이캬비크 북극곰 프로젝트’라는 시민단체도 결성했습니다. 하지만, ‘북극곰을 동물원 같은 감옥에 가두는 건 과연 옳냐?’는 비판에 직면했어요. 반대로 ‘그럼, 사살하는 게 옳냐?’는 반박도 있었고요. 우린 혼란에 빠졌죠. 두 편으로 갈라졌어요.”

홈스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가치 판단을 하기 힘든 문제군요. 앞으로 기후변화가 심해지면 그린란드의 바다얼음은 더 빨리 녹고, 아이슬란드에 도착하는 북극곰이 늘어나면서 문제는 더 복잡해지겠죠. 표류 북극곰을 동물원에서 보호한다고 해도 이내 포화 상태가 되어버릴 테고, 반대로 사살하는 것은 너무 잔인하고… 그린란드로 다시 보내자니 비싼 돈으로 치르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어버릴 테고…”

“맞아요. 북극의 바다얼음이 예상보다 더 빨리 줄어들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계속 나오고 있어요.”

북극의 바다얼음 감소는 인간 활동으로 인한 기후변화의 가장 직접적이고도 상징적인 지표입니다. 위성 관측이 시작된 1978년 이래 북극 바다얼음은 계속 줄어들고 있어요. 1979년부터 2023년까지 매년 제주도 42개 면적에 해당하는 7만8000㎢의 바다얼음이 사라졌습니다.

지난 3월 알렉산드라 얀 미국 볼더 콜로라도대 연구팀은 기존의 예측을 더욱 앞당기는 결과를 내놓았어요. 탄소 배출 시나리오와 관계없이 2020년대와 2030년대 9월 중에 한 차례 이상 바다얼음이 없어질 거래요. 북극 바다얼음은 매년 9월에 최소 면적이 되는데, 학술적으로 ‘바다얼음이 없다’는 것은 그 면적이 100만㎢ 이하로 떨어지는 걸 뜻해요. 그 정도면 기상과 기후를 조절하는 바다얼음의 기능을 상실한다고 보는 거죠.

지속해서 바다얼음이 없어지는 상태는 2035~2067년에 발생할 거래요. 어떤 의미에선 이미 기후변화가 돌이킬 수 없는 티핑포인트(임계치)를 넘어선 거죠. 우리가 산업화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치를 1.5도 미만으로 제한한다고 하더라도, 북극 바다얼음이 없는 상태를 막아낼 수 있는 확률은 10%도 안 됩니다.

바다 건너온 여행의 끝은

갑자기 빨간스웨터의 휴대전화가 울렸어요.

“뭐라고요? 빨리 가볼게요!”

아이슬란드 북부의 스카가피오르(Skagafjordur) 부근에서 북극곰을 봤다는 신고가 잇달았다는 거예요. 우리는 세 시간 넘는 길을 곧장 달렸어요. 1번 국도에서 빠져나와 744번 지방도로를 한참 타자, 수십 대의 차가 주차된 언덕 밑에 이르렀어요. 이미 50~60명의 구경꾼이 있었고, 이들은 한참 전부터 북극곰을 따라다닌 듯 했죠. 한 주민이 말했어요.

“오전 10시 좀 안 돼서, 후나바튼 호수에서 서쪽으로 걷고 있는 북극곰을 봤죠. 올겨울 서쪽 바다에 빙산이 있었어요. 아마 그걸 타고 온 거 같습니다.”

그때 자동차 여러 대가 도착했어요. 네 명의 사냥꾼이 튀어나와 총을 들고 언덕을 올랐어요. 흙에 더럽혀진 꾀죄죄한 북극곰이 나무 하나 없는 능선을 따라 걷고 있었어요.

탕!

한 발의 총성에 북극곰이 털썩 주저앉았어요. 사냥꾼과 구경꾼이 우르르 몰려갔어요. 북극곰은 검은 눈을 뜨고 죽었고, 빨간 피는 하얀 털을 적시고 있었죠. 홈스 반장이 한숨을 쉬었어요.

“앞으로 북극곰은 어떻게 살아야 하지?”

그날 밤 저녁 텔레비전 뉴스에 사살된 북극곰이 나왔어요. 삐쩍 마른 북극곰이.

“북극곰은 320㎞ 넘는 바다를 빙산을 타거나 헤엄쳐 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경찰은 안개가 짙어지고 있어서 빨리 사살해야 했다고 밝혔습니다. 몸무게 250㎏ 수컷으로 확인된 이 북극곰은…”

*본문의 과학적 사실은 실제 논문과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남종영 환경저널리스트·기후변화와동물연구소장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